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08
보스톤코리아  2015-11-30, 11:18:05 
화랑세기를 필사한 남당 박창화는 특출한 인물이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역사서인 삼국사기보다 무려 460년이나 앞서가는 국보급의 사서 화랑세기를 필사하였다. 그가 진본을 필사했다면 비록 필사본일지라도 ‘필사본’ 화랑세기는 국보급이다. 결국 그가 우리나라에 공헌한 업적은 가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의 필사본을 위서(또는 창작물)라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들과 진서로 인정하지 않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의견을 따른다면 필사본의 가치는 떨어지지만 박창화는 우리나라 역사속에서 손꼽히는 천재이다. 

문자 그대로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그 필사본에 나오는 수 많은 인물과 내용들이 ‘창작’을 하기에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향가’의 경우 그가 아무리 한학에 뛰어난다고 해도 필사본에 등장하는 ‘풍랑가(송사다함가)’153) 와 ‘청조가’154) 의 창작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국어학계의 중론이다. 그리고 후일 고고학적 발굴로 입증된 ‘포석정’을 비롯한 ‘해자’와 초호화 개인 주택인 ‘금입택’ 등 ‘신神’이 아니고는 예견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 다시 한 번 이 화랑세기의 진위를 떠나 박창화의 간략한 생애를 따라간 후 그가 필사한 ‘화랑세기’를 타고 신라시대로 돌아가서 화랑도花郞徒의 수장인 ‘풍월주’를 중심으로 엮어진 화랑세기를 신라인의 눈으로 화랑도花郞道를 구경하며 당시의 사회상을 음미해 본다.

박창화는 1889년 5월 9일에 태어났다. 호는 남당南堂이고 자字는 념조念祖이며 또 다른 이름은 섭래燮來이다. 1909년에 교관에 임명되어 사범학교에 들어갔다. 졸업 후 옥천, 영동 그리고 청주의 보통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였다. 그리고 배재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였고 그 후로는 중국을 여행하였으며, 1924년 경에 일본으로 가서 강역疆域연구를 계속하였고, 예각藝閣 즉 서릉부 도서료로 20여년간 근무한 후 1942년에 귀국하였다. 그리고 청주지역의 중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였다. 그는 1962년 3월 6일에 74세의 일기로 별세하였다.  

그는 어려서 부터 한학을 공부하였고, 역사서를 두루 섭렵하였으며, 한시에도 조예가 깊었다. 7세에 어머니를 여의는 아픔도 겪었으며 그 슬픔을 이기고자 출가하려고 여러번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는 태어나면서 부터 몸이 허약하여 무녀를 수양모로 모셨고, 또한 동생과 칡뿌리를 다투어 캘 정도로 어린시절을 어렵게 보냈다. 그러나 그는 독서와 서당교육을 놀이처럼 좋아할 정도로 공부를 많이 하였다. 그는 어려서 부터 동년배의 학생들을 뛰어넘는 우수한 인재였다. 7세 때는 천자문을 끝낼 정도로 명석하였고, 9세 때는 당대의 거유巨儒 전량제田良齊 김사문金斯文과 당당하게 시문을 주고받을 정도로 지역사회에서는 신동으로 꼽히는 인재였다. 그의 명석함과 우수성으로 인하여 사범학교에서 수학할 수 있었으며 교사생활은 물론 서릉부의 도서료로서도 근무할 수 있었다. 그는 다수의 다양한 저작과 유고를 남겼다. 하지만 당시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점은 그가 전거로 제시한 서책이 근세의 것으로 엄정한 사료비판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우리나라 고대의 강역이 한반도 안으로 위축된 것이 이세민과 주원장에 의해 비롯되었으며, 조선 초기 중국의 책봉을 원했던 이성계에 의해 조장된 것이라는 관점을 보였다. 2001년 국사편찬위원회 국내사료수집팀(김대길, 박대중)이 장손 박인규가 보관하고 있던 남당 박창화의 유고, 즉 년보와 시문, 강역론, 고구려 백제 신라 왕기를 비롯하여 화랑세기 관련저작를 일괄 촬영수집하여 분석한 결과는 필사본(화랑세기)를 진서로 인정하는데 주저하고 있다.155)     

153) 신라 진흥왕 때 미실이 첫사랑 5대 풍월주 사다함을 전쟁터로 보내며 부른 노래.(파랑가波浪歌라고도 부른다) 
바람이 불되/ 님 앞에 불지 말고/ 물결이 치되/ 님 앞에 치지 말고/ 어서 어서 돌아 오라/ 다시 만나 안아 보고/ 아아, 님이여!/ 잡은 손을/ 차마 뿌리치려오.

154) 사다함이 전쟁에서 돌아와 보니 이미 왕족과 혼인한 미실을 못잊어 울며 지은 노래. 
파랑새야, 파랑새야, 저 구름 위의 파랑새야/ 어찌하여 나의 콩밭에 머무는가/ 파랑새야, 파랑새야, 너 나의 콩밭의 파랑새야/ 어찌하여 다시 날아들어 구름 위로 가는가/ 이미 왔으면 가지 말지…/ 또 갈 것을 어찌하여 왔는가/ 부질없이 눈물짓게 하며/ 마음 아프고 여위어 죽게 하는가/ 나는 죽어 무슨 귀신 될까/ 나는 죽어 신병되리/ 전주에게 날아들어 보호하여/ 호신되어 매일아침, 매일저녁/ 전군 부처 보호하여/ 만년, 천년 오래 죽지 않게 하리… 

155) 참고문헌: ‘南堂 朴昌和와 그의 遺稿에 대한 몇 가지 문제’ – 박남수(국사편찬위원회)
바로 잡습니다: ‘김대문의 화랑세기(5)’의 숙명공주는 법흥왕의 딸이 아닌 태종과 지소태후의 딸입니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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