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eepy Hollow의 세 현자(賢者) (1)
보스톤코리아  2014-11-05, 13:06:18 
2014-10-03

 금년 초에 소로의 흔적을 찾아 월든 호수를 다녀 왔었다. 한겨울이었던 까닭에 당연히 호숫물은 꽁꽁 얼어 있었고 찾는 이도 거의 없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었다. 서울에서 꿀맛같은 석달간의 특별휴가를 보내고 보스톤으로 다시 돌아오자 마자 무엇보다 먼저 월든 호수를 다시 찾았다. 짙은 녹음과 맑은 호숫물이 잘 어우러져서 유명한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 호수 일대는 주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관리와 보존이 잘 되고 있었다. 호숫가 비치에는 여름의 끝물을 즐기는 듯 물놀이하는 아이들도 보였고 일광욕을 즐기면서 독서하는 어른들도 꽤 눈에 띄였다.

 날씨도 좋고 시간적 여유도 있고 해서 이번에는 소로의 더 많은 흔적을 알아 보기 위해서 콩코드 박물관을 찾았다. 소로에 관한 기록과 유품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이미 150여년 전에 우리 곁을 떠난 사람이지만 그의 체취가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박물관 전시실 한켠에 소로의 초상화 옆에 에머슨과 호손의 초상화가 함께 걸려 있는 게 아닌가? 이 세 사람이 모두 콩코드 출신이란다. 기록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니 에머슨이 1803년생, 호손은 1804년생, 그리고 소로가 1817년생이란다. 이들이야 말로 미국 문학과 사상사에서 원조로 존경받고 있는 인물들인데, 이들이 동 시대에 같은 동네에서 살면서 교유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박물관을 나와 십 오분 쯤 걸어서 소로가 잠들어 있다는 Sleepy Hollow 공동묘지로 향했다. 소로의 무덤은 Authors‘ Ridge 구역에 있었다. 여기서 또 한 번 놀란 것은 이 세 사람의 무덤이 불과 5미터에서 10미터 거리에 이웃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의 묘비 앞에는 하나같이 만년필 등 필기도구와 손으로 직접 쓴 메모 형식의 짧은 편지가 놓여 있었다. 위대한 철학자와 문호들을 비록 사후에라도 여기서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문학과 철학에 대하여는 비교적 과문한 탓에 이 세 사람에 대하여는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점에서 조금은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는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을 통해서 세 사람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했다.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미국 철학의 아버지이며 미국 문학의 창시자라 불리울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란다. 보스턴에서 태어나서 하바드에서 신학을 전공한 그는 1834년부터 이곳 콩코드에서 생활하면서 수많은 작품들을 썼다고 한다. 그는 1836년 이곳에서 초절주의클럽(Transcendental Club)을 결성하여 초절주의 사상을 공유하는 지식인들간의 정기적인 모임을 주도하였는데 호손과 소로도 이 모임의 일원이었다고 한다. 선험주의 또는 초월주의라고도 번역되는 '초절주의'는 19세기 중엽 에머슨이 주동이 된 대화의 모임 '초절주의 클럽'에서 연유한 말로, '경험적', '현상적'이란 말과 대립되는 '관념적', '초월적' 우주관에 따른 주의, 주장을 의미한다. 19세기 낭만시대의 시인과 철인들 대부분은 초절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신, 영혼, 보편정신 들 초월적 실체의 절대적 권능을 믿었기 때문에 자연은 아름답고, 우주 질서는 조화로우며, 인간은 완전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에머슨이 남긴 명언과 시를  자주 인용하는 편인데, 그 중 에머슨의 일기에 나오는 “인생은 하나의 실험이다. 실험이 많아질수록 당신은 더 좋은 사람이 된다 ”라는 글귀가 많이 사랑받고 있으며, 특히 ‘성공(Success)’ 이라는 시가 널리 알려져 있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당시 에머슨의 인기는 대단하여 에머슨이 거주하는 콩코드로 많은 지식인들이 모여들었었다. 콩코드라는 작은 타운이 마치 그리스의 아테네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였다고 한다. 에머슨의 강연에 매료된 콩코드의 한  초월주의자는 에머슨의 말을 듣는 것은 ‘그네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느낌이라고 비유했다. 

 에머슨은 힌두교와 불교를 포함한 동양의 철학과 종교도 두루 섭렵하였다고 한다. 그가 쓴 책 중 ‘세상의 중심에 너 홀로 서라(Self Reliance)’는 링컨과 오바마가 극찬하였으며 국내에서도 번역서가 출간되어 큰 인기를 얻은 바 있다. 혹시 숫다니파타라는 불교 초기 경전에 나오는 ‘무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귀절에서 영감을 얻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에머슨보다 한 해 뒤 세일럼(Salem)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난 호손(Nathaniel Hawthorne)은 1842년 결혼하면서 콩코드로 이사 왔다. 여기서 초절주의자 모임에 합류하게 되고 에머슨과 소로 등과 교유하게 된다. 1846년 콩코드를 떠나 고향인 세일럼으로 돌아온 후 창작작업에 푹 빠지게 되고 1850년에 불후의 명작 주홍글씨(Scarlet Letter)를 내놓는다. 

 1853년에는 친구이었던 14대 대통령 피어스(Franklin Pierce)의 당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리버풀 영사직을 맡아서 4년간 영국 생활을 하게 된다. 영사직을 마친 후에는 가족과 함께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한 후 1860년에 다시 콩코드로 돌아오게 된다. 호손을 광의의 초절주의자 범주에 넣는 경우도 있으나 에머슨 중심의 관념위주 사상에 더하여 현실적 과제에 대한 고민과 비평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에머슨 사상체계와는 차별화되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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