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370회
보스톤코리아  2012-10-31, 12:29:44 
나는 내 나이 사십의 얼굴에 책임은 지고 살았는가? 내 나이 불혹(不惑)을 지나 지천명(知天命)의 고갯길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나 자신에게 물음 하나 놓는다. 그리고 지금도 곱게 잘 늙어가고 있는가? 하고 묻는 것이다. 한 가정의 아내와 세 아이의 엄마로 나이를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고 훌쩍 마흔에 올랐는데 벌써 오십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이 나이쯤에서 이제는 나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 보고 싶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두 번째고 우선 거울에 비친 내 얼굴 모습을 보니 누가 봐도 지금의 나이를 묻지 않고도 짐작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언제나처럼 가을은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오감(五感,)을 일으켜 세우고 사색의 장을 열어주며 작은 것 하나에도 소홀히 지나칠 수 없도록 깊은 생각과 마주하게 한다. 여기저기 오가다 만나는 산천의 아름다움 속 자연의 숨결 그리고 생명이 흐르는 자연의 숭고함은 오늘을 사는 내게 삶을 일깨워주는 스승이다. 계절마다 만나는 자연의 섭리 속 생명의 경이를 보며 어찌 창조주의 크신 손길에 놀라지 않으며 너무도 작은 피조물임을 어찌 고백하지 않을까. 이토록 아름다운 산천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며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이 시간을 감사하지 않을까 말이다.

가을이 무르익어갈 즈음에는 그동안 분주하게 움직이던 발걸음도 잠시 세워놓고 마음도 잠시 내려놓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며 내 삶을, 내 인생을 가만히 관조하는 것이다. 계절마다 오가며 만나는 산천의 풀과 꽃과 나무를 보면서 단 한 번도 무심히 지나친 적 없었다. 그 풀과 꽃과 나무들 속에서 함께 호흡하며 나의 모습을 만나기 때문이다. 나도 저렇게 저들처럼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나이 들어가고 싶다고 마음으로 생각해본다. 그들에게 말을 걸고 얘기를 들으며 계절과 계절의 샛길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선물로 얻어오곤 한다.

작렬하는 뙤약볕 아래 신록을 자랑하던 짙푸른 계절 한여름의 나무들은 모두가 초록의 빛깔을 낸다. 그래서 어떤 나무가 어떤 색깔로 물들지 궁금할 때가 있다. 가을이 오면 나뭇잎들은 하나 둘 제 색깔을 찾아 온 산천을 물들이기 시작한다. 참으로 경이롭지 않은가. 자연의 섭리를 따라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돌아갈 즈음에는 제 색깔로 물들이다 땅의 색깔로 찾아가는 저 자연을 보면 참으로 신비롭지 않은가 말이다. 이처럼 불혹의 마흔을 보내고 지천명의 쉰을 바라보는 마흔아홉의 내 삶에서 제대로인 내 색깔로 물들고 싶은 것이다.

마흔의 아홉수를 지나며 여느 해보다 깊고 넓은 삶을 만날 수 있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또 다른 삶의 색깔들과 무늬들 그 속에 내 색깔과 모양을 더욱 깊이 들여다볼 기회가 되었다. 삶에서 어찌 좋은 일 나쁜 일이 따로 있겠으며 또 그렇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나이쯤에서 잠시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생각지도 못한 자리에서 본의 아니게 내 부족함으로 누군가 상처를 받았거나 그로 인해 아픔이 있다면 그 마음이 치유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저 흐르는 바람처럼, 구름처럼, 물처럼 그렇게 묶이지 않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고 싶다.

"맹자는 나이 40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 不動心이 되었다고 하였고, 공자는 자신의 40대를 不惑이라 표현하며 어떤 상황에도 혹하지 않고 견뎌내는 나이라고 정의하였다. 고정불파(古井不波)오랠 고자에 우물 정자, 아니 불자에 물결 파자, 오래된 우물은 물결이 일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구절은 당나라 때의 시인 맹교(孟郊)가 지은〈열녀조(列女操)〉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출렁이는 물결 결코 일으키지 않으리라! 波瀾誓不起라! 여인의 마음 우물 속 고요한 물처럼 굳게 지키리라! 妾心井中水라!'"

위의 구절의 원래 뜻은 한 여인이 자신의 마음을 우물 속의 물처럼 흔들리지 않고 굳게 지켜나간다는 뜻이나 훗날 어떤 유혹과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우물 속의 물처럼 자신의 평정심을 지킨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고정불파(古井不波 :깊은 우물은 물결을 일으키지 않는다)의 옛 어른들의 귀한 말씀을 만나며 지천명의 오십을 준비하며 마흔아홉의 삶에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 이제 불혹을 지나 지천명에 닿은 이 나이쯤에는 남의 탓의 남의 인생이 아닌 나 자신이 선택한 삶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인생이길.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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