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360회
보스톤코리아  2012-08-20, 12:26:33 
뒤뜰에 엉성하게 심은 채소들이 하나 둘 꽃을 피우더니 열매를 맺어간다. 방울 토마토의 여린 가지를 보면서 언제 크려나 싶었는데 이렇게 빨갛게 열매를 맺고 익어가고 있다. 노란 꽃을 피우던 호박도, 철조망의 줄따라 오선지의 음표처럼 달린 여린 오이도, 하얀 꽃을 피우던 고추도, 쑥갓도, 깻잎도, 우리 집 두 녀석의 자른 머리 길어나듯 자르면 오르고 또 오르는 부추도, 모두가 제 모양과 색깔로 뜨거운 여름 뙤약볕에 몸을 내밀며 열매를 맺기 위해 이렇게 익어가고 있다. 서로 더 크다 작다 다투지 않고 제 키만큼만 자라 제 무게만큼만 열매를 맺으며 제 몫을 하고 있다.

문득, 자연의 섭리를 만나며 창조주의 손길 따라 우주 만물의 흐름에 순응하며 순리대로 살기를 오늘도 마음의 소망으로 놓는다. 이렇듯 특별하지 않은 일상에서 뜻밖의 큰 깨달음의 선물을 받는다. 때로는 평소에 생각지 못했던 장소에서 생각지 못했던 이에게서 큰 가르침을 얻을 때가 있다. 그럴 때 그 가르침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흠칫 놀라는 것이다. 나의 부족했던 모습들을 하나 둘 들여다보며 부끄러움에 어찌할 줄 몰라하는 것이다. 그래도 감사하지 않던가. 이런 시간을 내게 허락하신 그 따뜻한 손길에 그 깊은 사랑에 감사가 차오르는 것이다.

엊그제는 가깝게 지내는 언니네 뒤뜰의 텃밭을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 몇 년 전에도 언니네 텃밭에서 자란 채소들을 얻어다 먹은 기억이 있다. 언제 한 번 놀러 오라는 언니의 얘기에 얻어먹기만 하는 것이 괜스레 미안해진 마음에 사진이나 몇 컷 담으러 가겠다고 약속을 해놓았던 터였다. 그래서 이래저래 핑계로 삼아 언니네 집에 놀러 갔었다. 언니네 집 뒤뜰의 텃밭은 우리 집 뒤뜰의 텃밭을 생각하면 텃밭이 아니고 농장이었다. 너른 텃밭에는 고추나무에 주렁주렁 고추가 달스려있고 물기 먹은 깻잎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으며 그 옆에는 오이, 가지, 피망, 대파가 자라고 있었다.

농장처럼 큰 텃밭에 풀 한 포기 찾기 어려운 촉촉이 젖은 땅에서 어찌 채소들이 잘 자라지 않겠으며 좋은 열매를 맺지 않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이토록 좋은 땅이 되기까지는 쉬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가꾸며 정성을 쏟았던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석으로 밭에 물을 주고 풀을 뽑아주며 돌을 골라주고 거름을 주었기에 채소들이 무럭무럭 잘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이 새삼 실감 났던 날이다. 여기저기 텃밭을 돌며 사진을 담는 동안에도 애써 가꾸었을 손길에 미안할 만큼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는 밭이었다. 주인의 정성이 깃든 뒤뜰의 텃밭을 보면서.

뒤뜰 텃밭 곁에는 닭장이 있는데 스무 마리 남짓한 닭들이 무리를 지어 이리저리 활보한다. 그 무리 중 대장인듯 보이는 붉은 벼슬을 세운 흰 수탁이 먼저 울음을 내더니 다른 녀석들도 따라 제소리를 낸다. 오랜만에 보는 시골 풍경이었다. 너른 텃밭의 풍성한 채소들과 무리지어 걸으며 울음 내는 닭들의 합창이 바쁜 걸음을 옮기며 달리던 내게 평안으로 초대하고 있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던 그 시간 잊을 수 없는 기쁨과 평강이 내 마음 가운데 자리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렇듯 자연과 사람이 함께 우리로 호흡하며 서로 공생 공존한다는 사실을 새삼 또 깨닫는 시간이었다.

텃밭을 가꾸는 언니네는 세탁 비지니스를 몇 가지고 있어 관리하기에도 바빠 여가 시간을 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 이처럼 넓은 텃밭을 가꾸며 사는 언니를 보며 그 부지런함에 많은 것을 배운다. 자신이 애써 힘들여 가꾼 채소를 다른 사람과 나누기란 여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차라리 돈을 주고 쉬이 살 수 있는 물건이라면 어쩌면 더욱 쉬울지 모르겠으나 자식처럼 정성을 들이고 사랑을 주며 손수 수고로 가꾼 채소를 나눠 먹는 그 마음에 감동하고 말았다. 이렇듯 혼자가 아닌 세상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몸소 실천하며 사는 것이다.

이렇듯 흙과 가까이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삶은 순수하고 여유가 있어 좋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은 흙과 마주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집안의 한쪽에 작은 화분을 놓아 꽃나무나 채소 나무를 키워보면 어떨까 싶다. 뒤뜰의 너른 텃밭은 아니더라도 집 안에 작은 텃밭을 만들 수 있다면 아이들의 정서에도 큰 도움이 된다. 아침저녁마다 관심을 갖고 얘기를 나누며 정성을 들이고 사랑을 나누면 어느새 나무에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나무(꽃, 채소)에 열매가 맺기 시작하면 하룻밤을 새우고 아침을 맞을 때마다 훌쩍 자란 열매를 만나며 생명에 대한 감사를 배운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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