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처음처럼
보스톤코리아  2016-02-13, 13:18:59 
아침 햇살이 유난히 찬란하다. 한차례 눈폭탄을 맞은 뒤끝엔 햇빛은 더 없이 빛난다. 젖은 눈송이는 눈꽃이 되어 햇빛아래 눈부시다. 온세상이 눈꽃에 덮혔다. 눈꽃을 설화雪花라 했던가. 햇빛은 봄을 당겨낼텐데, 온기溫氣도 데려온다. 온기에 눈꽃도 속절없이 진다. 입춘도 지났으니 봄이 저만치서 고개를 내민다. 착각인가?

  처음처럼. 신영복교수가 썼던 글귀이고, 소주병 라벨에 붙어 있었다. 글귀가 술병엔 어울릴것 같지 않아 인상적이다. 그가 세상을 떠났단다. 마음이 개운치는 않다. 그렇다고 그와 내가 무슨 깊은 인연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그의 책을 단 한권 읽었고, 그의 글씨를 보고 특이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쇠귀. 소의 귀라는 말이다. 우이牛耳라면 더 나을까. 우이독경이란 말이 더 귀에 익다. 소귀에 경經읽기라는 말이다.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해석이다. 신교수가 썼던 호號가 쇠귀라 했다. 그러니 그가 지독히 고집스러웠던 게 틀림없다. 목소리는 낮았고 잔잔했는데, 말하고자 하는건 굳어 있었다. 몸짓은 유연했는데, 서체에선 결기가 있어 예각銳角이었다. 구석기 시대 돌도끼마냥 둔탁해 보였으니, 오히려 고집스러워 보였다.  베이기 보다 내리쳐서 뽀갤듯 보였던 거다. 관우의 청룡도를 보는듯 하다고나 할까. 그가 돌도끼인가 쇠귀인가. 

  그는 고통스럽고 힘든 감옥살이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재주를 가졌다. 그의 글씨체와는 달랐다. 겸손한 듯 했으며 크게 소리치지도 않더란 게 듣고 읽은 내 소감이다. 그래서 그런가.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글귀와 말귀는 희미하다. 그의 글씨체와는 다른데, 잔잔했던 그의 목소리만 기억하는 터. 그가 햇빛을 몹시 그리워 했던 모양이다. 좁은 감방에서 신문지 한장 만한 크기의 햇빛이 한 시간여 들었단다. 햇빛을 받는 짧은 시간을 위해 오랜 감방생활을 버틸수 있었다 했다. 가슴이 먹먹했는데, 영화 빠삐용을 기억해 냈다. 햇빛을 막는건 지독한 최악의 형벌이다. 햇빛을 받지 못하는 고통을 상상할 수는 없다. 

  스타벅스 커피가 시애틀에서 출발했다는 건 알만한 이들은 안다. 춥지는 않고 눈은 없다만, 우중중한 날엔 커피가 당겨온다. 시애틀에선 겨울철 햇빛이 귀하고 고맙다. 

…. 빨래를 거둬 안고 
들어오며 서울 며느리, 
아까워라 햇빛 냄새! 
….
빨래 아름에 얼굴 깊게 묻었다
향기로운 탄내, 햇빛 냄새!
(정진규, 햇빛냄새)

  여름날 오후 햇빛 아래에서 아이들 머리에서는 햇빛 타는 단내가 난다. 어릴적 내 머리에서도 났을게다. 지금이야 시큼털털한 중년 사내의 냄새가 풍길테지만 말이다. 이건 서양이나, 한국이나 어느나라 아이들에게도 차별없이 나는 냄새일지도 모르겠다. 햇빛은 빨래만 말리는 건 아니다. 햇빛은 세상 모든 어린 것들을 키운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다. 

  해가 났으니, 오후엔  밖으로 나가야 겠다. 겨우내내 얼굴에 피었을 곰팡이나 말리려 한다. 햇볕아래 걷다보면 얼굴에 난 검버섯도 데려갈 텐가. 얼굴 곰팡이를 말리고 나면 처음처럼 얼굴이 되살아 날까? 그건 모르겠다. 분명한건 햇빛이 귀한 건 ‘처음처럼’ 여전하다. 
  신영복 교수의 명복을 빈다.

‘지혜는 유산 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이 되도다’ (전도서 7:11)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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