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블랙커피에 얽힌 사연
보스톤코리아  2014-12-01, 10:14:36 
  블랙커피는 쓰다. 홍삼시럽과 맛이 다르다. 그 쓴걸 왜 마시냐고?  쌉싸레하고 진한 향내가 입안을 감싸고, 코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블랙커피는 갓 내려야만 하고, 뜨거워야 한다. 홀홀 식혀가며 홀짝홀짝 마셔야 제맛이란 말이다. 내린지 오래되어, 아로마 향내를 잃었고 식어버렸다면 이미 커피는 아니다. 그저 카페인 섞인 씁쓰레한 검정 음료인게다. 내가 무슨 커피마니아는 아니다. 

  왕년엔 다방커피만 마실 줄 알았다. 출처와 정체가 불분명한 커피에 크림과 설탕을 넣어준 커피 말이다. 아니면 맥스웰 인스탄트 커피를 난로 위에서 끓던 더운 물에 타줬던 그 커피만 커피인줄 알았다는 거다. 커피는 거의 핫코코 수준이었으니, 매우 뜨겁고 무척 달았다. 커피에 설탕과 크림을 넣은 건지, 설탕과 크림 시럽에 커피를 살짝 얹은 건지. 주종관계와 갑을관계는 명확하지 않았다. 커피는 오직 달아야 하고, 걸쭉해야 한다고 믿고 마셨다. 

  역시 다방커피는 커피와 설탕과 프림(?)을 모두 넣어야 한다. 물도 뜨거워야 한다. 맛있게 먹으려면, 다 갖춰져야 하는게다. 하나라도 빠지면, 그건 다방커피가 아니다. 게다가 일회용 컵보다는 머그에 넘치도록 담아 마시면 더욱 맛이 그럴듯 하다. 대충 마시려면 그냥 마셔라. 맛있게 즐기려면 모두 다 갖춰 마셔야 한다. 내 입맛이다.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를 담고 /진한 갈색 탁자에 다소곳이 
말을 건내기도 어색하게 /너는 너무도 조용히 지키고 있구나 
너를 만지면 손끝이 따뜻해 /온몸이 너의 열기가 퍼져 
소리없는 정이 내게로 흐른다 (찻잔, 산울림)
 
  미국에 왔다. 커피 한잔이 25센트 할 적이다. 당연히 설탕에 크림을 듬뿍 넣어 마셨다. 찐득한 시럽성性 다방커피인 게다. 다방커피는 인스탄트 커피와 설탕과 크림이 있어야 한다. 커피가 없다면, 아예 이야기가 성립할 수 없다만 말이다. 문제는 연구실에서 였다. 연구실에선 거의 한 순간도 삼박자를 모두 갖춰진 적이 없었다.  커피는 인스탄트 커피였는데, 설탕이든지 아니면 크림이 떨어지든지. 아니면 둘 다 아예 없든지. 그나마 인스탄트 커피는 항상 있었으니, 그냥 물 끓여 블랙으로 마셔댔다. 차츰 입이 블랙커피에 맞추기 시작했다. 먹다 보니, 그 맛도 과히 나쁘지 않았다. 어느 순간에 쓴 뒷맛이 다방커피의 들쩍한 뒷맛보다 깔끔했던 거다.  

  인생에 언제 삼박자가 모두 갖춰진 적이 있던가. 인생은 다방커피마냥 모두를 온전히 갖춰진 순간을 허락치 않았다. 부족한 그것을 채우기위해 허덕이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이제는 없으면 없는대로, 있다면 있는대로 그냥 살아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 내가 세상과 인생에 맞춰 살아가야 하지 않겠나 말이다. 내 입맛을 블랙커피에 맞추듯 말이다. 세상과 인생을 바꿀 힘은 내게는 없다. 그럴 생각도 의지도 없다. 하긴 인생은 뭐가 한두 개 빠져 있다고, 진공으로 남겨두지도 않는다. 뭔가 다른 것으로 채워지는 듯 싶다.  설탕 대신 ‘Sweet’n Low’ 를 넣듯 말이다. 대신 순전한 다방커피 맛은 아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이영길 목사 설교 중에서)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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