신영의 세상 스케치 - 355회
보스톤코리아  2012-07-16, 12:24:28 
아직은 세상과 어우러져 사람과 벗하며 삶 속에서 인생을 배우고 익히는 나이 딱히 세상에 대해 사람에 대해 삶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어설픈 나이가 되었는가 싶다. 내 인생의 철학이랄까 아니면 삶의 좌우명이라고나 할까. '낙천지명(樂天知命)의 삶'이길 늘 기도하면서 오늘도 소망으로 산다. 때로는 삶에서 준비 없이 만나는 소낙비처럼 뜻밖의 일에 당황해 하기도 하고 그 어처구니 없는 일에 황당할 때도 있다. 그것이 다른 일도 아니고 내 가족의 건강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더욱이 그렇다. 내 뱃속으로 난 내 자식이 아플 때는 엄마인 내가 대신 아파 주고 싶은 그 심정을 세상의 어머니들은 알 것이다.

오래전 일이지만 지금 가만히 생각하니 참으로 잘 견뎌온 시간이며 그 귀한 시간 속에서 깊은 감사를 배웠던 세월이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십 년이 다 되어가는 일이니 이제는 조금은 그 일에 익숙해져 갈 때이기도 하다. 어느 날 남편이 건강 책업을 받다가 갑작스럽게 건강에 적신호가 왔을 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그때 세 아이가 중학교에 다니고 있을 무렵이었으니 앞이 깜깜한 절벽 같았던 시간이었다. 그 후 석 달은 그렇게 정신없이 보냈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낸 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남편과 함께 마주하고 차근차근 가족에 대해 삶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 대해 철저한 점검을 시작했던 시기이다.

사람은 그렇게 큰일을 겪으면 주변의 작은 소소한 일들에 대해 무의식중에 감각이 무뎌지는가 싶다. 주변에서 일어나던 대수롭지 않은 작은 일들에 대해 그리 무게를 느끼지 못하고 관심을 놓게 되었다. 그것은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너무 뜨겁기에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튼 이 큰일을 겪은 후로는 삶의 방향과 삶의 색깔이 그리고 삶의 모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쯤 마음 깊이 파고든 것이 바로 '낙천지명(樂天知命)의 삶'이었으며 그렇게 살기로 작정을 했던 것이다. 그 이후로는 누구 때문에의 인생은 절대 아님을 깨달았던 때이다. 하늘이 내게 주신 소중한 삶을 맘껏 만나고 느끼고 나누고 누리며 그리고 표현하며 살자고 그렇게.

그렇게 한 2년이 지났을까 갑작스럽게 큰 녀석이 학교에서 운동하다가 쓰러져 위급한 상황이라 헬리콥터를 타고 보스턴 시내의 병원 중환자실로 실려가게 되었다. 그렇게 누워있는 큰 녀석이 이틀을 깨어나지 않아 곁에서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은 피가 마르던 시간이었다. 초침 바늘 소리가 귀에 크게 들리고 오가는 간호사들 발자국 소리가 크게 들리는 병원의 중환자실에 누워 깨어나지 않는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을 누가 알고 이해나 할까 말이다. 엄마는 강하다는 얘기가 있지 않던가. 언제나 담담했던 남편은 누워있는 큰 녀석의 옆에서 울음을 토해내고 있는데 엄마는 울 수가 없었다 아니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이내 마음을 돌려먹었다. 이 모든 일들은 우리의 삶 속에서 그저 일어나는 일인 것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삶 속에서 어찌 내게 좋은 일만 있어야 하고 또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져 왔다. 그저 이 모든 일은 우리가 사는 동안에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다만 받아들이는 마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세상에 좋은 일 나쁜 일이 어찌 따로 있을까 말이다. 아들 녀석이 중환자실에서 이틀을 누워 깨어나지 않는데 엄마라고 해서 그 무엇하나 해줄 수 없을 때의 그 무기력감이란 정말 좌절의 순간이었다. 그 이후에 깨달은 것은 내려놓는 일이었다.

나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때야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고 움켜쥐었던 자신의 손을 펴게 되는 것이다. 이때 이후로는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마음 깊은 속에서 차오르는 자유를 느끼기 시작했던 때이다. 하늘이 주신 뜻을 따라 나의 삶을 열심히 행복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낙천지명(樂天知命)의 삶을 살기를 소망하며 기도를 시작했던 때이기도 하다. 이렇듯 인간은 나약한 존재임을 새삼 도 깨닫고 말았다. 결국, 자식도 하늘이 주신 선물이지 내 것이 아님을 일깨워주었던 시간이었다. 지금은 그 녀석이 가슴에 페이스 메이커를 달고 살지만, 그것마저도 감사하다고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오늘 아침 문득 '낙천지명고불우(樂天知命故不憂)'라는 옛말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낙천지명고불우, 그 뜻은 '하늘의 뜻을 즐기고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되니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란다. 인생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큰일을 몇 번 겪다 보면 저절로 크신 창조주 앞에 무릎을 꿇게 되고 작은 피조물임을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제아무리 이리저리 머리를 쓰고 궁리를 찾아 나서도 내 생각과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얼마나 많던가. 하늘이 내게 주신 것(선물)이 무엇이고 그 일이 무엇에 쓰일 것인가를 아는 까닭에 삶에서 한 번씩 겪는 어려운 일에 대해 피해 가거나 도망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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