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430 회
보스톤코리아  2014-01-13, 13:39:09 
갑오년(甲午年) 말띠해인 2014년 연초부터 뉴잉글랜드 지역 보스턴뿐만이 다른 주(시카고 등)에서도 폭설로 몸살을 알았다. 세 아이가 겨울방학으로 모두 집에 와 있었고  한국에서 친정 조카의 아들(손자 녀석)이 이모할머니 집에 놀러 와 있어 함께 눈을 치우니 눈을 치우기가 어찌나 수월했는지 모른다. 그 폭설인 와중에 큰 녀석은 시카고의 친구에게 놀러 가기로 약속을 한 상태였다. 로건 에어포트에서 비행기가 출발을 할 것인지 아니면 캔슬이 될 것인지 확실치 않아 공항 내에서 2시간을 기다리다가 결국 보스턴에서 시카고행 에어플레인에 몸을 싣고 떠났다.

우리가 처음 집을 짓고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벌써 21년이 되었다. 그것은 우리 집 막내 녀석의 나이와 똑같아 잊지 못하는 일 중의 하나이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21년 동안에 눈을 치우는 기계(snow blower)가 없었다는 것이다. 집에 미리 도착한 막내 녀석이 크리스마스 무렵 혼자서 가득 쌓인 눈을 치우며 심술이 가득 차 있었다. 아직까지 스노우 블로워가 없는 집이 어디 있느냐고 말이다. 막내 녀석은 업스테잇 뉴욕에서 대학교의 화이널 시험을 다 마치고 집에 왔는데 큰 녀석은 가까운 보스턴 시내의 대학원에서 Final Exam이 끝나지 않아 오지 않고 있어 더욱 심술이 났던 모양이다.

세 아이가 어려서는 남편도 비지니스가 바쁘기도 하거니와 경제도 괜찮아 가정의 살림살이도 여유가 있었던 때였다. 우리 동네에 10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데 각 가정의 아이들의 나이도 다 비슷했고 그렇게 비슷한 모습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렇게 20년이 다 되는 동안 추운 겨울과 폭설에도 그럭저럭 다 잘 지내곤 했다. 우리 집뿐만이 아닌 다른 집들도 개인이 집의 Driveway의 눈을 치우기보다는 사람을 불러 치우는 경우가 많았었다. 그렇게 그럭저럭 살다 보니 지금까지 와 있던 것인데 막내 녀석은 혼자 눈을 치우며 힘이 들었던지 투덜거리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경제가 어려워진 이유였을까 아니면 타운에서 도로를 치우는 눈이 다시 Driveway를 막는 이유였을까. 몇 년 전부터 한두 가정에서 사람을 부르기보다는 Snow blower로 눈을 치우는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연년생인 세 아이를 대학교에 입학시키고 졸업을 하기까지 침체된 경제로 가정 경제 또한 벅찬 때라 남편이나 아내인 나 자신도 참으로 버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절약해야 하는 시점에서 눈을 치우는 일부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선뜻 치우지 않던 눈을 남편에게 치우라고 다그칠 수가 없어 곁에서 도우며 함께 치우기 시작했다.

막내 녀석의 심술 덕분으로 이번의 폭설에는 Snow blower를 하나 장만하게 되었다. 처음 Driver's License를 땄을 때처럼 기분이 좋아 막내 녀석은 Driveway에 가득 쌓인 눈을 열심히 신바람이 나서 눈바람을 일으키며 치우기 시작했다. 이 녀석 덕분으로 이번의 폭설에는 편안하게 눈을 치울 수 있었다. 엄마도 직접 스노우 블로워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 준다. 처음 해 볼 일이니 힘들 거라는 생각보다는 설레는 마음에 눈이 한차례 왔으면 좋겠다고 어린아이 같은 생각을 잠시 해본다. 하지만 폭설이 내려 여기저기에서 곤란을 겪는 일은 싫으니 묵묵히 있어야 할 일이다.

지난 폭설 후에도 White Mountain(Mt. Pierce /4,312ft)을 산을 올랐었다. 산 정상에 올라 바라다보이는 설경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저 멀리 장황하게 펼쳐진 설산 끝으로 Washington Mountain이 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말을 잃고 말았다. 자연은 늘 나 자신을 뒤돌아보게 하고 침묵하게 한다.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작은 나를 만난다. 자연의 웅장함 속에서 신비로움을 체험하며 창조주의 섬세한 손길과 피조물인 인간을 잠시 생각한다. 하지만 이 폭설 중에 산을 오를 수 있는 것은 열정만 가지고는 힘들다는 것이다. 겨울 산을 오르는 데 필요한 장비(아이젠, 스패츠)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폭설의 눈을 깨끗이 치우려면 필요한 장비인 Snow blower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겨울 산(雪山)을 안전하게 오르려면 필요한 장비인 Eisen과 spats가 필요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에서도 삶에 필요한 도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사람마다 개인차는 있겠으나 삶의 가치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선택해야 할 일이다.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아야 하고 마음이 아프면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대상이 가족이면 좋을 일이지만, 가족이기에 쉽지 않은 입장에 놓이기도 한다. 그럴 때 선택할 수 있는 지혜가 바로 '삶의 도구'는 아닐까 싶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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