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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의 세상 스케치 546회
보스톤코리아  2016-05-16, 11:50:22   
지난 3월 초에 결혼 27주년을 맞이하고 보냈다. 결혼 27주년 기념일을 맞이하기 전 아침 시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던 이 남자에게 넌지시 말을 건넨다. 아니, 말이 아니라 관심의 정도를 묻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번 3월이면 결혼 몇 주년이 되는 거지? 하고 말이다. 이 남자는 27년 되는 거 아니야? 하고 대답을 해온다. 가만히 생각하니 정말 우리 둘이 함께 오래 살았다. 처음 이 남자를 만났을 때가 이 사람이 업스테잇 뉴욕의 코넬대학을 막 졸업하고 보스턴에서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을 때쯤이었고 나는 뉴욕에서 분장 메이크업 공부에 열중하며 정신없이 분주하던 때였다.

우리는 2년을 죽도록 연애하다가 떨어져 있기 싫어 누나보다도 먼저 결혼을 했다. 가정을 꾸리며 살기에는 어려운 시기라 결혼 후 시댁에서 2년 6개월을 살고 분가를 했다. 우리가 시어른을 모신 것이 아니라 시부모님께서 우리를 거둬주셨다고 하는 것이 더욱 정확한 얘기이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인생을 겁 없이 결정을 하고 말았었다. 어린 나이에 만나 서로 사랑하니 그 사랑 하나면 그 무엇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철없던 시절이었다. 그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연년생으로 딸아이와 두 아들 녀석을 낳고 한 남자의 아내와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나름 큰 꿈을 갖고 미국에 왔던 나 역시도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고 나의 꿈과 사랑(결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내 꿈을 접는 결정을 내리고 결혼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결혼 후 둘이 함께 있는 것은 좋았지만, 미국에 혼자 와 있던 입장에서 대가족 일가의 시댁 가족 틈 사이에서의 갈등 그리고 첫 임신과 출산은 내게 참으로 버거운 시간이었다. 내 인생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간은 제일 행복한 시간이었고 또한, 남편과 부부싸움도 제일 많이 했던 시기였었다. 지금 생각하니 뭐 그리 티격태격 할 일들도 아니었건만, 시시비비를 따지며 서로 속상해했는지 모를 일이다.

아이를 셋 낳고 키우며 시댁에서 분가하고 아이들이 Preschool과 Kindergarten에 다닐 동안에는 마음에서 안정이 안 되고 불안증과 갑갑증이 가끔 찾아왔다. 그로 인해 한 차례씩 화가 치밀기도 하고 혼자서 우울하기도 하고 남편에게 불만만 더욱 쌓여가는 시기였다. 세 아이의 엄마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닌 것 같고 무엇인가 내 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여건은 그렇지 않아 답답하고 초조해 오는 그런 시기였다. 그리고 elementary School에 들어갈 쯤에서야 조금씩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니, 여유가 아니라 내 꿈에 대한 포기가 마음에서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하나 둘 학년이 올라갈수록 엄마의 역할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세 아이의 학교공부와 음악 레슨 그리고 운동을 위해 라이드 해주는 일은 정말 정신없이 바쁜 시간이었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요즘 택시 드라이버라니까 할 정도로 세 아이를 태워서 내려주고 데려오는 일이 장난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렇게 바쁜 시간으로 나의 우울하고 가슴 답답했던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변함없는 성격의 남편이 곁에서 내게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세 아이의 좋은 아빠이기도 했지만, 아내에게도 편안하게 대해주는 그런 착한 남편이었다.

남편은 미국에 만 6살에 이민 온 사람이었다. 여기에서 비슷하게 자란 한국 여자와 결혼을 했거나 미국 여자와 결혼을 했더라면 지금의 상황과는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청소년기를 마치고 만 21살 어른이 다 되어 미국에 온 지극히 토속적인 한국 여자를 만났다. 처음 만남에서 서로 다른 모습에 더욱 설렘과 떨림의 호감으로 다가왔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혼은 그 어떤 설렘이나 호감만으로는 긴 세월을 지속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언어와 문화 그리고 환경의 차이가 살면 살수록 새록새록 다름으로 다가오는 일 앞에서 점점 혼자가 된 듯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갈 때쯤에 내 일을 갖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그림과 붓글씨를 쓰면서 마음의 평온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하며 계기가 되어 한인 신문에 칼럼을 쓰게 되었고 사회 활동도 조금씩 시작하게 되었다. 벌써 그렇게 시작한 일이 벌써 만 10년이 된 것이다. 요즘은 세 아이가 모두 제 공부를 하고 마치며 제 길을 찾아 가고 있다. 남편은 가끔 철없는 아내를 위해 타박보다는 웃음으로 답을 해주는 착하고 고마운 사람이다. 무엇보다도 남편은 나의 일에 있어 넉넉한 후원자가 되었고 이제는 친구 같은 남편이 편안해 좋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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