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359회
보스톤코리아  2012-08-13, 11:44:19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은 가볍고 마음은 즐겁고 행복하다. 또한, 그 설렘에 잠을 설치기도 하고 꼬박 밤을 새우기도 하는 것이다.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에 알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이 차오르는 것은 아마도 사랑일 거란 생각이다. 작렬하며 사정없이 내리쬐는 불볕더위의 하루, 푹푹 찌는 8월의 폭염 속 산행이란 생각만으로도 버겁고 힘든 일이 아니던가. 이 무더위 속 산행을 위해 어깨에 멘 무거운 배낭과 온몸과 얼굴에 범벅된 끈적거리는 소금기 섞인 땀방울 그 무엇 하나 가볍지 않은 모습들이다. 이런 무더위에도 산을 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26년 만에 처음 시작한 산행은 내게 참으로 힘겹고 어려운 고행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산행을 한 번 두 번 그리고 횟수가 늘수록 참으로 매력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오를 때마다 혼자 되돌아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곁에 함께 오르던 산우님들의 도움으로 산의 정상을 오르길 몇 번. 그리고 산을 오를 때마다 잊을 수 없는 것은 깊은 풀숲을 헤치고 오르면 숲 내음이 온몸과 마음에 닿아 견딜 수 없는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내 작은 발걸음으로 오르지 않으면 맡을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하나 둘 만나며 그동안 잊고 살았던 감사들이 차오르는 것이다.

산 아래에서 바라보던 그렇게 높디높은 까마득한 산꼭대기를 3시간 4시간을 걸어서 산 정상을 올랐을 때의 그 감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고 행복이다. 험한 산을 만나는 날에는 헉헉거리는 숨을 고르며 좌절의 마음을 느끼길 얼마였는지 모른다. 때로는 괜스레 욕심을 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스스로 작아지는 나 자신의 나약함을 만날 때도 많았다. 그래도 늦은 걸음으로 산을 오르고 또 오르다 보면 제일 꼴찌 자리에 있을 때도 많았지만, 그 시간이 그렇게 감사하고 귀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걸어서 이 높은 곳까지 올 수 있었던 나 자신이 그렇게 대견스러울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산을 오르기 힘들어 마음의 동요가 일기도 했었지만, 오를 때마다 산이 그렇게 매력 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럭저럭 4계절을 보내며 계절 사이마다에서 만났던 산들은 내게 큰 감동과 신비와 경이를 선물해 주었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면 적어도 사계절(1년)만 사귀어 보면 서로의 성격이나 좋아하는 취미 등을 조금은 알아차릴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런것처럼 산을 처음 오르기 시작하며 사계절의 1년을 보내고 다시 봄을 맞고 보내며 두 번째의 여름을 맞이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산이 내게 사랑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보고 싶고 그리울 수가 없다.

산행을 하며 그 어느 때보다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하다. 산 아래에서 높은 산을 오르기 전 마음을 먼저 열고 가만히 가다듬기 시작한다. 작은 발걸음으로 한 발짝 또 한 발짝 옮길 때마다, 힘겨움으로 호흡이 거칠어질 때마다 깊은 심호흡으로 마음의 기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가족들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마음에 떠오르는 이들을 위해 산을 오를 때까지 기도를 하는 것이다. 요즘은 참으로 알 수 없지만, 산을 오르내리며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은 긍휼의 마음과 연민의 마음이 차오른다. 저 높은 산이 가슴 벌려 나를 품어주는 그 마음처럼.

높은 산 아래의 넓은 땅에서 서로 바라보면 모두가 자기 키만큼의 눈높이에서 그만큼만 보지 않던가. 네가 크다 내가 크다 하며 도토리 키재기처럼 그렇게 아옹다옹하면서 서로에게 사랑보다는 미움과 상처를 던져가며 살지 않던가. 하지만 저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보라. 저 산 아래에 있는 티끌 같은 나를 볼 수 있는가 말이다. 참으로 우습지 않던가. 그토록 아옹다옹하던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이던가. 산을 오르내리며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나의 부족함을 하나 둘 깨닫는다. 산을 통해서 그 깨달음으로 나 자신의 삶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게 되는 것이다. 산을 오르내리며 산을 통해서.

아직은 서툰 몸짓과 마음 짓이지만, 산을 오르내리며 산을 통해서 더 깊은 기도의 시간을 갖고 싶다. 산행을 하며 수행을 배운다. 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그런 아름다운 삶을 배우고 익히며 실천하며 사는 인생이길 간절히 소망한다. 높은 산에 올라 얽히고설킨 산 아래의 부질없는 일들일랑 던져버릴 수 있는 큰 가슴이길 바라는 것이다. 나 자신이 몸소 겪고 깨달으며 실천하는 삶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몸과 마음이 가벼워져 더욱 맑은 영혼이길 간절히 소망한다. 산을 오르내리며 삶의 단순함을 배우고 산을 통해서 인생의 깊이를 느끼며 산행을 하며 수행을 배운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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