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보스톤코리아  2014-06-02, 14:37:08 
늦봄인지 초여름인지 구별이 쉽지 않다. 봄이 무르익기도 전에 지레  봄날이 가는 걸 아쉬워 하는 걸까. 다구친 여름에게 오히려 미안하다.  중년들에게는 한국영화 ‘봄날은 간다’가 먼저 오는 모양이다.  이영애가 나오고, 키가 너무 커서 싱겁고 선해 보이는 남자배우가 나오는 영화다. 이영애가 산소같은 여자라고.? 장금이 아닌가. 이 연속극을 내가 놓쳤는데, 그건 아쉽다. 그래도 봄날은 간다.

나잇살 지그시 드신 선배들에게는 백설희표 ‘봄날은 간다’가 먼저다.  문학한다는 사람들이 꼽은 가요 중에 제일이라더라. 가사와 곡이 매우 애틋한 건 내가 익히 안다. 내 어머니가 이따끔 콧노래 했다. 세월 지나 그 아들이 봄이면 듣는다. 이 노래를 들어도 하등 이상할게 없는 나이가 되었다. 헌데, 이 노래는 누가 불러도 나쁘지 않다.  그게 묘하다. 곡이 좋아 그런건가. 다른 노래와 사뭇 다르지 싶다. 게다가 제목은 제목대로 몽롱하다.  서럽던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꽃이피면 같이 웃고
꽃이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맹세에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꺾이는 그 구절에서 목이 멘다. ‘꽃이 피이~면’ 하고 길게 빼며 올라가면, 여지없어 스스로 무너진다.  그래서 그 부분이 나올적이면, 지레 눈을 감는다. 아니 자동으로 눈이 감기는지도 모르겠다. 행여 눈물방울이라도 맺힐 건가.  눈감으며 봄날은 간다.

이제는 별로 볼일이 없을 거다. 황톳길 마른 신작로다. 가을이면 길가에 코스모스라도 날릴 텐데, 봄이니 마른 흙먼지가 대신 날린다. 버스라도 지나가면 달작지근한 흙먼지가 번지고 남는다는 말이다. 봄 가뭄에 마른 땅일테니, 흙먼지는 길가 보리밭 두렁에 날리는 게다. 버스에서 갓내린 연분홍 치마자락은 먼지바람을 이길 수 없을 것인데, 봄바람인지 먼지바람인지 구별이 쉽지는 않다. 먼지를 피해 고개를 돌린 아낙네의 목덜미가 너무 희다. 아낙네의 가는 목덜미가 오히려 애처롭다. 

연분홍 치마에 꽃무늬 손수건도 때이른 봄 더위에 아련하다. 하지만, 내게는 흰색 저고리에 남색치마도 고와 보인다. 국민학교 여선생님이라면 그건 앞뒤가 어울린다.  한복 치마가 참 유용하다고 이어령교수가 말했던가. 보자기와 치마가 사촌간이라고 말이다.  이불은 아닐 테지만,  치마는 덮개로도 쓰였지 싶다. 이른 초저녁이거나, 한낮에 잠이 들었다 얼핏 깨면, 어머니 치마가 자주 덮혀있었다.  그 날은 봄날 저녁이었다. 

봄날은 한창인데 봄날은 간다며, 지레 배웅하는 베이비부머의 서글픈 한탄가를 듣는다. 노류장화路柳墻花의 신세한탄이 서글프다는 말이다. 돌아 보면 아쉬움만 가득한데, 그래도 용케 여기까지 왔구나. 헉헉대며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 있구나. 스스로 쓴 입맛 다시고 고개를 숙인다. 하늘을 향해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지 그건 아직도 자신이 없는데, 갈 길이 멀다. 이제야 반환점을 돌았는데, 갈 길이 까마득하다. 그래도 슬픈 봄날은 간다.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아가 8:14)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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