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14. 제로니모와 나바호의 천리 길 (6)
보스톤코리아  2016-05-30, 11:58:57 
나바호족의 롱 워크(1864)
나바호 부족이 살던 땅이 1848년 미국의 영토로 편입된 후 미국 정부는 1850년에 데피안스 요새(Fort Defiance)를 설치하고 연방군대를 주둔시켜 나바호족과의 충돌을 관리하였다. 갈등이 점차 심화되어 오다가 1864년 드디어 칼슨 대령은 나바호족들의 가옥과 경작지를 초토화시키고 약 9000명의 나바호부족 인디언을 300마일 너머에 있는 뉴멕시코 지역으로 강제로 쫓아냈다.

강제이주는 체로키족이 겪었던 눈물의 길과 마찬가지로 겨울 추위 속에서도 진행되었는데, 추위와 질병으로 이주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이 역사적 사실을 후세 사가들은 '긴 도보여정(Long Walk)'이라고 부른다.  뉴멕시코에 있는 섬너 요새(Fort Sumner)의 보스크 레돈도(Bosque Redondo) 수용소에 갇혀 지낸 4년간의 감금생활은 나바호족에게는 견딜 수 없이 힘든 세월의 연속이었다. 처음부터 보스크 레돈도 수용소는 식수 조건 등을 포함한 생활여건 면에서 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먹이고 재우기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다. 4년간의 감금생활 중 기아와 질병으로 많은 희생이 있은 뒤 1868년에야 미국정부는 강제이주의 잘못을 인정하여 고향땅으로의 복귀를 허락했다. 평원인디언들이 겪은 피눈물 나는 수난과 견주어 보면 나바호족은 참 운이 좋은 편이었다. 

처음 고향으로 돌아올 당시에는 연방정부로부터 14천 km²의 땅을 되돌려 받았다. 물론 인디언구역의 경계를 정할 때에 목초지로 적합한 땅은 백인의 몫으로 남겨놓았다. 고향으로 돌아온 때로부터 끈질기게 노력한 결과 그들의 땅이 지금은 남한 면적의 3분의 2에 가까운 62천 km²에 이르게 되었다.  나바호 네이션 안에는 그랜드 캐년(Grand Canyon),  캐년 드 셀리(Canyon De Chelly),  모뉴멘트 밸리(Monument Valley) 등 세계적인 관광명소를 포함한 십여 개의 유명한 지질학적 공원과 아나사지 문명 유적지를 포함한 역사적 기념공원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지금은 거의 폐광이 되었지만 한 때는 우라늄, 석탄 등이 채굴되어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는 땅이 되었다. 지금도 그 지역을 여행하면 누구나 느낄 수 있듯이  사막과 크게 다르지 않는 척박한 광야의 땅에 지나지 않아서 백인 이민자들이 탐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인디언의 몫으로 남겨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나바호는 대부분의 인디언 부족국가가 하고 있듯이 혈연의 정도(흔히 blood quantum이라고 함)를 기준으로 삼아 나바호족의 피를 4분의 1이상 보유한 사람에게만 부족 구성원 자격을 부여하고 있는데, 현재 나바호 네이션의 인구는 약 30만 명이다. 나바호의 언어가 제2차세계대전중에는 군사용 암호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이 때 나바호족 출신 암호병의 활약이 전쟁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설령 적들이 암호문을 입수하더라도 나바호어로 표기된 이상 그 뜻을 나바호족이 아니면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유용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02년 6월 14일 개봉된 영화 '윈드토커즈(Windtalkers)'는 나바호 암호병의 활약 모습을 잘 그려내었다. 영화 속에서 암호병 Ben Yahzeeis 일병으로 출연하는 아담 비치(Adam Beach)는 라코타 인디언의 패망 과정을 다룬 2007년도 제작 TV용 영화 'Bury My Heart at Wounded Knee'에서 인디언 최초의 의사가 된 찰스 이스트만(Charles Eastman) 역을 맡아 열연한 캐나다 국적의 인디언 배우이다. 이스트만에 관한 스토리는 마지막 장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나바호어 외에 다른 인디언 언어들도 전쟁용 암호로 사용되었다. 세미뇰 부족의 말을 이용하여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암호 통신병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던 하르조(Edmond Harjo)가 2014년 3월 31일 9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하르조는 세미뇰 암호병 중 마지막 생존자이었다. 인디언 말로 암호를 만들어 사용한 사실은 1969년까지 군사비밀로 취급되어 왔었다.

15. 네즈 페르세의 도주의 길
네즈 페르세 인디언 부족
오늘날의 아이다호, 워싱턴, 오리건, 몬태나에 걸쳐 아름다운 산과 계곡과 초원으로 이루어진 고원지대(plateu)에는 네즈 페르세(Nez Perce)라는 인디언 부족이 오래전부터 살고 있었다. 네즈 페르세라는 이름은 구멍 뚫린 코라는 뜻으로서 이들과 처음 접촉한 프랑스계 캐나다인 모피 사냥꾼들이 이들 중 일부가 코에 구멍을 뚫어 조개껍질 장식을 달고 다니는 것을 보고는 붙인  것이다. 동부해안에 유럽 이주민들이 처음 왔을 때 인디언들이 온정과 친절을 베풀어 백인들이 정착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듯이 네즈 페르세 인디언들도 1800년대 초 루이스와 클라크의 탐험대(Lewis and Clark Expedition Corps)가 이 지역을 지나갈 때에 여러 가지로 도움을 제공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이들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굶어 죽었을 수도 있을 만큼 탐험대는 식량 조달에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루이스 탐험대는 제퍼슨 대통령의 특명을 받아 미주리 강과 로키 산맥 너머에 있는 컬럼비아 강을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하여 1804년부터 1806년까지 2년간에 걸쳐 세인트 루이스에서 출발하여 태평양 연안까지 왕복하면서 여러 가지 실용적인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베푼 은혜는 오래지 않아 처절한 배신으로 돌아오게 된다.
(다음 호에 계속)

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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