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446 회
보스톤코리아  2014-05-05, 12:05:10 
지난 한국 방문 중 고향 땅에 모셔진 부모님 산소에 다녀오게 되었다. 이제는 두 분이 이 세상과 이별하고 자식들과도 이별한 지 15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들이 없던 우리 친정 집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인 친정엄마의 유언같은 말씀이 있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딸자식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아버지 묘를 잘 관리하시겠다며..."
"내가 죽은 후에는 5년만 묘에 놔두고 화장을 해달라시던 말씀이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 돌아가시고 엄마가 돌아가신 지 14년이 되었다. 친정어머니가 남기셨던 유언 같은 말씀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것은 자식 된 도리랄까 아니면 섭섭함이랄까,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직도 남들의 시선이 의식되어선지도 모를 일이다. 평생 아들자식을 낳고도 키우지 못했던 아버지 어머니의 한(恨)에 대한 딸자식의 애틋한 마음과 보답이랄까 뭐 그런 느낌이 늘 교차한다. 이제쯤에는 두 분의 묘를 정리하고 화장을 해드려야겠다고 서로 지나는 말로 하지만, 그 누구도 선뜻 그 일에 대해 말문을 열지 않는 것은 아마도 마음에서 내어놓지 못한 까닭인 게다.

다비(茶毘)  

허허로운 것들일랑 남겨두지 말고
 태우고 태우다 하얗게 남은 재마저 
 날리다 날리다가 지친 먼지 터럭마저
 허상의 껍데기들마저도 태우소서

 남겨두지 말고 모두를 태우소서
 남은 사람이 있다면
 남겨 놓은 사랑이 있다면
 모두를 태우고 가소서

 오르고 또 오르는 저 연기처럼
 천상의 나팔소리 들리고
 하늘 문 열릴 때면 
 가벼운 손짓으로 오르소서

 남겨 놓은 사람들일랑
 안타까운 사랑들일랑
 아쉬운 이별일랑 이젠 태우소서
 이제는.


이렇게 이 세상에서 인연 지어진 것들은 모두가 이별 앞에서 슬픈 일이다. 그 어떤 관계에 놓인 인연일지라도 말이다. 더욱이 부모와 자식의 천륜 관계의 인연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 아니던가. 특별히 어머니와 자식의 인연은 더욱 그럴 것이라는 것은 나도 어미인 까닭이다. 자식 앞에서 부모를 먼저 떠나보내는 일이야 당연한 일일 테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아이들이 어려서 손을 잡고 걷다가 넘어져 무릎에 상처라도 나게되면 엄마의 가슴은 말할 것도 없이 살이 아프고 뼈가 저린 그 아픔과 고통을 자식을 둔 어머니라면 경험했을 것이다.

이별은 이처럼 어떤 모습으로든 늘 슬프다. 떠나보내기 싫은 것은 남은 자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일은 더욱이 가슴 아픈 일일 게다. 모두가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과 영영 만날 수 없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어찌 사람의 마음으로 그 이별의 끝자락을 잡을 수 있으며 또 어찌 놓으며 보낼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그 안타까운 마음에 놓지 못하고 보내지 못하는 것일 게다. 내 아버지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15년의 세월이 흘러도 딸자식들에게 유언처럼 남기셨던 어머니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그 '인연의 끈'을 놓기 싫어서일 게다.

"다비의식(茶毘)의 불교적 의미는 사람의 육체는 집과 같고 정신은 그 집의 주인과 같아서 집이 무너지면 주인이 머물 수 없듯이 몸이 무너지면 정신이 떠나는 것인데, 사람들은 나무와 흙으로 지어지고 온갖 더러운 것으로 꾸민 집에 대해 애착을 갖기 때문에 그 집의 더러움을 알지 못하고, 그리하여 집이 무너지더라도 홀연히 떠나지 못한다고 불교적인 입장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죽은 후에나마 화장으로 이러한 미혹에서 벗어나게 해 주어야 할 텐데 매장함으로써 망령된 생각을 그대로 보존케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박한다." 

단 한 번도 눈으로 직접 불교의 화장례 의식인 다비(茶毘)를 본 일이 없다. 다만 법정 스님이 입적하셨을 때 스크린을 통해 보았던 경험뿐이다. 그 의식을 보면서 슬픔이라기보다는 참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세상과 그리고 더욱이 사람에게서는 주고받을 수 없는 그 무엇, 알 수 없는 그 어떤 절대자의 손에 의해 하늘과 땅을 이은 아름다운 춤사위 같은 그런 느낌의 경험을 했다. 지난 한국 방문을 하고 돌아오면서 늘 멀리 있어 부모님 기일조차 잊고 지낼 때가 많아 언니와 형부들께 늘 송구한 마음이었다. 이제쯤에는 엄마의 그 유언 같았던 말씀의 실천을 이뤄드리고 싶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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