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핫이슈
미국
뉴잉글랜드
한인
칼럼
교육,유학
비즈니스
사회,문화
연예,스포츠
인터뷰
오피니언
화제,황당
ENGLISH
학생칼럼
iReporter
보스톤여행
날씨
포토뉴스
동영상 뉴스
칼럼니스트
지면 보기
  뉴스칼럼
<김씨의 뿌리(11)>
보스톤코리아  2014-11-04, 14:51:39   
한나라때 흉노제국 영역
한나라때 흉노제국 영역
2014-09-05

흉노의 기원

흉노 민족의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흉노는 자신만의 문자가 없었으므로 자기 조상과 민족의 근원에 관한 기록을 남기지 못하였고 구전으로 전하여지는 얘기와 중국인, 유럽 사람들이 기술한 기록이 남아있지만 흉노를 야만족으로 폄하하는 편견이 앞서 있어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원래 그들의 이름은 ‘훈’이었지만 중국 사람들이 그들을 비하하려고 ‘훈’ 대신에 오랑캐 흉(匈)을 쓰고 노비 노(奴)자를 붙여 흉노라고 부르면서 지금까지도 흉노로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훈’은 흉노말로 사람이라는 뜻이다. 중국에서도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렀으니 은(殷)나라 때는 귀방(鬼方), 주(周)나라 때는 험윤(獫狁), 전국시대 때는 견융(犬戎), 그리고 한나라 때는 흉노로 불렀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귀신 같은 놈들이 사는 나라, 승냥이 같은 오랑캐, 개 같은 오랑캐, 노예 같은 오랑캐 등으로 모두 비하하는 뜻을 가지고 있는 비속어로 불러오고 있었다. 

왜 중국인들은 흉노를 미워했을까? 워낙 흉노에게 많이 당했기 때문에 원한이 사무친 것이다. 

힘으로는 당할 수 없으니 문자로 보복한 것이다. 흉노에게 당해서 주나라가 망했고, 진시황은 만리장성을 쌓고 흉노를 방어하려다 망했다. 한고조 유방은 흉노의 선우 묵특과 싸우다 백등산에서 포위당하고는 매년 조공 바칠 것을 약속하고 풀려났다.

오르도스 과거(위)와 현재(아래) 모습
오르도스 과거(위)와 현재(아래) 모습
  

흉노에게 워낙 심하게 당해서 한고조는 후손들에게 흉노와 싸우지 말라는 유언까지 하게 되었다. 흉노는 기원전 4세기경에 중국 북쪽 변경과 황하 상류 지역인 1)오르도스 지역에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중국 역사에는 BC 8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흉노는 자신만의 문자가 없어 기록으로 조상이나 민족의 근원을 남기지 못했지만 북위서(北魏書)에 흉노 건국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흉노 선우에게 두 명의 딸이 있었는데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선우는 두 딸이 인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 천신의 아내로 바칠 결심을 하였다. 4년 동안 천신에게 두 딸을 데려가 달라는 기도를 드렸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고 늑대 한 마리가 밤낮으로 두 딸을 지키고 있었다. 선우는 늑대가 천신이라고 생각해 그에게 두 딸을 주었고 얼마 후 후손을 낳아 흉노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설화는 한두 가지가 아니고 여럿이 있는데 늑대가 등장하는 점에서 모두 비슷하다. 흉노의 기원에 대해 제일 신빙도가 높은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기록된 흉노 열전이라고 할 것이다. 중요한 내용만 간추리면, “흉노의 선조는 하후씨(夏后氏)의 후예이니 순유(淳維)라고도 한다. 산융(山戎), 험윤(獫狁) 훈죽(葷粥)이 북변에 살면서 기르는 가축을 따라 옮겨 다녔다. 그 중 가장 많이 기르는 가축은 말, 소, 양인데 수초(水草)를 따라 옮겨 다녀서 성곽이나 일정한 거처가 없었고 농사를 짓는 일도 없었다. 문서가 없고 말로 약속하였다. 

어린 아이도 능히 양을 타고 활을 당겨 새와 쥐를 쏠 줄 안다. 조금 자라면 여우와 토끼를 쏴서 식용으로 한다. 남자는 활을 당길 힘만 있으면 갑주를 입고 기병이 된다. 그들의 풍속은 평시에는 가축을 따라다니며 새와 짐승을 사냥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으며 전쟁이 나면 전투법과 공격법을 익혀 쳐들어가는 것이 그들의 천성이다. 먼 거리에서 사용하는 무기는 화살이고 접근전에는 칼과 짧은 창을 사용한다.

오르도스 시가지의 현재 모습
오르도스 시가지의 현재 모습


유리하면 전진하고 불리하면 물러간다. 도망해 달아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군왕(君王) 이하 다 가축의 고기를 먹고 그 피혁을 입으며 가죽 옷을 덮어 입는다.

아비가 죽으면 그의 후모(後母)를 아내로 삼으며 형제가 죽으면 다 그의 아내를 데려다가 아내로 삼는다.”

흉노는 자연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남자가 죽으면 뒤에 남겨진 미망인과 딸린 자식들의 생계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형사 취수 풍속이 생겼다고 하지만, 실은 과부가 된 형수가 재가를 하게 되면 재산을 나눠가기 때문에 형수를 아내로 삼게 된 것이라고 한다. 

징기스칸은 아버지를 졸지에 잃었는데 삼촌들이 징기스칸의 어머니를 취하지 않아서 가족들이 엄청난 고생을 하게 되었다. 삼촌들이 두고두고 세인들의 비난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흉노가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BC 8세기 경 주나라 때부터였다. 당시 주나라는 유왕(幽王) 치세 때로 절세미인 포사가 왕후였는데 웃음이 없었다. 유왕은 포사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했다. 그는 거짓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여산에 모았다. 그들은 봉화가 올라간 것이 적국의 침범 때문에 올라간 것이 아니고 단순히 포사를 웃기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안 다음에 모두 자기 영지로 돌아갔다. 포사가 이를 보고 비로소 웃음을 웃게 되었지만 주나라의 사직이 여기서 끝을 맺게 될 줄을 어이 알았겠는가. 

BC 771년에 유왕으로부터 내침을 받은 신후(申后) 부자와 견융(犬戎: 흉노)이 대거 침공하여 유왕은 죽임을 당하였다. 유왕이 봉화를 올렸으나 제후들은 아무도 온 사람이 없었다. 주나라는 멸망하고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흉노는 중국의 연, 위, 조, 진나라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들 네 나라는 북쪽에 장성을 쌓아 흉노를 방어했지만 흉노와의 대결에서 국력의 소모를 감당할 수 없어 조나라의 경우는 나라까지 진나라에 잃게 되었고, 연, 위 두 나라 역시 조나라의 뒤를 이어 나라를 빼앗기게 되었다. 

진시황의 천하통일의 뒷면에는 흉노가 다른 여러 나라의 국력을 소모시킨 공로(?)가 있었던 것이다.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한 후에 흉노의 위험성을 절감하고 몽염 장군에게 30만의 대병을 주어 황하 상류 오르도스 지역에 있던 흉노를 몰아내고 그 북쪽에 만리장성을 쌓아 흉노를 방비하였지만 국력의 소모가 막대하여 한나라의 유방과 초나라의 항우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된다. 


흉노-한 전적지
흉노-한 전적지

진시황 역시 흉노를 관리하다 나라를 잃게 되었다.   
중국 역대 왕들에게는 흉노와 황하의 범람을 잘 다스려야만 명군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주해
1)오르도스 ( 鄂尔多斯: Ordos or Erdos)
내몽고 자치구 중남부에 있는 고원지역으로 북쪽과 서쪽은 황하(黃河) 남쪽은 만리장성이 둘러싸고 있다. 진시황 때 이 곳에 살고 있던 흉노족을 쫓아냈지만 묵특 선우 때 다시 흉노의 땅이 되었다. 

오르도스는 몽골말로 궁의 수호막이라는 뜻이다. 징기스칸의 묘를 발견했다고 하나 아직 진위가 불확실하다. 예전에 목축업으로 살던 빈촌이었는데 지금은 중국 제일의 부촌이 되었다. 주 산업은 캐시미어 모직과 석탄 채굴인데 8만 7천 km² 오르도스 지역의 70%에 1조 톤의 석탄이 매장되어 있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작성자
김은한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
의견목록    [의견수 : 0]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이메일
비밀번호
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46 2014.11.04
무예도보통지와 이덕무
주택 구입의 첫 걸음, 융자 2014.11.04
08/22/2014지난 해부터 시작된 주택시장의 강한 회복세로 집값이 큰 폭으로 오르고 주택거래도 많이 늘었다.하지만 연말부터 주택경기가 정체현상을 보이더니 올해..
<김씨의 뿌리(11)> 2014.11.04
2014-09-05흉노의 기원흉노 민족의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흉노는 자신만의 문자가 없었으므로 자기 조상과 민족의 근원에 관한 기록을 남기지..
흡(洽) 2014.11.04
“내(예수님)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But whoever drinks..
한담객설閑談客說: 중년유감中年有感 2014.11.04
2014-09-05중년유감中年有感  가을이 문턱 앞에 섰다. 지난 겨울은 푸근했기에 올여름은 무지 더울 줄 알았다. 참 좋았던 여름이 간다. 이 가을도..
프리미엄 광고
온바오닷컴
남미로닷컴
보스톤코리아
플로리다 한겨레저널
코리아포스트
주간미시간
코리안위클리
오지리닷컴
코리아나뉴스
마닐라서울
파리지성
코리아포스트
e스페인
니하오홍콩
상하이저널
오케이미디어
코리안센터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서비스/광고문의  |  업체등록  |  이용약관  |  개인정보 보호정책  |  결제방법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