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95
보스톤코리아  2015-08-31, 11:33:14 
1973년 세계태권도연맹(WTF)를 창립한 후 김운용의 적극적인 태권도 보급은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의 호응도를 얻으면서 발전하였다. 1975년 WTF는 국제경기연합 총연합회(GAISF, The General Association of International Sports Federation)138) 에 가입하면서 국제 스포츠계로 부터 공인된 스포츠의 하나가 되었다. 일본의 가라데가 조직적으로 가입을 방해하였지만 김운용의 역할이 지대하였다. 그리고 1986년 그는 이 기구의 회장으로 취임하였고 2005년까지 장장 20년간 세계 스포츠를 한 단계 더 높이 발전시켰다. 물론 그의 회장직이 태권도의 세계화에 도움이 되었음은 이론이 없다. 

이렇게 태권도를 발판으로 국제스포츠 무대에서 인정받은 김운용은 국제 스포츠계에서 가장 명예로운 지위라고 스스로가 말한 IOC위원에 선출되었다. 1986년10월19일 로스 엔젤리스에서 열린 제91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IOC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박종규가 1985년 사망한 뒤에 공석이 된 우리나라의 위원직을 이은 셈이다. 한국인으로는 6번째이다.139) 그리고 1988년에는 집행위원(임기4년)으로 선출되었는데 위원이 된지 2년만에 집행위원이 된 최초의 위원이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대한체육회 회장(KSC, 1993년)과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KOC, 1993년)에 선출되었으며, 1996년에는 대통령특사 그리고 2000년에는 전국구 국회의원에 선출되었다. 특히 그는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 에 태권도의 정식종목 채택을 위하여 동분서주하였지만 허사였다. 이미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두 번이나 시범종목으로 채택된 전력이 있기 때문에 세 번째는 정식종목이 아니면 완전히 퇴출되는 관계로 태권도계에서는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아쉽게도 무산되었다. 

전화위복, 김운용을 정점으로 모든 태권도인들이 혼신을 다했어도 아틀란타 올림픽에 채택되지 못했지만 그간의 노력은 결코 허사가 아니었다. 1994년 파리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다음 올림픽인 2000년의 ‘시드니올림픽’과 2004년의 ‘아테네올림픽’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그리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역사적인 남북한선수들의 동시입장도 있었다. 이 모두 김운용의 역할이 컸다. 그의 신념과 의지로 그간 다져온 IOC내의 인맥을 통한 정식종목의 채택은 그만의 쾌거가 아니라 모든 태권도인들과 우라나라 국민들의 승리였다. 결과적으로 태권도는 2004년의 ‘아테네올림픽’, 2008년의 ‘북경올림픽’, 2012년의 ‘런던올림픽’ 에서 우리나라를 세계10위권의 스포츠강국(하계올림픽 메달집계 면에서…)으로 위용을 떨치는데 한 몫을 당당히 하였다. 

2016년의 리우 데 자네이루(브라질) 올림픽에서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있다. 그리고 2020년의 토쿄올림픽에도 2013년 아르젠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핵심종목 25경기에 포함되어 있다. 앞으로 가라데를 비롯한 기타 국제무술연맹의 협공이 있겠지만 그간 쌓아온 태권도의 스포츠적 가치와 ‘내공’을 계속 확장시켜 나간다면 태권도는 영원히 올림픽 성화와 함께 세계인들의 가슴 속에서 불타리라 본다. 이렇게 태권도가 세계적으로 단시일 내에 무도계를 천하통일하고 올림픽에 입성한데는 김운용에 의해 1978년 우리나라의 태권도의 9개 대분파와 30여개가 넘었던 지파들을 대통합했기에 가능했다. 그후 국내외의 모든 태권도인들이 우리의 국기國技를 전세계에 전파한다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 단합한 마음과 단결된 모습은 국제무대에서 먼저 얼굴을 내밀고 더 많은 수련인구를 보유하고 있던 일본의 가라데를 이길 수 있었다. 일본의 가라데는 현재도 60여개의 유파들이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다. 누가 한국인은 단결심이 부족하다고 자설自說하랴!?    

138) GAISF, 전 세계 104개에 이르는 올림픽과 비올림픽 스포츠의 국제연맹을 회원단체로 하고 있는 GAISF는 IOC와 ANOC(Association of National Olympic Committee, 205개 국가 올림픽 총연합회)와 함께 세계 스포츠계를 주도했던 기구였다. 1964 년 4월21~23일에 스위스 로잔에서 결성되었다. 45년간 존속했던 GAISF(본부: 모나코, 몬테카를로)가 2009년 총회에서 ‘SportsAccord’로 개칭하고 본부를 스위스 로잔으로 옮겼다. 김운용이 1986년에서 2005년까지 이 기구의 회장을 역임하였다.
139) 역대 우리나라 IOC위원: 이기붕, 이상백, 장기영, 김택수, 박종규, 김운용, 이건희, 박용성, 문대성(선수위원) 등이다. 
김운용은 자신의 저서 ‘세계를 향한 도전’(2002) 에서 “2001년 현재 IOC회원국은 199개국이며, 이들을 대표하는 IOC위원은 124명 뿐이다. 즉 회원국 중에는 위원을 내지 못한 국가가 더 많다. 그러므로 IOC위원은 이 지구상에서 얼마 남지 않은 지위 중에서도 그 수가 적은 일종의 명예로운 지위” 라며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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