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392회
보스톤코리아  2013-04-08, 13:27:41 
아마도 거의 20여 년 전쯤 되었지 않았을까 싶다. 세 아이가 올망졸망 걸어 다닐 때쯤이었으니 말이다. 교회에서 한 그룹이 모여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그 그룹에 모인 분들은 나보다 10살 정도 위의 분들이 여럿 계셨다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내 나이는 20대 후반을 막 넘어 30대를 바라볼 때쯤이고 그분들은 30대 후반을 막 넘고 있는 시기였다. 그곳에 모인 여러 분과 성경에 대한 나눔 이외에도 아이들을 키우며 경험했던 이야기를 나눠주시니 내게는 더욱이 귀한 시간이었다. 때로는 나이 어린 사람들보다 나이 드신 분들이 편할 때가 있다.

어느 하루 모임이 있던 날 그분들 중 한 분이 삶에 관한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물론, 신앙에서 비롯된 경험내지는 체험 아니 간증이라는 표현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그분이 그날 나눠준 얘기는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내 마음속에 남아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저는 이제 집안의 구석구석 것들(부엌살림의 그릇까지도~)을 하나씩 꺼내어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하시는 말씀에 우리 모두는 귀를 쫑긋 세우고 듣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때 그분의 나이가 사십이 채 되기 전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삼십도 안 된 내게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분은 여느 주부들에 비해 보통 때도 검소하신 편이니 더욱 정리할 것이 뭐 있겠는가. 그때 그분의 말씀이 내게는 더욱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세상 나이 불혹의 사십을 오르며 잠시 내 삶을 돌아보는 귀한 시간을 가졌었다. 그렇게 훌쩍 시간과 벗 삼아 세월을 따라 지천명의 오십에 올라 다시 그분의 말씀이 떠오른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며 깊은 묵상의 시간을 갖는데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우선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이 무겁고 답답해 보이기 시작하니 가슴은 더욱 답답해지는 것이 아닌가. 무엇인가 덜어내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느낌으로 며칠을 보냈다.

집에 강아지를 키우니 방마다 카펫에 붙어있는 개털이 여간 신경 쓰이지 않는다. 물론, 아래층의 마룻바닥에서야 날아다니는 개털이 눈에 보이니 그 또한 편치 않은 마음이다. 하지만 카펫보다는 마루가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지난 3월 내내 위층 방바닥을 마루로 깔기 시작하여 마무리를 지었다. 공사는 마쳤지만, 위층 방마다 있던 물건들이 아래층 훼밀리 룸에 내려와 가득 쌓였다. 이제, 이 물건들을 정리해야 할 터인데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를 지켜보던 딸아이는 엄마에게 무조건 아까워 말고 Salvation Army(구세군)에 가져다가 도네이션 하라는 것이다.

딸아이의 말이 정답이다. 내게 필요 이상의 물건이 여기저기 쌓여 있다가 어느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내 욕심과 게으름으로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필요와 행복마저도 내가 빼앗은 것과 무엇이 다를까. 때로는 남의 물건을 훔쳐야만 도둑이 아님을 깨달을 때가 있다. 나의 이기적인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시간과 정성과 마음을 빼앗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봄을 맞으며 집안의 대청소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마음 깊은 곳의 영혼에 쌓인 먼지와 때를 털어내고 벗겨 내고 싶다.

봄을 맞이하여 '옷 정리'를 시작했다. 위층의 옷장과 여러 곳에 있던 옷가지들이 어찌나 많은지 머리가 지끈거리고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바로 스트레스 기운이 온몸과 마음에 돌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산을 좋아하고 사진 찍고 담기를 좋아하니 산에 오르내리는 옷과 들로 바다로 움직이는데 편안한 옷만 있으면 제일이다. 그래서 옷에 대한 욕심이나 관심마저 없어져 간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그에 필요한 물건만 있으면 더 이상 필요할 것이 없다. 요즘은 외출복에 큰 비중이나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때와 장소에 따른 제일 간단한 차림으로 예의를 지킬 정도만 챙기려 한다.

집안에 가득한 필요 이상의 물건에 쌓이고 묻혀 나 자신이 옴싹달싹 못하고 있는 것처럼, 지천명의 오십에 중년의 봄맞이 대청소를 하고 싶은 것이다. 오래전에 경험을 나눠주셨던 그분처럼 나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길 바라는 것이다. 그분은 세상 나이 불혹의 사십부터 시작하셨는데, 나는 세상 나이 지천명인 오십에 시작하니 조금은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늦었다 싶을 때 시작하는 것이 제일 빠르다고 하지 않던가. 더 늦기 전에 집안팤의 물건을 하나 둘 정리하면서 내 어지러운 마음도 정리하고 덜어내어 가벼워지고 싶다. 이렇게 봄을 맞이하며 중년의 봄맞이 대청소를 시작하는 중이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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