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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김씨와 가락 김씨의 시조는 김일제?
보스톤코리아  2014-11-04, 11:17:43   
감숙성 흥평현 남귀향 도상촌에 있는 김일제묘 (한무제의 배장묘) 묘비
감숙성 흥평현 남귀향 도상촌에 있는 김일제묘 (한무제의 배장묘) 묘비
2014-07-25

 신라 문무왕 비문에 신라 김씨의 시조로 언급된 투후(秺候) 김일제(金日磾, BC 134 - BC 86)는 흉노 우현왕 휴저왕(休屠王)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BC 127년 흉노를 정벌할 기회를 엿보고 있던 한무제가 위청, 곽거병을 시켜 흉노를 공격하자 흉노의 좌현왕 훈야왕과 우현왕, 휴저왕이 맞서 싸웠지만 흉노의 세가 궁하게 되었다. 결국은 좌현왕이 한나라에 항복하면서 일제의 아버지 휴저왕을 살해했으니 일제가 14살이 되던 해였다.

 김일제는 어머니 (1)알지(閼氏)와 동생 윤(倫)과 함께 한나라 군의 포로가 되었고 김일제는 노예의 신분으로 한나라 궁성에서 말을 키우는 천역을 맞게 되었다. 흉노의 왕자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했지만 김일제의 의연한 모습이 한무제의 시선을 끌게 되어 노예의 신분을 벗어나게 되었다. 김일제는 한무제로부터 김씨(金氏)성을 사성받게 되었는데 이는 흉노인들이 금으로 사람 형상을 만들어놓고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김씨 성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로써 김일제는 세계 최초의 김씨가 된 것이다. 

 한무제가 김일제를 신임한 것은 아주 각별한 것이었다. 한번은 한무제가 자객에게 암살당하려는 순간에 김일제가 몸을 날려 한무제의 목숨을 구한 뒤로는 김일제가 무제의 최측근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한무제가 죽을 때 김일제, 곽광, 상관걸, 상홍양 네 사람에게 후사를 부탁한 것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일제가 죽기 직전에는 한무제의 유언에 따라 투정후(秺亭候) 즉 투후라는 제후에 봉해졌는데 이 벼슬은 본인이 사망하면 자손에게 계속 전해질 수 있는 특별한 제후 벼슬로 일제가 죽은 후 5대까지 계승되었다. 특별하게 투후라는 별칭을 붙인 이유는 김일제의 부왕 휴저왕의 영지가 황하 상류에 있는 하투(河套)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김해 대성동 29호분 동복
김해 대성동 29호분 동복
 

 한선제 때 세도가 곽광의 자손들이 반역죄로 몰락한 다음에는 김일제 일가는 한나라 제일의 세도가문이 되었다. 김일제의 증손 김당(金當)때는 그의 이모부 왕망(王莽)의 고모 왕정군(王政君)이 한원제(BC 48 – BC 33) 황후, 효원황후(孝元皇后)가 되고 왕망이 전권을 잡으면서 김씨들의 세력도 끝없이 부상하게 되었다. 김일제 일가로 제후가 된 사람만 80명이 넘었다고 한다.

 김씨가의 번성은 왕망이 한나라를 뒤엎고 신(新, AD 8 – AD 23) 나라를 세우면서 절정에 달하지만 신나라가 20년도 지탱 못 하고 후한(後漢) 광무제에게 멸망당하자 김씨가의 영화도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 광무제는 한나라를 멸망시킨 왕망의 배후세력인 김씨들에게 보복의 칼날을 들이댔다. 

 김씨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광무제의 칼끝을 피해 도피하는 것이었다. 당시 김씨들의 행적을 밝혀주는 기록이 발견됐다. 서기 864년 향년 32세로 당나라에서 사망한 신라 김씨 부인의 묘명에 그 내용이 적혀있었다. 김씨 부인은 재당 신라인 김충의의 손녀이자 김공량의 딸이었다. 그녀의 묘명에 김씨들이 요동으로 피신해서 살게 되었고 그들 김씨가 자신의 조상이라는 글을 올려놓았다. 즉 김일제의 후손이 요동으로 피신했고 그 후에 신라 김씨인 자신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대당 김씨부인 묘명(산시성 시안시 비림 박물관 소장)
대당 김씨부인 묘명(산시성 시안시 비림 박물관 소장)
 
 부산외대 권덕영 교수가 발견한 “대당 김씨 부인 묘명(大唐 金氏 夫人 墓銘)”은 중국 산시성 시안시(西安市) 비림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왕망이 사망하고 딱 19년 후에 한반도 최초의 김씨 김수로왕이 김해 구지봉에서 가야의 왕으로 태어났고(AD 42), 그로부터 23년 후에는 신라 김씨의 시조 김알지가 신라의 서울 금성(金城)에서 태어났다. 중국 김씨들이 몰락하자마자 절묘하게 타이밍을 맞춰 한반도에 새로운 김씨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결코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오늘날 만주의 요서, 요동, 한반도 서북지방, 전라남도 해안 및 김해, 제주도, 그리고 바다 건너 규슈, 오키나와에 이르기까지 왕망 때 딱 10년만 통용되었던 화천(貨泉)과 한무제 이후로 중국의 공식화폐였던 오수전(五銖錢)이 한반도 서쪽 해안을 따라 출토되고 있다.

 이것은 김일제 후손들이 목숨을 건지기 위해 탈출하면서 도피경로에 남긴 흔적이 아니겠는가? 왕망은 황제로 즉위하자 종래부터 오수전이 통용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화천이라는 새 동전을 만들어 유통시켰다. 예전에도 새로 나라를 세우면 구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화폐 개혁을 하는 것이 기본 순서였다. 왕망의 경우는 새로 나온 화천에 대한 백성들의 거부감이 너무 거세어서 민란이 줄을 이었다. 결국 10년만에 화천 주조를 중지시키게 되었다.

 왕망을 무찌르고 후한(後漢)을 건국한 광무제는 응당 왕망이 만든 화천이 유통되는 것을 중지시킬 줄 알았는데 오히려 화천을 좋아해서 계속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 이유는 화천(貨泉)의 천(泉)자를 풀이하면 백수(白水)가 되는데 백수는 바로 광무제 출신지명이었기 때문이었다. 김일제 후손들이 중국을 탈출하는데 화천(왕망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광무제가 도와준 셈이다. 

 김해 회현리 패총은 삼한시대부터 금관가야 멸망까지 오랜 기간 동안에 형성된 조개무덤이다. 동쪽 구름에는 예전 가야의 궁성터로 짐작되는 봉황대 유적이 있는데 이곳에서 많은 집터가 확인되었다. 이 곳에 살던 사람들이 조개껍질을 비롯한 생활 쓰레기를 버린 것이 회현리 패총이 됐을 것이다. 이곳에서 화천(왕망전)이 출토되었다. 왕망전을 사용했던 사람이 김해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가야 건국 신화가 시작된 구지봉과 봉황대 유적지 사이에는 대성동 고분군이 있다. 왕의 위세품이 많이 출토되는 것으로 미루어 가야 왕과 왕족들의 무덤군으로 추정된다. 대성동 29호, 47호분에서 흉노 리더의 상징물인 동복이 출토됐다. 김해 양동리 235 호분에서도 또 다른 동복이 출토됐다. 

 동복은 흉노인들이 말등에 싣고 다니는 취사도구이며 제사 지낼 때는 제물을 담는 제사 도구로도 쓰인다. 흉노뿐 아니라 스키타이인들이 수장의 상징물로 귀하게 여기는 물건이다. 이들이 지도자의 권력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때는 동복을 물려준다고 한다.

한무제 때 흉노 활동 지역
한무제 때 흉노 활동 지역
 
 김해에서 동북이 세 개나 출토된 것은 흉노의 수장에 필적하는 사람이 김해에 있었다는 의미가 되고, 대성동 왕족묘지에서 발굴된 것은 가야 왕족이 흉노의 수장이거나 수장들의 후손이었다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1) 알지(閼氏): 흉노말로 ‘알’은 금(金)이나 왕(王)을 의미한다. 그들은 왕의 부인을 알씨(閼氏)라고 불렀다. 흉노족은 말은 있었지만 문자가 없어서 표기는 한자로 했었다. 알씨의 ‘씨’를 한자로 표기하고 발음하면 ‘씨’가 아니고 ‘지’로 발음하기 때문에 알지가 된 것이다. 알지는 왕비를 뜻하는 보통명사지 고유명사가 아니다. 알씨가 한반도에 들어와서는 ‘아씨’가 되었고 경상도에서는 ‘아지’로 되었다가 ‘아지매’가 되었다. 일본 천황가에서 일년에 한번 지내는 시상제 때 한반도로부터 한신(韓神)을 초혼하는데 한신의 이름을 ‘아지매’라고 부른다. 축문의 맨끝부분은 일본 사람은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한국 사람은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아지매 오소 오소 어서 어서 ∙∙∙’.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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