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508회
보스톤코리아  2015-08-03, 12:32:47 
목적지를 향해 특별한 생각 없이 운전을 하고 가는 길 그 길에서 문득 오렌지 컬러 사인 판을 가끔 만나기도 한다. Construction!ㅡ>Detour!하고 적힌 사인판을 말이다. 어느날 하루 바닷가를 가려고 목적지를 향하는데 공사로 말미암아 돌아가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길이 막혀 돌아가는 길에서 만난 곳.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기분 좋은 나 홀로만의 시간을 만나고 혼자서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조용하고 아늑한 느낌이 있는 멋진 공간을 선물로 얻었다. 때론, 우리네 삶도 이렇겠지 하면서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혼자서 오붓하게 깊은 생각에 머물렀다.

가던 길 멈추고 반나절을 그곳에서 이리저리 바라보고 훑어보고 만나고 만져보고 하다 보니 어둑어둑 땅거미 오르는 해거름의 때를 만났다. 그래, 사는 일도 이렇게 계획하거나 작정하거나 결정해 놓은 것이 아님을 새삼 또 깨달았다. 정해놓은 목적지는 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서운하지 않은 마음은 생각지 않은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만나고 느끼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리 정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고즈넉한 풍경과 공간은 나에게 진정 넉넉하고 풍성한 누림을 선물로 준 것이다. 그곳을 다녀온 후에도 눈을 감으면 내심 행복해지는 이 기분은 아주 특별한 선물이다.

우리네 사는 일도 이럴 것이라고, 우리네 긴 인생 여정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의 넉넉함이 차오른다. 이처럼 삶 속에서 순간순간에 차오르는 마음의 조급함이나 보챔이 하나둘 놓일 수 있다면 그래서 그런 필요치 않은 것들로 자유스러울 수 있다면 그 삶은 그 인생은 축복받은 사람일 게다. 때로는 목표를 세워놓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성실히 보내는 이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지만 그 정해진 목표를 향해 달려가서 그 무엇을 얻었던들 그것이 행복과 비례한다는 답은 없다. 조금은 늦더라도 때로는 돌아가며 만나는 일들 속에 행복이 숨어 있기도 한 까닭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의 작은 쉼터에서부터 시작해 긴 인생 여정을 걸어가는 우리는 모두 목표는 세워야겠지만, 자신의 주변은 돌아보지 않고 그 목표만을 위해 주위를 둘러보지 않는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정한 목표와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노력하는 삶처럼 아름답고 멋진 인생은 없을 것이다. 혹여 그 목표에 다다르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리고 설령 그 목적지지 이르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목표와 목적지를 향해 열심으로 자신의 일을 하고 열정을 가지고 온 힘을 기울였다면 그 과정처럼 멋진 삶이 아름다운 인생이 또 어디 있을까 말이다.

때로는 바쁜 마음에 돌아가라는 표지판이 나오면 갑자기 속상한 마음이 든다. 곧장 뚫린 길을 갔더라면 더 빨리 갈 수 있고 더 일찍 도착해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었으리란 그런 아쉬운 마음에 속상함과 불쾌함이 교차하면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이 막혀 돌아가라는 안내 표지판을 따라 가다보면 그동안 바쁜 걸음으로 움직인 탓에 보지 못했던 작은 행복들이 오밀조밀 여기저기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 그때서야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 않은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더 빨리 더 많이 가고 싶고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는 길 중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길이 막혀 돌아가야 하는 일처럼 우리네 인생에서도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눈앞에 닥치고 무엇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한 막다른 길목에서 발목이 잡힐 때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소소한 일상의 삶 속에서 그리고 긴 인생 여정에서 때로 실빛 하나 들지 않는 캄캄하고 어두운 그 칠흑 같은 시간을 만날 때가 있는 것이다. 그 칠흑 같은 짙은 어둠이 영영 가시지 않을 것 같은 때 진정 기다리는 새벽은 오지 않을 것 같은 때를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여명의 새벽이 멀지 않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이처럼 '돌아가는 길'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기다림을 가르쳐주고 지혜를 일깨워주는 시간일지도 모를 일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앞서가지 않으면 뒤졌다고 생각한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돌아가는 길'을 만나면 당황해하고 조급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장 난 길이 빠른 길이며 목적지에 빨리 다다를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곧장 난 길을 통해 빨리 가서 목적지에 이르러 도대체 무엇을 얻기를 원하는 것일까. 작은 삶 속에서 그리고 긴 인생 여정 중에서 '돌아가는 길'을 경험한 사람만이 빠른 길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것이 아닐까.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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