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70
화랑세기花郞世紀, 5세 풍월주風月主 사다함斯多含(22)
보스톤코리아  2017-03-20, 14:32:35 
신국의 나라 신라에는 신궁이 있었다. 먼저 삼국사기에 나오는 신궁의 내용을 보면 487년 제 21대 소지왕 때 최초의 설립과 제사의 기록이 있다. 그리고 같은 삼국사기(제사지)에는 제 22대 왕인 지증왕 때 신궁을 창립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설립은 소지왕, 제도적인 정착은 지증왕 때로 절충적인 해석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같은 삼국사기(신라본기)에는 제 2대왕 남해왕 3년(서기 6년) 봄에 설치된 시조왕 박혁거세의 묘의 제사를 주관하는 일을 왕의 누이동생 아로가 맡았다는 기록이 있다. 아울러 화랑세기에는 제 19대 눌지왕이 심황에게 내물신궁의 주主(신관神官)로 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화랑세기의 필사본이 원본을 복사(필사)한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의 역사가운데서 신궁에 관한 부분은 재정립을 하여 학습함이 마땅하다. 5세 풍월주 사다함조 마지막 부분을 인용한다.
 
“눌지왕이 이에 심황을 명하여 내물신궁奈勿神宮의 주主로 삼았다. 비지공은 이로써 … 내물… 손이다. 묘량부인을 아내로 맞아 비량공을 낳았다. 묘량 …. … 왕녀이다. 또한 대원신통에서 나왔다.”(탈자가 많지만 ‘내물신궁’은 남아 있다)

제 19대 눌지왕의 재위가 417 ~ 458년이고, 제 22대 지증왕의 재위는 500 ~ 514년이다. 즉 화랑세기의 신궁의 기록이 삼국사기의 그것보다 한 세기가 앞서고 있다. 그리고 분명 내물신궁으로 표기를 하고 있다. 물론 지증왕 때의 신궁과 눌지왕 때의 신궁의 성격이 다를 수도 있다. 즉 신궁에서 제사를 지낸 주신의 정체에 관한 문제이다. 박혁거세설, 김씨 시조설(내물왕), 천지신天地神설, 그리고 절충설이다. 이 절충설이 현재 가장 많이 받아들이는 정설이다.  박혁거세가 탄강했다는 나정과 신궁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발굴된 건축물의 구조가 사각형 담장안에 팔각형의 건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아시아 우주관의 구조이다. 그래서 시조 뿐만 아니라 천지신에게도 동시에 제사를 드렸다는 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필사본 화랑세기가 위작이 아니라는 사실이 삼국유사에서 입증하고 있다. 삼국유사에서 길게 기록되어 있는 김제상(삼국사기에는 박제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야기 가운데 눌지왕이 왜국에 볼모로 가있는 동생 미해를 귀국하기 위해 신하들과 의논하는 장면이 있다. 

“나는 비록 부귀를 누리고 있으나 일찍이 하룬들 잠시나마 (아우를)잊지 못해  울지 않는 날이 없었소. 만일 두 아우를 만나보고 함께 선왕先王의 사당에 고하게 된다면 백성들에게 은혜를 갚겠는데, 누가 그 계책을 이룰 수 있겠소?” 

여기에 나오는 선왕은 내물왕이다. 삼국유사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내물왕의 사당은 이미 눌지왕대에 존재하고 있었다. 화랑세기 사다함조에서 그의 가계를 기록하면서 내물신궁을 언급하였다. 사다함은 내물왕의 7대손이다(삼국사기)   
또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내물신궁의 제사를 주관하는 신관의 우두머리가 여자라는 점이다. 신라 초기의 박혁거세 신궁도 그의 누이동생 아로가 제주祭主였으며, 내물신궁의 제관 심황도 여자다. 그리고 화랑세기 서문에서 나오는 원화源花 역시 여자들이었다. 화랑세기의 서문을 인용한다.

“화랑은 선도仙徒이다. 우리나라에서 신궁神宮을 받들고 하늘에 큰 제사를 지내는 것은 마치 연燕나라의 동산桐山, 노魯나라의 태산에서 한 것과 같다. 옛날 연부인이 선도를 좋아하여 많은 미인을 길렀는데 이름하기를 국화國花라고 했다. 그 풍습이 동쪽으로 흘러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여자로서 원화源花를 삼게 되었다. 지소태후가 원화를 폐하고 화랑을 설치하여 국인들로 하여금 그들을 받들게 했다.”

짧은 구절이지만 화랑의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다. 화랑은 신선의 무리이며 그 길을 따른다는 뜻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원화라고 불리는 여자들이 우두머리로서 신궁을 받들어 하늘에 대제를 지내다가 ‘남모와 준정의 사건’ 후로는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花郞을 설치하여, 즉 우두머리를 여자에서 남자로 교체하면서 그를 풍월주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신궁을 받들어 하늘에 큰 제사를 올리게 하였다. 
또한 4세 풍월주 이화랑조에도 신궁의 언급이 있다. 해당 부분의 필사본이 훼손되고 탈자가 많아서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신臣은 마땅히 신궁神宮에서 발원發願하여…” 라는 문구가 뚜렷함을 볼 때 신궁이 신(들)에게 소원을 비는 장소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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