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옥수수 예찬禮讚
보스톤코리아  2016-10-17, 11:35:05 
  가을이 깊어 간다. 서늘한 바람이 일면, 뜨거운 차茶가 제격이다. 보리차와 커피도 갸륵하다만, 더운 옥수수차도 맛이 깊다. 옥수수 철은 더웠던 여름과 같이 지나갔는데 왠 뜬금없는 옥수수인가. 내겐 아직 여름더위가 가시지 않은 모양이다.  

  지난 여름 한국에서다. 구舊도심지에 텃밭근처를 지나칠때였다. 잊고 있던 옥수수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랫동안 옥수수 나무를 못봤던 거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친구가 집 텃밭에서 딴 것이라며 몇자루를 나누어 주었다.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선뜻 받았다. 엷은 갈색 털이 달려 껍질을 벗기지 않은 날 옥수수였다. 문제는 다음이다. 몇자루 되지도 않았는데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친구와 헤어져 그 무거운걸 지고, 들고 지하철을 타고 걸으며 시내를 헤매며 다녔다. 삶아 먹기도 전에 팔이 빠지고 어깨뼈가 어긋나는 줄 알았다. 

  ‘옥수수잎은 난초처럼 깔끔하고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거칠고 싱싱한 힘으로 가득 차 있다…..그리고 거기에 바람이 스칠때, 잎들이 부대끼며 서걱거리는 소리는 늘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사랑을 꿈꾸게 한다.’ (김훈 라면을 끓이며 중에서) 김훈의 표현대로, 옥수수잎은 바람을 맞을때 부대끼며 서걱인다. 그 소리는 너무 서늘해 요의尿意가 자연스럽다. 게다가 옥수수잎에 비라도 들이치면, 보기에 듣기에 사뭇 낭만이다. 도종환 시인이다. 그가 정치판에 뛰어들기 전에 썼던 시詩이다.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접시꽃 당신 중에서, 도종환)

  역시 옥수수 라면 뻥튀기도 있을 것이다. 팝콘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오래전에 맛봤던 강냉이 빵맛은 잊을 수 없다. 성조와 태극기가 엇갈려 그려진 부대자루에서 나온 그 강냉이로 만든 빵 말이다. 잉여농산물 구호물자가 배고픈 우리 아이들에게 먹였던 빵인게다. 노릇하며 갈색으로 잘 구어진 강냉이 빵은 냄새도 맛도 구수했더랬다. 하지만 나는 얻어 먹을 수 없었다. 나는 도시락을 싸서 가지고 갈 형편이 되었으니 말이다. 풍기는 덥고 깊은 냄새는 먹고픈 욕망을 뚫고 올라섰다. 조금 떼어준 빵은 맛이 깊었는데 그것으론 도저히 양이 차지 않았다. 내 도시락과 바꾸자는 소리도 못했다.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내게는 옥수수 차茶도 맛에서는 빼놓을 수 없다. 맛이 구수하기가 보리차나 엽차와 버금간다. 차가워도 뜨거워도 맛이 삼삼한데 퍼지는 냄새 또한 그윽하다. 고향의 맛인지도 모른다. 서늘해진 날을 따라 뜨거운 옥수수차를 우려내야 할까 보다. 가을이 닥쳤나 보다. 
  사족이다. 옥수수를 심을 적엔 씨를 서너개씩 구덩이에 넣는다. 한 알만 넣으면 자라면서 쓰러진다 했다. 우리네 짧은 인생도 비오고 바람이 부는 때까지 서로 기대고 버티고 부대끼면서 살아야 하는가 보다. 옥수수에게서 배운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빵 다섯 개로 오천명이나 먹이고도 남아서’ (마태 16:9, 공동번역)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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