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세월은 가고 사진은 남는 것
보스톤코리아  2015-03-02, 11:48:14 
보스톤코리아 공모 눈雪사진을 봤다. 일등상을 받은 사진이 도드라졌다. 아마추어인 내가 봐도 흠잡을 수 없었던 거다. 우산을 쓴 인물의 뒷모습에 내 눈길이 박혔다. 사람모습이 있기에 눈덮힌 나무와 길거리가 그닥 황량하지 않았던 거다. 바람이 불고 있던가. 

‘세월이 가면 사진만 남는다’는 건 내 아내의 사진철학이다. 미국에 오자마자 일게다. 아직 우리 부부는 신혼이었다. 없는 살림에 카메라부터 장만했다. 수백불을  투자했다. 아파트 두달치 렌트비였다. 새로 장만한 카메라를 들고 필림을 챙겨 놀이공원에 갔다. 출사出寫라 해야겠다. 

사진이 주主인지, 놀이가 종從인지. 사진이 오히려 갑이 되었다. 놀이는 뒷전이었던 거다. 열심에 정성과 노력을 다해 사진을 찍었다. 이폼에 저포즈 취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24장짜리 필름이 분명한데, 계속 찍히는 거다. 사진 24장을 찍고 나면, 레버가 더 이상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 헌데, 걸리는 느낌이 없었다. 필름은 서른 다섯장을 넘어서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중대한 문제와 오류가 발생했던 거다.

  아내에게 했던 옹색한 변명이다. 
- 사진기에 문제가 있다. (내 실수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사진이 너무 많이 찍힌다. 사진기 뒷뚜껑을 열어 확인해야 한다.
- 필름이 제대로 감기고 있다면, 찍은 사진은 전부 빛을 받을테니 허당이 된다. 그래도 열어봐야 한다.  

  사진기 뒷뚜껑을 열었다. 사진기 뚜껑을 열며, 아내의 뚜껑도 열렸다. 아뿔사, 필림이 걸리지 않았고, 감기지 않았던 거다. 그저 공회전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필름은 있으되, 필름없이 사진을 찍은 셈이다. 온갖 폼 다잡고 말이다. 그날 밤, 나는 저녁밥을 굶었다. 밥이 있어도, 먹을 수 없었다. 입안은 무지 깔깔했다. 다시 가자는 감언甘言도 통하지 않았다. 돌아누운 아내를 돌이킬 수 없었던 거다. 덤벙대는 신랑을 믿는 게 잘못이었다. 돌아누우며 던진 아내의 한마디. ‘사진이 없다면, 가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 ‘사진이 없다면, 그 행위 자체는 원천무효다.’

  다른 사진을 봤다. 윤동주를 기리는 음악회 포스터에 실린 사진이다. 전에 본 적이 있던 사진인데, 장준하 선생, 문익환 목사, 윤동주 시인, 정일권 총리. 이런 사진도 드물게다. 함경도 광명학교 시절, 동창 친구들 사진이라 했던가. 참, 문익환 목사님, 젊은 시절 모습이 모던해 보인다. 안경이 패션너블 하다. 세월은 갈진대, 사진은 남아 그 시대를 증거한다.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라.’ (고린도 전서 7:31)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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