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
보스톤코리아  2013-12-09, 14:19:36 
늦가을 바람은 모든 걸 걷어간다.  뒹굴던 낙엽도 날려 가는데,  사랑은 가슴에 남는다.  ‘세월이 가면’ 이다. 박인환 시인이 빠지면 섭섭할 게다. 박인희 목소리를 타고 낙엽이 날린다. 박인환의 시는 박인희가 읽어야 한다. 헌데 박인환과 박인희가 성姓과 이름이 매우 비슷하다. 우연치고는 기이하다. 흐르는 세월은 서늘하고  초겨울 바람은 차갑다.

    나뭇잎은 떨어지고/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은 덮혀서/우리들 사랑이 간다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세월이 가면 중에서, 박인환)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다. 삼십년이면 한 세대 간격이다. 그러니 강산이 세번 변하면  한 세대가 간다. 헌데, 십년 아니라 두어 세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렉싱톤 타운센터 모습이다. 거리 모습과  배틀그린과  동상과 기념조형물이 바로 그 변하지 않는 풍경이다. 사진으로 보고 확인해 봤는데, 변함이 없다 없다 해도 너무 변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그 건물들이 그냥 있다.  그 거리가 그 길이고, 건물이 옛적 그 붉은 벽돌집인게다. 오직  오고가는 자동차 모델만 다르더만.  물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달라졌다.  두어세대 후 사람들이 오고 간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을 렉싱톤은 허락하지 않는다. 뉴잉글랜드 다른 도시라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게다.

건축학개론. 작년 이맘때,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안에서 본 영화다. 삼사십대 중장년들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라 했다. 하지만,  영화는 내게  밍밍하기가  여늬  다른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공高空에서 입안 깔깔 할때 봐서 그런지 모르겠다. 편치 않은 자리에, 먹은것 제대로 삭일수 없어 더부룩한 기운에 봐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면  좁디 좁은 화면은 건축학 개론을 강의 듣고 보기에 너무 좁아 마땅하지 않았는지도.   설사 그렇다 해도, 내게는 감흥이 덜 했다. 영화속 그 시절을 이미  건너왔기 때문일 거라 혼자 삭였다.  하지만 만나자고 약속했던 그 작은 한옥韓屋은 인상깊어 눈내리던 좁은 마당이 오히려 아련했던 기억이다.

응답하라 1994. 연속극이 한창 인기인가 보더라. 한편을 봤다. 젊음이 부러워서 본 건 아니다. 배경이 되는 건물이 눈에 익었다. 건축물은 아직도 건재했고, 화면에 비친게 더욱 아름답더라. 산화철 섞인 화강암 건축물과  돌계단과  계단식 강의실이 한 세대 전에 드나들고, 오르내리던 곳이었으니 감회가 남 달랐다. 담쟁이 얽혀 무성하던 건물 앞,  잔듸밭이며 벤취가 아련하다는 말이다.  헌데, 연속극에선 말이 너무 험하더군.  세월이 갔고, 한 세대 이상 흘렀는데 말만 거칠어 졌던가. 아니면 사투리 섞인 애교인가. 그렇다고 내가 무슨 범생이 말만 했다는 말은 아니다. 

1994년. 복고復古라 해야 한다. 이십여년전이니 말이다. 아니면 올드 패션이라 해야 할 것인가. 하지만 내게 그 시절은 복고는 커녕 오히려 포스트 모더니즘이다.  그것도 아니면 왕복고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뭘 경험해 봤어야, 복고인지 고개를 주억이기라도 할 것 아닌가 말이다. 그냥 건너 뛰었던 거다. 자주 등장하는 흔한  ‘삐삐’를 한번도 가져본 일도 사용해 본적도 없으니 말이다.  누구나 다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작은 물건이다. 아직, 미국에선 병원의사들만 지니고 다녔다. 내가 아는  의사선배가 그걸 차고 다녔기에 안다. 나야 무슨 삐삐가 필요했으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라고 물었다. 낙엽지고 날이 차가워 지니 옛일이 새삼스럽다.  엊그제는 늦가을 비가 내렸다. 

 ‘응답하라’는 천안함이 침몰했을 때, 상관이 병사들에게 보낸 명령이 아니던가. 응답하라고, 살아서 귀환하라고 말이다. 다시한번, 삼가 명복을 빈다. 
‘내가 옛날 곧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였사오며’ (시편 77:5)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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