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태우면서
보스톤코리아  2013-09-16, 11:04:57 
가을은 달月이라 했다. 초가을이면 메밀꾳이 한창일 게다. 만발한 메밀꽃밭은 달빛아래서 더욱 밝다. 이효석이 썼다. ‘메밀꽃 필 무렵’ 한구절이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읽으면서, 달빛이 너무 밝아 메밀꽃 흰색과 부딪혔고, 읽는 내가 더 숨이 막혔다. 동이가 왼손에 쥔 채찍이 달빛에 어른거렸다. 굵은 팔목 힘줄까지 눈에 잡히는 거다. 허생원은 물에 빠졌는데, 물소리가 메밀밭 소금 덮힌 달빛에 오히려 차갑다. 

김유정이 봄이면, 내게 가을은 이효석이다. 늦가을엔 앞뒤마당 낙엽을 긁어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달력을 아직 몇장 더 넘겨야 할테지만, 때이른 낙엽이 몇잎 보이기 시작했다. 벌써 낙엽치우는 걸 걱정 아닌 걱정해야 한다. 게으른 내게 낙엽을 긁는 일은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옆집에서 주는 눈총에 주눅든다.  괴로움중에 쉽지는 않아도 그냥 보스톤에 사는 낭만으로 애써 위로한다.  ‘낙엽을 태우면서’를  떠올리고 몇구절 주섬주섬 섬기면서 말이다. 진하게 내려 더운김 오르는 커피라도 한잔 홀짝인다면 가을냄새가 두터워 질 게다. 보스톤에서 즐기는’가을동화’라 스스로 이름붙였다. 그래야 낙엽치우는데 힘이 덜 들테니 말이다. 아메리칸 드림이란 말이 가물거린다. 

낙엽과 커피는 묘한 조화를 이룬다. 늦가을 쌓인 낙엽과 더운 커피 향은 썩 잘 어울린다는 말이다. 무슨 커피 선전에 카피 문구 같다만 말이다. 안성기가 자주 나오던가? 이효석 선생은 원두커피를 사가지고 가슴에 품는다 했다. 그 옛날에 모든게 귀하던 그 시절에 말이다. 대단한 호사가였나, 아니면 시대를 앞서간 로맨티스트였나?  여전히 낙엽과 커피는 대단한 조합이다. 다시 의문이 일었다. 그럼 원두커피는 절구에 찧어서 타서 마신다는 말인가. 그럼 그 남는 건더기는 어떻게 하나? 한참 후에야, 다방에 들어가보고는 알았다. 화학에서 말하는 추출抽出이라는 거다. 여과지를 놓고 잘게 부순 커피를 더운물로 우려 내는 거다. 한약 달이듯 달여 내는것과 다르지 않다. 이걸 이해 하는데 몇년이 걸렸지 싶다. 화학을 공부한 덕이다. 헌데,  추출이라 말해놓고 보니 매우 송구하다. 커피맛이 덜할테니, 그냥 ‘커피 내린다’ 고 말을 바꾼다. 말이 구수하다.

내가 건조하게 살아 가고 있는 겔까? 낙엽을 태우지는 못해도 긁고 치우는걸 즐겨야 하지 않을까. 한여름엔 그늘져 고마웠는데, 내가 나무에게 보여줘야 할 최소한 보답이 아닐까. 올해도 어김없이 낙엽을 긁어 모을거다.  겨울이 급하게 닥치기 전에 일을 서둘러야 한다. 눈이 내리면 치우지 못한 낙엽은 내년 봄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젖은 낙엽은 무겁고 보기에도 정겹지 않다. 바삭바삭 할 적에 치워야 한다. 
갈지 않은 스타벅스 원두커피가 한봉지 있는데,  갈아야 할게다. 커피머신을 치웠다만, 먼지를 털어야 할까보다. 낙엽을 긁어야 할 때에 커피를 내려야 겠다. 그리고 이제는 묻고 엄연한 생활로 돌아 서야 한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김현승, ‘가을의 기도’)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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