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금수저 은수저
보스톤코리아  2015-12-14, 14:01:46 
  올해 마지막 달이다. 연말파티와 모임이 잦은 시기이기도 하다. 날은 춥지 않고 눈도 아직 없으니 견딜만 하다. 연말을 잘 지내고 계신지. 

  김치찌게는 집에서만 먹는 것인줄 알았다. 헌데, 이제는 직장인들이 점심으로 찾는 메뉴라는데. 세상이 바뀐건가. 세상으로 나온 김치찌게라 해야겠다. 시인이 말한 김치찌게다. 김치찌게 올려진 식탁에서 평화를 찾는다. 김치찌게는 수저로 먹는다.

김치찌개 하나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는 식구들의 모습 속에는
실한 비계 한 점 아들의 숟가락에 올려 주며
야근 준비는 다 되었니 어머니가 묻고
아버지가 고춧잎을 닮은 딸아이에게
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지 그렇게 얘기할 때
이 따뜻하고 푹신한 서정의 힘 앞에서
어둠은 우리들의 마음과 함께 흔들린다
(곽재구, 김치찌게 평화론 중에서) 

  미국에 온지 몇개월 되지 않았을 적이다. 양식당 테이블 매너를 알량하게 말로만 배웠다. 학과에 손님이 왔고, 그 손님과 식사를 하게 됐다. 상당한 스트레스가 덮쳐왔다. 희디 흰 테이블보 위에 가지런히 놓인 스푼, 그리고 포크와 나이프. 아아, 이건 차라리 두려움이었던 거다. 웨이터가 메뉴를 건넸다. 봐야 까막눈이다. 눈에 들어 오는 건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음식을 시켜야 할 것인가. 귀로만 들어 봤던 스테이크가 없나 빠르게 훑었다. 하지만 스테이크도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막막하기가 절벽처럼 두터웠고 높고 깊었다. 잠시 후 웨이터가 주문을 받고자 돌아왔다. 뭘 주문? 스테이크는 어떻게? 샐러드는? 드레싱은? 스프는?  질문은 또 얼마나 많은지 진땀깨나 흘렸다. 수저가 테이블 위에 있었더라도 덜 긴장했을 게다. 하긴 스테이크는 수저로 먹지 않는다. 칼로 썰고, 포크로 찍어야 한다. 잘게 썰어 놓은 고기는 젓가락으로 먹을 수는 있겠다만 말이다. 한참후에야 양식당 메뉴를 익혔다. 스테이크는 미디움 웰. 샐러드는 가든샐러드. 드레싱은 싸우즌 아일랜드. 선배들이 일러준 양식당에서 살아남는 생존매뉴얼이었다. 

  금수저 은수저. 이 말을 처음듣고 전래동화에 나오는 나뭇꾼의 금도끼 은도끼 현대판 버전인가 했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계층을 말하는 거란다. 흙수저도 있다던데. 그럼 놋수저나 동銅수저도 있는가. 중산층 말이다. 나도 은수저를 입에 물고 나왔다면 테이블매너를 알았을까. 금포크를 물고 태어났다면, 칼질이 좀더 쉬웠을까. 내 수저는 스텐레스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우리 아이는 스텐레스 포크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

  한국신문에서 읽었다. 한국 국회의원이 제자식이 다니던 로스쿨에 압력을 가했단다. 불합격을 합격하게 했다던가. 아들딸이 모두 로스쿨을 다녔는데, 아이들이 금수저를 입에 물고 나왔음에 틀림없다. 웃기는 짜장이 별의 별짓을 다한다. 아이가 로스쿨에 다닌다면 나이가 들만큼 들었고 대학을 나왔을게다. 그런데, 아직도 아버지가 다 큰 아이를 위해 학교 선생을 찾아다니는가? 설마 금수저로 이유식을 먹이고 있는 건 아니겠지. 

  보스톤코리아 창립 10주년 기념파티에 초대되어 갔다. 다행히(?) 웨이터는 없었고, 부페식이었다. 한결 부담을 덜었다. 나이프와 포크가 필요하지 않았고, 젓가락만 사용했다. 김치찌게는 숫가락이듯, 한식은 수저로 먹는다. 

‘식탁에 앉은 사람과 심부름하는 사람 중에 어느 편이 더 높은 사람이냐’ (누가 22:27, 공동번역)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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