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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의 뿌리 (5) >
보스톤코리아  2014-11-04, 12:35:59   
08/01/2014

신라 김씨의 뿌리가 흉노 우현왕 (1)휴저왕의 아들 투후 김일제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기록
을 남긴 문무왕 비문은 조선조 때 경주 부윤 홍양호(1724-1820)가 1796년에 처음 발견했지만 탁본만 뜬 다음에 곧 소실되었다.

1817년에 금석문(金石文)의 대가, 추사 김정희가 재발견하여 1817년과 1824년 두 차례에 걸쳐 탁본을 뜨고, 그의 저서 해동비고(海東碑故)에 비문에 관련된 내용을 기록하였다. 이 비문은 문무왕(AD661-692)사후 6년 후(AD687)에 31대 신문왕(AD 681-AD 692)이 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것으로 사천왕사지에 보존되어 왔다고 기록하였다.
추사는 탁본을 청나라 금석문 학자 유연정(劉燕庭)에게 전하여 그의 저서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에 묘비의 내용이 실리게 되었다. 그 이후에 묘비가 다시 소실되었다가 1961년에 묘비 하단 부분이 재발견되었고 2009년에 상단 부분도 재발견되어 현재 경주 박물관에 묘비 전체가 보관되어있다.

비문은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에 마모가 심했지만 홍양호 경주 부윤이 남긴 탁본의 도움으로 신라 김씨 뿌리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게 되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신령스런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와 화관지후(火官之)后의 창성한 터전을 이었고 높이 세워져 바야흐로 융성하니 이로부터 가지(枝)의 이어짐이 비로서 생겨 영이한 투후(秺侯) (2)제천지윤(祭天之胤)이 7대를 전하였다. 15대조 성한왕(星漢王)은 그 바탕이 하늘에서 내리고 그 영이 선악(仙岳)에서 나와 00을 개창하여 옥란을 대하니 비로서 조상의 복이 상서로운 수풀처럼 많아 석류(石紐)를 보고 금여에 앉아…”로 계속되고 있다.
한국 금석문(金石文)의 권위자 김재섭 씨는 중국의 금문학자 낙빈기의 금문신고(金文新攷)를 기초로 해서 이 글을 풀이하였다.

여기서 나오는 화관지후는 BC 2300년의 순임금을 의미한다. 비문의 내용은 투후(秺侯: 김일제)의 7대 손이 성한왕(星漢王)인데, 성한왕은 문무왕의 15대 조상이 된다는 내용이다. 중국 역사상 투후 벼슬을 지낸 사람은 김일제와 그의 자손들 뿐이다.
비문은 분명하게 문무왕과 신라 김 씨의 조상이 투후 김일제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비문에 나오는 문무왕의 15대 선조인 성한왕은 누구인가?
세보를 따져 올라가면 김알지가 16대 조상이 되고 그 아들 세한(勢漢)이 15대조가 된다. 추사 김정희는 그의 저서에서 김알지가 성한왕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진흥왕 순수비 (AD 586)를 필두로 고려 때까지 500여년 동안에 세워진 수많은 비문에 성한왕을 신라 태조(太祖)로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신라를 건국한 창업지주는 박혁거세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신라 사회는 성한왕이 신라 태조라는 사실이 적어도 500년동안 신라 조야에 공인된 사실이었다는 것이다.

AD 695년 문무왕의 동생 김인문 묘비에는 태조 한왕(太祖 漢王)으로 기록되었고 AD 872년 흥덕왕릉 비문에는 태조 성한으로, AD 937년 황해도 해주에 있는 진철대사 비문에는 성한 지묘로, 신라가 망한 후 4년, AD 939년에 세운 원주흥법사지 진공대사 탑비에는 기선항자 성한으로 기록하고 있다.
김인문 묘
김인문 묘
 

한결같이 한왕(漢王)으로 표기하는 의도는 성한왕이 중국 한(漢)나라로부터 유래했다는 암시를 주고 있는 것이다. 30대 문무왕보다 100년 전인 24대 진흥왕 29년 (AD 568)에 건립된 마운령과 황초령 순수비에는 태조(太祖)의 기업을 계승한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당시 신라 사회는 성한왕을 창업지주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성한왕을 인정하는 것은 그의 조상 투후 김일제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서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는 성한왕은 물론이고 김일제의 이름조차 언급된 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
홍평현 도상촌에 있는 김일제 묘비
홍평현 도상촌에 있는 김일제 묘비
 
우리는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데 비문과 역사서 기록 중 어느 것이 더 신빙성이 있는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금석문(金石文)이란 쇠나 돌 또는 목간에 글씨나 그림을 새긴 것을 일컫는다. 이 글의 내용을 풀이하고 서체와 서풍을 연구하는 학술적 탐구를 금석학이라고 한다. 추사 김정희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금석학자였다.

역사 사실을 규명하는데는 금석문의 신빙도가 역사서를 능가하기 마련이다. 문무왕 비문에서 보듯이 문무왕 사망 후 꼭 6년 후에 당시 사회 사정에 정통했던 사람이 만든 것이 문무왕 비문이다. 삼국 사기, 삼국 유사는 문무왕이 사망하고 600년이나 경과된 1140년경에 편찬된 책이다. 6년과 600년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문무왕 비문의 내용이 우리에게 많은 역사적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학자 문정창(文定昌)씨는 그의 저서 ‘가야사’에서 동방의 김씨는 거의 모두 (3)소호금천의 후손이요 또 김일제(金日磾)의 후손이라고 하였다. 그는 신라 김씨는 김일제로부터 투후 벼슬을 5번째로 계승한 김성의 후손이고 김수로왕의 가락 김씨는 김일제의 동생 김륜(金倫)의 5대손 김탕이라고 주장하였다.




(1) 휴저왕(休屠王): 흉노 번왕으로 투후 김일제의 부왕이다. 휴도왕의 도(屠)자는 죽일 도자로 이름 그 자체로 죽일 놈이라는 뜻이다. 흉노족은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이름을 중국인들이 험상궂게 명명해 놓았다.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은 휴저왕으로 읽을 것을 권하고 있다. 필자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

(2)제천지윤: 흉노는 금으로 사람 상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그래서 김일제가 한무제로부터 김씨를 사성받게 되었다.

3)소호금천: 산해경(山海經)에 이르기를 동해 밖에 큰 골짜기가 있는데 소호국이다. 소호 금천은 동이족으로 황제 헌원의 아들이고 김씨의 시조다.
김인문 묘비, 거북 받침대, 비문은 경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김인문 묘비, 거북 받침대, 비문은 경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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