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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의 세상 스케치
보스톤코리아  2014-11-04, 15:13:15   
08/22/2014

내게 제일 행복한 시간이 언제가 묻는다면 아마도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몇 날 며칠을 샤워를 하지 않고 지낸 날이 있었다. 글을 쓰는 일에 몰입했던 그 시간, 다시 내게 올 수 있을까? 그때 그 시간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 시간을. 그렇게 10여 년이 훌쩍 지난 일들을 잠시 생각하며 지금도 가끔 깊은 묵상에 머물 때가 있다. 행복은 찾으려 애쓰면 애쓸수록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저 삶의 소소한 일상에서 만나고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사실을 지천명의 언덕에 올라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이처럼 참으로 어리석은 삶이라니.

이렇듯 삶이란 내가 내가 아니듯 사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나 자신이 원하는 인생 목표와 삶의 방향이 생각대로 되지 않음을 인정하기까지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삶 속에서 자신이 설정했던 일(목표)에 대한 결과를 놓고 만족하며 이룬 일보다는 이루지 못해 자책하는 일이 더 많은 것이다. 그 자책에는 내 뜻대로 되지 않음에 대한 나 자신의 비겁함일 수도 있고 또 어찌 보면 포기일 수도 있을 게다. 이런저런 삶의 과제를 통해서 뒤로 물러서는 법을 배우고 맞부닺치지 않고 비켜가는 법도 배우며 그리고 지치지 않을 만큼에서 기다리는 법도 배우며 사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복잡함을 시끄러움을 잠시 접고 온전히 나와 만나는 시간 내 영혼과 대면하는 시간이 바로 하얀 캔버스를 놓고 고요히 앉아 있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내게는 묵상의 시간이며 명상의 시간이며 감사의 시간이다. 그림을 그리는 이 시간이 내게는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다. 이리저리 얽히고 설킨 삶의 복잡함에서 잠시 모든 것을 잊고 미친 듯이 달려가 작은 렌즈에 또 하나의 세상을 담으며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은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다. 그 찰나의 순간 몸에 땀이 흥건히 젖고 스쳐 지나는 바람결에 나를 발견하는 그 순간, 그 행복함이란 말할 수 없는 황홀한 올가즘이다.

2년 전, 한국을 방문하며 고향 땅에 모셔진 아버지 어머니 산소를 찾으며 지나는 길에 만났던 고운 해바라기를 카메라 렌즈에 몇 담아왔다. 가끔은 눈을 감고 어린 시절의 뜰을 걸을 때가 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하면 아른거리며 가슴을 파고드는 보고픈 친구들 그리고 온몸과 마음과 가슴으로 달려드는 그리움의 바람이 몹시도 고향을 그립게 한다. 이제는 지병이 되어버린 그리움, 그 깊은 그리움 달래고 싶어 카메라 렌즈에 몇 담아왔던 것을 일 년에 '해바라기' 그림을 하나씩 그리기로 마음을 먹고 두 번째 해바라기 그림(유화)을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마음에 남아 내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그 무엇이 생겼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만큼 귀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삶 속에서 경험보다 더 값지고 소중한 선물이 없다는 생각을 말이다. 그 누구의 어떤 얘기나 글보다 진정 내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바로 나 스스로 직접 마주하고 느낀 경험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산을 처음 오를 때의 마음은 기도와 같았다. 몇 시간씩 산을 오르며 작은 보폭으로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기도처럼 옮기며 올랐다. 누구나 자신에게 처해진 상황에 따라 그 어떤 일도 받아들이고 만나고 느끼는 것이리라.

이렇듯 산은 내게 기도와 같은 것이었으며 지금도 기도와 같다. 그런데 요즘은 유화에 푹 빠지며 또 하나의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붓글씨를 좋아하고 그림을 좋아했던 이유일까. 그림은 언제 만나도 마음이 편안해 좋고 낯설지 않아 좋다.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그림 중에서도 유화보다는 수채화를 수채화보다는 유화를 좋아하는 취향이 모두가 다르다. 나 역시도 말간 수채화를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유화를 만나며 색다른 세계를 또 경험하게 된 것이다. 투명하지 않은 투박한 물감을 붓으로 덧바르면 덧바를수록 신비로움을 경험한다.

인생은 어쩌면 말갛고 투명한 수채화가 아닌 두텁고 투박해 보이는 유화는 아닐까 싶은 생각이 스쳐 지난다. 이렇게 바르고 저렇게 바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또 덧바르는 일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싶다. 그리다가 잠시 쉼도 가지며 그리다 만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그렇게 다시 또 붓을 들어 덧칠하는 일. 인생은 누구에게나 정해진 정답이 없다는 것을 세상을 살며 새삼 더욱 느낀다. 그림(유화)을 그리며 인생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나와 다른 또 하나의 나를 그림을 통해 만나는 것이다. 아직은 미완성, 여전히 미완성인 내 삶의 그림처럼.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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