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8. 샌드크리크 대학살 (3)
보스톤코리아  2015-11-30, 11:19:13 
샤이엔족과 아라파호족에 대한 샌드크리크 대학살 (계속)
대학살의 날로부터 140여년이 지난 2007년에 와서야 샌드크리크 현장이 국가적기념유적지로 지정되었고, 1996년에는 미국감리교 총회가 감리교목사였던 시빙턴 대령의 만행에 대하여 인디언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한다고 발표하였다. 2014년 12월 3일 대학살 150주기 기념행사에서 콜로라도 주지사 히컨루퍼(John Hickenlooper)는 과거 잘못에 대하여 콜로라도 주를 대신해서 공식적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파우더 강 유역의 북부 샤이엔과 합류
광란의 살육 현장에서도 도망치거나 웅덩이에 숨거나 해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건졌다. 이들은 입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한 상태에서 200리길을 걸어서 젊은 전사들이 머물고 있던 스모키힐의 사냥터로 갔다. 전사들은 가족 중 일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넋을 잃고 통곡했다. 정신을 차린 전사들은 뒤에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굳게 결심하였다. 샌드크리크의 만행은 인디언 상호간의 연락을 통해서 모든 평원 인디언도 다 알게 되었고, 백인들에 대한 적개심은 극에 달하여 하루빨리 보복할 것을 다짐하였다.

백인에 대한 첫 보복으로, 대학살 이듬해인 1865년 1월 7일에 개병대 지파(Dog Soldiers)를 포함한 남부샤이엔족, 북부 아라파호족 그리고 라코타 수우족 연합전사들은 남 플래트 강 유역에 있는 콜로라도 주의 줄스버그(Julesburg) 일대에서 백인들을 여러 차례 습격했다. 남부샤이엔족의 전설적 전투영웅인 로만 노즈(Roman Nose)가 이와 같은 대대적인 보복 공격을 지휘하였다. 당시 줄스버그는 서부로 향하는 마차길(Overland Trail)에서 가장 중요한 길목중의 하나였다. 전선을 끊어 버리고 역마차역과 군 초소를 공격하고 정착마을을 불태워버린 줄스버그 전투(Battle of Julesburg)로 인해서 덴버에서는 외부와의 통신이 마비되고 식량이 부족하여 큰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1차 복수전을 성공적으로 끝낸 인디언들은 큰 축하잔치를 벌였다. 그러나 백인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조만간 그들은 더 큰 대포와 더 많은 병력을 동원하여 인디언에게 공격해올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제는 이 지역을 벗어나서 안전한 곳으로 찾아가야만 했다. 

주로 노인과 여자들로 구성된 약 400명의 인디언들은 검은 주전자를 따라서 남쪽으로 내려와서 여기보다 따뜻한 아칸소 강 남부지역에 살고 있던 남부 아라파호족, 카이오와족, 그리고 코만치족과 합류했다. 반면, 대부분의 추장과 젊은 전사들이 주축이 된 나머지 약 3000명은 북쪽으로 이동하여 북부 샤이엔족과 합류하였다. 북부 샤이이엔족이 살고 있는 파우더 강(Powder) 유역에는 레드 클라우드가 추장으로 있는 오글라라 라코타 부족도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 일대의 인디언 수는 8000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북부 샤이엔족이 머물고 있던 파우더 강까지는 약 500km의 거리였는데 겨울이 한창인 1월말에 이동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정말 험난한 여정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러웠던 것은 오는 도중에 마차열차나 군 요새 등을 습격하여 많은 보급품을 약탈하고 백인 목장에서 수많은 가축들을 확보하였기 때문에 식량 문제는 없었다.  이들은 이동 중에 남 플래트 강 계곡 일대를 지나가면서 2월 2일과 3일에 걸쳐 줄스버그의 정착촌을 불태우고 인근 Lodgepole Creek에 있던 전신중계소에도 불을 지르는 등 남아 있는 시설들을 다시 한 번 파괴하였다. 쥴스버그를 지나 남 플래트 강을 건너 파우더 강으로 가는 도중에 미군과 Mud springs와 Rush Creek에서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정확한 숫자는 몰라도 쥴스버그 전투를 포함하여 그들이 북부 샤이엔족을 찾아가는 도중에 백인을 상대로 벌린 보복 전투에서 샌드크리크에서 희생당한 인디언의 수보다 더 많은 백인을 죽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인디언들의 파괴 행위로 마차길 160km도  완전히 망가졌다고 한다. 미군측 사망자 가운데는 샌드크리크 학살에 가담한 사람들도 몇 명 있었는데 이들의 시체는 인디언들이 토막 내었다고 한다.

아칸소 강 남쪽의 아라파호 족과 합류
한편 검은 주전자를 따라 나선 남부샤이엔족은 아칸소 강 남쪽으로 내려와 아라파호족과 합류했다. 그곳에는 들소가 별로 없었지만 이제는 미군들이 무서워 스모키힐 지역으로 사냥하러 나갈 엄두도 낼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 1865년 늦여름에 백인 정부관리들이 검은 주전자와 아라파호족 추장인 작은 갈까마귀(Little Raven)를 찾아왔다. 그들은 우선 인디언 추장들에게 샌드크리크 학살사건에 대하여 링컨대통령과 연방의회가 깊은 애도를 표했다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들이 인디언마을을 찾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비록 실질적으로는 콜로라도 일대의 넓은 평원지역을 인디언으로부터 가로채 이미 수많은 백인들이 거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률적으로는 무단점유 상태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또 하나의 새로운 조약이 필요했던 것이다. 샤이엔과  아라파호가 조상 대대로 삶을 일구어온 땅을 순순히 내놓을 리가  없었기에 협상은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여태까지 늘 그래 왔듯이 백인들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목적을 달성하는 법이라 이번에도 그해 10월 14일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고향 땅 전체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고 아칸소 강 남쪽으로 내려가 카이오와족과 함께 사는 데에 동의하는 이른바 ‘Little Arkansas Treaty’에 서명해주었다.

(다음 호에 계속)


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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