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00
보스톤코리아  2015-10-05, 11:06:35 
2001년 10월21일, ‘범태권도 바로 세우기 운동연합’은 그간 누적되어 온 김운용의 비리에 퇴진을 요구하면서 국기원에서 첫 집회를 열고 철야농성에 들어 갔다. 다음날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김운용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였다. 많은 태권도인들은 이 기자회견이 그간의 문제점을 수습하고 심기일전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 태권도인들의 정서와 바램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패착敗着의 악수惡手’를 두고 말았다. 11월5일자 ‘태권도신문’은 그날 기자회견장에서 한 김운용의 돌출발언들을 머릿기사로 올리며 대서특필하였다. “다 밥먹고 살게 해주고 태권도과도 만들어 교수도 시켜주고”, “내실을 구상 중인데 밥그릇 싸움이나 하고 똥물이 튀는 바람에”, “임윤택씨는 죄인도 아닌데 사무직원 쓰는 것까지 궁시렁거려” 등이 ‘태권도신문’을 도배한 제목들이다.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권력에 취해 있던 김운용, 그가 세계적으로 ‘스포츠 거물’이 되어가는데 처음부터 함께 한 국내외의 태권도인들의 바램을 완전히 무시하고 인격모독까지 한 그는 1주일 뒤에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큰 치욕을 겪게 될 것을 예견하고 그런 언사들을 기자회견장에서 했을까?

2001년10월29일, 대한태권도협회 전체 이사회가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개최되었다. 김운용(당시 대한 태권도협회 회장)이 입장하기 전부터 설전이 오가며 분위기는 긴장을 지나 험악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결국 그는 이사회 진행을 포기하고 다급히 ‘피신’하였다. 마침내 여기저기서 욕설이 튀어나왔고, 일부 사범들은 그의 차량 둘러싸고 태권도계를 떠나라고 소리쳤다. 태권도인들로부터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치욕의 현실을 감내하면서 그는 자리를 떴다. 그리고 이틀 후 제주도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연맹(WTF) 총회에서 그는 만장일치로 총재에 재추대되었지만 그의 위상이 전과 같지 않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국내외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그에게 WTF내의 유럽세가 고개를 들면서 또 한 무리의 반김운용 패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는 국내 태권도계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태한태권도협회 회장직의 사임을 뜻을 비쳤고, 연이어 개최된 세계선수권대회에서의 초라한 우리나라의 성적은 그를 더 궁지로 몰게되었으며, 동시에 정치권에서 나도는 소문(고령이니까 은퇴)과 체육단체 구조개편을 시사(2001년11월6일 남궁진 문화관광부 장관)하는 소식은 그의 입지를 좁혀만 갔다. 그리고 11월15일 국기원에서 열린 ‘태권도 한마당’, 이 행사는 태권도인들의 축제같은 모임이다. 하지만 축제의 한편에는 ‘범태권도 바로 세우기 운동연합’이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김운용의 퇴진을 외쳤다. 태권도인들의 축제는 전장戰場으로 변했고 양측의 세勢대결이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가면서, 김운용이 대한태권도협회 회장과 국기원 원장143) 을 사임하였다. 그의 후임으로는 구천서가 취임하였다.(2002년2월5일)

그 후로 김운용은 확인과 미확인된 비리의 구설수에 하루도 조용할 날 없이 보내야만 했다. 급기야 정치권/국회에서 더 이상 그의 확인된 비리를 묵과할 수 없어서 2003년7월31일 ‘국회의원 김운용 징계안(의안 제162510호)’을 제출하였다. 징계안의 주요내용은 헌법 제46조3항(이권운동의 금지)과 국회의원 윤리실천 규범 제4조(직권남용 금지)의 위반이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였지만 확인된 비리는 더 이상 그의 우군이 아니었다. 그는 2004년1월9일 국회의원, 국기원 원장, 세계태권도연맹 총재직에서 사퇴하였다. 하지만 IOC위원직은 사퇴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1월28일 구속되었다. 죄목은 38억원 횡령, 8억1천만원의 배임수재(대가성 금품), 외환거래법 위반 등이다.  

영어囹圄의 몸으로 지낸 김운용은 초지일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였다. 그는 현재도 결백하다고 주장하며, 국제스포츠의 거물을 정치적으로 죽이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한다. 일례로 그의 저서 ‘김운용이 만난 거인들’의 사마란치 전IOC위원장 편을 보면 “세계의 지도자들 중에서 사마란치만큼 한국을 많이 찾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2005년 여름에 서울에서 있은 ANOC 총회에는 오지 않았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전후해서 세 번이나 베이징에 오고도 서울은 찾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친구이자, 올림픽운동에 지대한 공헌을 한 현역 IOC부위원장을 한국정권이 정치적으로 범죄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라고 주장했다. 사마란치는 종신IOC명예위원장을 지내다가 2010년 90세을 일기로 사망하였다. 그가 김운용 IOC부위원장의 구속 후 한국을 찾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김운용의 주장이 맞을까? 아니면 김운용의 IOC위원장 출마 당시부터 소원해진 관계때문일까? 아마 이것도 저것도 아닌 고령의 사마란치가 일정을 그냥 그렇게 잡은 것은 아닐까?

143) 국기원 원장직은 유지하다가 2004년1월9일 사퇴하였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의견목록    [의견수 : 0]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이메일
비밀번호
한담객설閑談客說: 오매, 단풍들것네 2015.10.05
  날씨가 갑자기 서늘해졌다. 덩달아 마음도 허허롭다. 대신 젖었던 몸은 뽀송인다. 일교차가 큰데, 모두 몸조심에 감기 조심하시라.  ..
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6. 체로키의 눈물의 길 (4) 2015.10.05
문명화된 5개 부족 (계속)조지아 주 정부는 우스터가 조지아 주법을 어기고 불법적으로 체로키족 영토로 들어와서 인디언들을 돕고 있는 데에 대한 죄를 물어 체포하여..
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00 2015.10.05
태권도와 김운용(10)
'같이 어울려 사는 가족이 최고의 유산이다' - 좋은 습관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 XV - 2015.10.05
양미아의 심리치료 현장에서
이민 Updates (2015년 10월 2일) 2015.10.05
성기주 변호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