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미역국
보스톤코리아  2017-03-20, 14:34:33 
  봄이면 어린것들이 태여난다. 어린 생명들은 태여나는 건 신비롭다. 

새 봄이 그렇게도 
곱고 포근한 까닭은 
이슬, 꽃, 나비…… 
그토록 조그마한 생명들이 
우리 곁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정숙자, 약한 생명들이 중에서)

  생명의 탄생은 미역국을 떠올린다. 아이를 낳은 다음 산모産母가 먹는 국인줄 아는거다. 아니면 미역국은 생일날에 먹는 것인줄만 알았다. 요사이 저녁 밥상에 자주 미역국이 올라온다. 빠르게 내 머리가 회전한다. 혹시 누구 생일인데, 잊은 건 아닌가? 내 생일인가? 그건 아니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물어 볼 수없다. 만약 차가운 눈초리가 돌아 온다면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군말없이 주는대로 먹어 치운다. 

 아주 오래전이다. 첫아이를 낳을 적이다. 아내의 산후 조리가 난감했다. 철없는 애 아빠는 그런걸 알리 없었다. 말로만 들었고, 연속극에서나 보던 이야기였던 거다. 산후조리에 친정어머니가 온다는 건 꿈같은 시절이었다. 유학생촌村 동네아낙들에 의하면, 산모는 미역국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구들장을 지고 오랫동안 지져야 산독産毒이 빠진다고도 했다. 미국 간호사가 이걸 알 일이 없다. 차가운 오렌지 주스를 친절하게 아내에게 가져다 주었고 마시기를 강요했다. 게다가 찬물에 샤워 하란다. 더운 덩어리를 몸 밖으로 빼낸 산모의 낮아진 체온인데, 이한치한 以寒治寒이었 던가. 문화와 문화가 충돌하여 퓨전 산후조리법이 새롭게 창조되었다. 

  동네 아낙들이 산모에게 미역국을 한 냄비씩 끓여 왔다. 아내는 입맛이 없었고, 철없는 아빠는 미역국밖에 먹을 게 없었다. 미역국도 맛이 여러 가지 인줄을 몰랐다. 멸치 넣어 끓인 미역국도 있었고, 조개를 넣어 끓여낸 마알간 미역국도 맛보았다. 쇠고기 국물로 우려낸 기름진 미역국도 밥 말아 양배추 김치랑 먹었다. 그 많은 미역국을 여러 날 동안 혼자서 먹어 치웠다. 그리고 우유먹는 아이 옆에서 늘어지게 잠들었다. 계속해서 몇 날 며칠을 미역국만으로 연명한 시절이었던 거다. 그러니 산모대신 아빠만 살이 통통히 올랐다. 그 해 겨울은 아빠만 배불렀고, 눈雪만 쌓여 갔다. 흰눈이었고, 서설瑞雪이었다. 

  참, 내 어머니도 나를 낳고는 병원에서 주는 미역국밥이 그렇게 맛있었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래서 그랬던가? 집에서 키우던 개가 새끼를 낳을 적이다. 어머니는 소고기를 몇 점 넣었고, 미역국을 펄펄 끓였다. 그리고 갓 지은 흰쌀밥에 말아 어미개에게 먹였다. 어머니의 말씀. ‘사람 믿고 사는 짐승인데, 새끼 낳느라 수고했다. 많이 먹어라.’ 
  새 생명을 낳는 우리 젊은 아낙들이여. 축복받을 지니. 미역국 많이 드시라.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6:4)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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