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480 회
보스톤코리아  2015-01-12, 12:07:47 
엊그제부터 처음으로 까만 머리 중앙 가리마 사이에 칫솔 너비만큼 염색을 시작했다. 이제는 염색을 해야 할 때도 되었다고 입버릇처럼 하긴 했는데 막상 염색약을 개어 부러쉬에 묻혀 거북이 목마냥 비쭉 내밀고 화장실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그 모습을 혼자서 보려니 순간 웃음도 나고 뭔지 모를 묘한 기분이 휘돌고 만다. 그래, 이제는 나도 나이를 먹어가는 모양이구나! 싶었던가 보다. 언제나 늙지 않을 것 같았던 이 마음은 내 어머니도 내 어머니의 어머니도 그랬을 그 마음인 것을 어찌 이제야 깨닫는지 철없이 지내온 그 시간이 고맙기도 하고 나 자신의 부족함을 잠시 깨닫는 시간이다.

2015 '청양의 해' 乙未年을 맞으며 한국 나이로는 쉰 둘이 되었다. 염색을 이제 막 시작한다는 얘기에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은 벌써 몇 년 전부터 머리가 하얘져 염색을 시작했는데 무슨 소리냐고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네준다. 그래, 남들이 하는 것을 그냥 지나치면 염치없는 사람이지. 그것은 '염치' 없는 것이 아니라 '얌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철없이 살아 이제야 머리 끝으로 철어 들어올 모양이다. 남편도 곁에서 몇 마디 거든다. 내 머리를 보라니까 하면서 머리를 내 앞에 들이댄다. 나는 벌써 언제부터 양쪽 머리가 하얗게 되었는데 이제서 그러느냐고 말이다.

"언니, 아직 네 번째 아이 하나 가져도 될 것 같은데..."
"넷째 애 낳으면 내가 봐줄테니 걱정하지 말고 하나 더 낳아라" 하고 만나면 언니를 놀리는 가깝게 지내는 동생과 동생을 놀려먹는 친자매처럼 편안하게 지내는 언니가 있다. 우리는 그래서 만나면 한바탕 웃음으로 깔깔거린다. 그것은 건강해 보기 좋다는 두 사람의 칭찬이고 덕담이기도 하다. 늘 곁에 이렇게 편안하고 좋은 친구들(언니와 동생들)이 있어 오늘이 더욱 행복한 이유인 게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까지 어린아이처럼 철없이 살아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주변에 가깝게 지내는 친구(지인)들이 겪는 '갱년기'를 보며 사실 두려움이 없지 않았다. 그것은 1년 2년이 아닌 거의 10년이 다 되도록 자신과의 싸움의 고통에서 허덕이는 이들도 몇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친구들과 만나면 서로 나누는 대화가 거의 '갱년기'에 대한 얘기가 많다. 친구들의 얘기를 들으며 은근히 염려도 되었지만, 외향적인 성향이 더 많은 나는 갱년기가 오더라도 별 탈 없이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무작정 마음을 가졌었다. 우리가 어려서 겪었던 사춘기도 특별히 심하게 겪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하는 듯, 마는 듯 조용하게 지나가는 아이도 있었기에.

그래서 엊그제부터 시작한 칫솔 길이만큼의 염색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고 마음을 먹었다. 자라 목처럼 쭉 배고 거울을 들여다보는 이 시간도 즐기자고 그렇게 주문을 외웠다. 그러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그 누구보다도 즐기는 편이니 이것마저도 혼자서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소중한 시간일 테니 말이다. 가끔 갱년기를 심하게 앓았던 형님(맏동서)이 카톡으로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온다. 열심히 산을 오르고 여기저기 열정적으로 들로 바다로 다니는 동서는 갱년기 없이 지나갈 것이라고 그렇게 아래 동서에게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보내주는 것이다.

염색을 이제 시작했다는 이 말을 들은 딸아이는 엄마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한 술 더 뜬다. 아빠인 남편도 아내가 입는 옷에 별 불편함을 말하지 않는데, 엄마의 생단발머리와 스키니 진 그리고 짧은 반바지와 짧은 청치마를 입은 엄마를 가끔은 못마땅해 하는 딸아이. 그래서일까. '엄마의 갱년기'라는 말에는 좋아라 하듯이 엄마의 나이를 다시 한 번 반복 확인을 시켜준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엄마의 폐경기'마저 들춰 엄마의 기를 죽이려는 딸이 때로는 밉기보다는 서운할 때가 있다. 모두가 떨어져 살면서 한 번씩 만나면 화들짝거리며 웃은 우리 집 '모녀간의 풍경'이다.

누구든지 경험하지 않은 것은 그 누구에게든 전달함에 있어 힘이 없는 법이다. 친구와 지인들이 겪었던 '갱년기와 폐경기'의 그 시간들이 내게 간접 경험으로 미리 준비할 수 있었던 것처럼 모두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나도 이렇듯 이제 시작이지만 겪어야 할 '갱년기와 폐경기'를 무작정 염려나 두려움으로 맞이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이 또한 귀하고 소중한 시간임을 마음의 준비로 시작해야겠다. 지금의 칫솔 길이만큼의 염색의 시작이 내 온 머리카락을 바르고 다르다 덧칠해야 할 날이 오더라도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오늘도 소망해 본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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