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383회
보스톤코리아  2013-02-04, 14:55:25 
찬찬하지 않은 성격 탓만은 아니리라. 가정마다 곳간의 열쇠를 누가 쥐고 있는가를 말하다 보면 모두가 가지각색이다. 우리 집 경우에는 가정에 소소한 것들과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들은 아내인 내가 관리를 하지만, 그 외의 다른 커다란 살림은 남편이 하는 편이다. 남편이 더 꼼꼼한 성격이고 아내인 나보다는 숫자에 관한 관념이 뚜렷해 들어오고 나가고의 계산이 확실한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에게 못 맡기는 이유도 있다. 남편은 가끔 이것저것 신경쓰는 것이 귀찮다며 이제는 아내인 나더러 모든 살림살이를 담당하란다. 그 소리를 듣자 머릿속부터 뜨거워지고 지끈거린다.

남편에게 나 자신의 합리화를 위해 숫자 관념이 부족하다고 핑계 삼아 말하기에는 자존심도 상할뿐더러 조금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남편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살림살이의 소소한 것들까지도 계산하고 또 계산을 거듭하며 산다. 그러니 자신에게 쓰는 돈은 꼭 필요한 것 외에는 허튼 돈을 쓰지 않는 편이다. 그에 비하면 아내인 나는 꼭 필요한 물건을 사기보다는 세일을 한다는 이유를 핑계 삼아 이것저것 물건을 챙겨보다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가정 아래 물건을 살 때가 있다. 며칠 후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은 정작 필요치 않은 물건이고 낭비일 뿐이다.

이렇듯 우리 집 살림살이는 남편이 챙기는 편이니 우편물 관리도 남편이 더 철저하게 한다. 요즘처럼 뒤돌아볼 사이 없이 훌쩍 지나는 생활에서는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이 먼저 그 일을 맡아 하는 것이 제일 경제적이고 실용적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분담하는 일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지다 보면 단 하루라도 한 지붕 아래에서 생활하는 부부가 조용할 날이 있겠는가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 부부는 자신이 맡아하는 부분에 대해 서로 잘 적응하고 적용하여 생활에 별 불편함 없이 지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의 삶에서 경험하지만, 똑 떨어지는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요즘을 사는 우리에게 편지라는 의미는 이제 옛날 얘기가 되었다. 이메일을 주고받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그 이메일조차도 셀룰러폰으로 편리하게 주고 받는 세상이 되었다. 요즘은 물건을 구입하는 일에서부터 은행 관리까지 일상의 소소한 생활의 모든 것들이 전화 하나로 전산처리가 되어 편리하게 되었다. 문득 디지털 시대의 테두리 안에서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는 미숙아로 미아가 된 나를 바라본다. 이렇듯 밀물처럼 밀려오는 디지털 시대에서 빠른 적응을 생각하다 보니 아날로그의 그 시대가 그립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우리의 일상에서 이처럼 편리해지고 빨라진 것은 분명한데, 그 편리해진 만큼에서 남은 시간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다. 하루의 시간을 가만히 뒤돌아보면 참으로 바쁘게 살고 있음은 누구나 느끼는 일이다. 그렇게 바쁘게 걷고 빨리 달리고 정신없이 뛰어가면서 진정 나에게 얻어진 것은 무엇이고 남은 것은 무엇일까. 문득 정신없이 달려온 나의 삶도 이제는 조금씩 되돌아보고 싶어지는 아침이다. 세 아이 키우느라 정말 정신없이 뛰며 살았다. 남편이 경제적인 부분을 담당했다면 아내인 나는 세 아이 대학 입학할 때까지 극성스런 엄마로 정신없이 바쁘게 뛰며 살았다.

엊그제는 보스턴의 한국 신문에서 '1월 27일 우표값 인상'이란 타이틀의 글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 요즘 우푯값이 얼마지? 하고 생각하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 어찌 이렇게 살고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하며 나도 나를 모르는 모습의 또 하나의 나의 단면을 만날 수 있었다. 우푯값도 제대로 모르고 살고 있구나! 그래, 어쩌면 이처럼 너무 가까이 있어 소홀히 여겼던 부분들과 소소한 일상의 중요한 존재들의 가치를 상실해가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루의 생각 속에 머물며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귀한 시간을 만났다.

일상에서 필요한 우푯값을 제대로 몰랐던 것처럼 가까이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의 소소한 마음의 얘기들을 제대로 듣지 않고 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바쁘다는 핑계를 내세워 급하고 빠른 강한 내 말만 던져놓고 상대방의 얘기는 귀찮아 귀담아듣지 않고 살지는 않았는지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또한, 그 던져진 말에 상처를 받은 이는 또 얼마나 많았겠으며 남은 아픔은 얼마나 오래도록 있었을까. 그래, 이제는 조금은 더불어 함께 나누며 살자고 그렇게 나 아닌 나에게 또 타일러 주는 아침이다. 아주 소소한 것들을 이제는 눈여겨 살펴보며 살자고 그렇게.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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