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미안하게 만드는 대통령
보스톤코리아  2013-01-14, 14:20:13 
상당기간 펜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실타래처럼 엉클어진 머리를 정리하기가 힘들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일단 조국의 대통령으로 당선 됐으니 과거 지지여부와 상관없이 대통령으로 받아들이고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야 한다. 이성의 인식과 달리 감정조절의 길은 길었다.

냉정하게 다시 보면 51%의 지지를 끌어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최소 절반은 성공했다. 과거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질서 세우고)의 보수적인 경제입장을 바탕으로 경제 민주화 정책의 수용은 일단 중간층 국민들의 동의를 받았다. 또한 대통합 행보를 중요시 하는 것도 눈에 띄는 성과다. 어렸을 때 어머니의 철저한 교육을 받아 다져진 인성이란 점도 향후를 점칠 수 있는 좋은 잣대다.

일단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국정 운영을 차분하게 지켜보며 응원을 보내는 것으로 마음을 여몄다. 인수위를 꾸리고 첫발걸음을 떼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다. 좀 더 거시적이고 장기적으로 박 당선인의 정국운영을 보고 충분하게 잘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선뜻 전폭적인 신뢰가 가지 않는 이유는 뭘까.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이 신뢰의 걸음걸이에 툭툭 걸리기 때문이다.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편향되게 보는 것이 아닌지도 진지하게 성찰해 보았다. 그럼에도 걸리는 문제가 있다. 경제적 선진국에 진입한 우리나라가 아직도 정치적 투명성과 공정성에는 뒷걸음질 우려가 대두된다. 그것을 짚고 가야겠다.

선거 직전 터진 <국정원녀 선거개입 사건>으로 대표되는 하나의 문제점이다. 물론 한국의 보수 언론들과 국정원은 민주당 측의 과도한 행동으로 국정원 직원의 사생활을 침범하고 실내에 감금했다고 주장했다. 당시의 박 후보도 선거 기간중 <민간인의 감금>이라면서 인권침해라고 했다. 하지만 경찰대 교수로 사표를 낸 표창원 교수는 감금이 아닌 스스로의 <잠금>이라고 했다.

경찰은 이례적으로 대통령 3차 토론이 끝난 직후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드디스크를 조사했는데 댓글 흔적이 없다는 게 주 내용이었다. 댓글은 하드디스크에 남는 것이 아니라 해당 웹사이트에 남는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이고 기본적인 사실을 두고 하드디스크를 조사해 흔적이 없다고 발표하는 것은 우물에 가서 조사했더니 숭늉이 없다라는 말과 같다. 이런 조사 결과는 발표하지 않았어야 한다. 김용판 서울 경찰청장의 지시였다.

결국 선거가 끝난 이후 수서 경찰서는 이 국정원녀가 한 사이트에서 무려 16개의 아이디를 가지고 문재인 지지 발언에는 반대, 박근혜 지지발언에는 찬성을 누르는 활동을 했다고 발표했다. 한 댓글에 16개의 찬성이 달리면 순간적으로 최고 인기 댓글이 된다. 한 사이트에 무려 16개의 아이디를 가진 것만 해도 상식적이지 않다. 근무시간에 오피스텔에서 이 같은 활동을 했다면 결론은 분명하다.

박 후보는 선거 당시 민주당의 각종 네거티브 공세에 대항해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깨끗한 선거를 해야 한다. 선거운동 깨끗하고 건강하게 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맡아야 정말 깨끗한 정치가 이뤄질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결과 못지 않게 과정도 중요하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짓말 하면서 정권만 잡으면 된다는 낡은 생각은 사라져야 한다고.

박근혜 후보의 말을 빌리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정권만 잡아서는 안된다. 혹 박 당선인 모르게 이 일이 진행됐다면 사실을 밝혀야 한다. 또 알아서 기었던 김용판 서울 경찰청장과 당 및 국정원 관계자를 분명하게 처벌하고 사과하는 게 정석이다 그게 법질서고 정의다.

최근 배우 김여진의 사건도 같은 선상이다. 이 배우가 문재인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방송국 고위 관계자가 배우의 출연을 금지시켰다. 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연예인은 최불암, 심양홍, 이미자, 김흥국, 현철, 설운도, 현미, 은지원 등이다. 이들의 TV 출연이 문제된 적은 없다.

2013년 대한민국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연예인의 방송출연, 다시 말해 밥줄이 끊기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직도 독재가 성행하는 북한, 아랍권 정도가 이런 상황 아닐까. 개인적으로 호불호를 표시할 수 있다. 즉 성향이 다른 후보를 지지한 연예인이 출연하면 보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를 TV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면 이런 대한민국이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국정 전반을 챙기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경제도 사회 곳곳에 내재된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공정성, 원칙, 투명성이 승리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을 제 1의 과제로 삼길 바란다. 박근혜 당선인이 이것만 지켜준다면 지금처럼 마음의 엉클어짐 없이 최초의 여성대통령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5년 후 지금의 깊은 상처와 회의가 성급한 판단이었다는 것이 증명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지금의 회의를 미안하게 만드는 대통령을 이젠 정말 만나고 싶다.


장명술 l 보스톤코리아 편집장 editor@bost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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