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375회
보스톤코리아  2012-12-03, 12:04:49 
한 달 전이었을까. 청춘의 열여섯 사춘기도 아니고, 중년에 오른 오십의 사추기에 느닷없는 양볼에 불그레 여드름이 돋는 것이 아닌가. 한 이틀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별일이다 하고 지나쳤는데 삼 일째 되는 날에는 붉은빛이 더 강해지니 속으로 염려가 되었다. 사춘기를 지내면서도 얼굴에 여드름이 없었던 터라 더욱이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별히 이런 쪽(머리 얼굴 옷 등)의 일이라면 무감각한 남편이 아내인 내 얼굴을 쳐다보며 얼굴에 난 것이 뭐냐고 물어오는 것을 보면 양볼에 솟은 여드름의 상황이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 것이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나는 거울을 보며 괜찮아지겠지 싶었는데 다른 이들이 내 얼굴을 보며 왜 그러느냐고 묻는 바람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그럭저럭 열흘 정도가 지났다 싶었는데 하루는 동네에서 가깝게 지내는 동생이 언니 요즘 화장품을 바꿨느냐고 묻는데 화장품을 바꾼 일이 없어서 아니라고 대답을 해줬다. 그렇게 묻던 동생이 다시 재차 묻는다. 언니 혹시 오래된 화장품을 쓴 것은 아니냐고 묻는 것이다. 그 물음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주로 아래층에서 화장품을 놓아두고 쓰는데 어느 날 하루 위층에서 사용한 것이 오래되었던 모양이다.

자상한 성격의 동생은 SS 한국마켓의 어떤 연고를 사서 바르면 빨리 나을 것이라는 정보를 준다. 그렇게 그 다음 날 그 연고를 사서 바르기 시작했다. 한 이틀 바르니 얼굴에 붉게 오르던 여드름이 조금 수그러드는 듯싶었다. 그리고 한 이틀 후에 보스턴 시내의 병원에 주치의(Primary care physician)와의 진료 예약이 있는 날이라 찾게 되었다. 얼굴 양쪽 볼의 여드름처럼 생긴 붉은 뾰루지를 찬찬히 보더니 처방전(Prescription)을 해준다. 그렇게 처방전에 따른 연고를 찾아와 그날 저녁으로 얼굴에 발랐는데 그 다음 날에는 얼굴의 붉은 뾰루지가 더욱 성나 있지 뭔가.

처음 한 열흘은 별걱정 없이 그러다 말겠지 싶었는데, 얼른 낫지 않으니 은근히 걱정이 이는 것이다. 곁에 있던 딸아이가 엄마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툭 하고 하는 말이...
"엄마, 그 얼굴의 뾰루지가 혹시 폐경기(Menopause) 때문은 아니에요?" 하고 묻는 것이다.
순간 생각지 않았던 딸아이의 당찬 물음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괜스레 딸아이가 순간 서운하기도 하고...
"얘는, 무슨 엄마가 벌써 폐경기야?" 하고 딸아이에게 볼멘 목소리로 답을 던지고 말았다.
"엄마, 엄마가 얼마 있으면 오십이 가까우니 하는 말이에요." 엄마가 그리 젊지 않다고 더 못 박아 얘길 해준다.

딸아이의 그 똑 부러지는 그 얘길 듣고 난 후 은근히 속이 상해온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생리주기가 정확한 내게 지난달 한 번은 생리의 양도 적었고 날짜도 일찍 끝났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난 한 두 달 간은 사진 전시회 준비와 교회 행사 준비를 위해 마음과 몸이 분주하고 바빠 머릿속이 복잡해서 그랬을 거라고 자위를 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래 내 나이에 충분히 폐경기를 맞을 나이가 되었지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먹기로 했다. 아직은 염색도 안 하고 돋보기도 쓰지 않으니 젊다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주에는 Thanksgiving Day로 두 녀석이 집에 와 있었다. 큰 녀석은 성격이 자상한 편이라 엄마의 PMS(Premenstrual syndrome/월경전 증후군) 주기를 챙겨주는 편이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그리고 무엇인가 엄마의 심상치 않은 신경의 변화를 알아차릴 때는 조용히 살피며 제 할 일을 했던 아이다. 녀석이 엄마의 얼굴을 보더니 피식 웃는다.
"엄마, 얼굴에 뭐가 그리 났어요?" 하고 물어온다.
"그러게 말이야, 엄마가 너무 젊어서 여드름이 났나 봐!" 하고 웃음섞인 대답을 하니 이 녀석도 누나와 똑같이 엄마에게 혹여 폐경기로 인해 생긴 것은 아니냐고 또 묻는다.
딸애와 녀석이 엄마의 얼굴이 염려되어 묻는 말에 괜스레 엄마는 혼자 속이 상해 언짢게 듣는 것이다. 두 녀석은 한 열흘의 방학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고 얼굴에 불그레 올랐던 뾰루지(여드름)도 차츰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은근히 염려로 있었던 이달의 생리도 여느 달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양과 날수를 제대로 채우게 되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래, 이렇듯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닌 내 마음 안에서 모두가 일어나는 것임을 또 깨닫는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 어느 누구의 '초 치는 말'보다 그에 대한 나 자신의 반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또 배운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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