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오늘, 다시 읽는 미국사
보스톤코리아  2017-05-15, 11:30:44 
“Let me assert my firm belief that 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 - nameless, unreasoning, unjustified terror which paralyzes needed efforts to convert retreat into advance.”
- Franklin Roosevelt, 1933



“우리가 두려워 해야하는 것은 오로지 두려움 그 자체일 뿐”이라는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취임 연설의 한 구절은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만 고쳐 먹으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는 식의 주장은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면한 문제의 실체를 대면하지 못하게 하는 심리적 슈가 코팅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즈벨트가 설파한 두려워하지 말자는 주장은 “걱정마, 다 잘 될거야”라는 식의 실체 없는 위로가 아니었다.  “현재의 어려움을 전환하고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에 함께 매진하자는 설득이었다. 그리고 그는 미국인들을 설득시키는 데 성공했다.  돌아보건대 대공황이라는 초유의 위기 속에 당선된 루즈벨트가 추진했던 뉴딜에는 공(功)뿐만 아니라 과(過)가 함께 공존했었다. 게다가 미국 경제가 다시 활황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 데에는 루즈벨트의 뉴딜 프로그램보다도 2차 세계 대전의 역할이 더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즈벨트의 취임 연설이 전달한 메시지가 미국인들의 자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의지와 자신감을 다시 불어 넣었다는 점만큼은 이론이 없다. 

사실 루즈벨트가 취임했던 1933년 당시의 현실은 여러모로 어두웠다. 미국 전체의 실업률이 농촌을 제외해도 25%에서 33%까지 치솟아 있었고, 은행 네 개 중 하나는 문을 닫았고, 수많은 비즈니스가 도산했다. 교회나 자선단체가 운영하는 수프 키친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섰고, 포어클로져(담보 압류)의 위기 앞에 중산층의 자존감도 바닥을 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세계 제 1차 대전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부강해진 미국이었지만, 활황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사실 1918년 11월의 1차대전 종전과 대공황의 신호탄이 되는 1929년 10월의 주식시장 붕괴까지의 10여 년간 미국 경제는 외적으로는 호황기였으나 경제의 건전성 차원에서 보자면 청산해야 할 폐단들이 켜켜이 쌓여가던 ‘적폐기’였기에 호황의 고점에서 곤두박질 치기 시작한 경기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농촌 지역에서의 불황은 이미 1922년경에 시작되었다. 1차 대전 시기 미국의 농촌들은 유럽으로 수출하는 식량 덕에 많은 이윤을 얻었는데 유럽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농업 생산량을 25%가량 늘렸다. 문제는 종전 후 유럽의 농촌이 복구되기 시작하면서 줄어드는 수요에 맞추어 미국의 농업 생산량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 그로 인해 발생한 잉여 농산물은 결국 농산물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고, 농촌은 열심히 일할 수록 가난해질 수 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1920년대의 정부는 농촌의 불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지 않았다. 1920년 당선된 워렌 하딩, 1923년 그의 사후 대통령직을 이어받고 24년 선거에서 당선된 캘빈 쿨리지, 그리고 1928년 선거에서 당선된 허버트 후버에 이르기까지 1920년대의 공화당 집권기의 경제 정책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 자유방임 (Laissez Faire) 기조에 부자 및 재벌 기업 감세를 통해 투자를 촉진하려는 낙수효과 (Trickle Down)이론에 기댄 친-대기업 경제 정책, 그리고 역시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고관세, 반 노조 정책등에 기대고 있었다. 주식시장의 투기 현상이 비정상적으로 과열되어 있었다. 일반 국민들이 오늘 쓰고 내일 갚는 신용 구매의 한계에 직면했을 때, 혹은 주식가격의 거품을 인지하기 시작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었기때문에. 

루즈벨트가 뉴딜을 성공시켰던 핵심은 첫 100일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적한 수많은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3-R (Relief, Recovery, Reform, 즉 단기적인 구호, 경제 회복, 그리고 개혁)이라는 프레임을 만들고 활발히 “일을 하기 시작”했다. 뉴딜의 핵심적인 그림은 사실 이 기간에 그려졌다. 일자리를 만들고 은행을 개혁하고, 경기를 회복하기 위한 여러 입법이 이루어졌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소통하는 대통령이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라디오를 통해 뉴딜 정책의 의의와 방향을 국민들에게 직접 설명하는 일명 노변환담(Fireside Chat)의 행보를 보였다. 그 소통의 노력 덕에 뉴딜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루즈벨트의 뉴딜은 애초에 경제의 사다리의 가장 바닥에서 “잊혀진 사람들을 위한 뉴딜”을 표방하면서 시작한것이었다. 하기에 보수로부터는 뉴딜의 사회주의적 함축이, 그리고 진보로부터는 불충분해보이는 개혁성이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또한 때로는 비효율성이 지적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저소득 도시 빈민층 (특히 흑인)들과 노동자 계급들의 관점과 이익이 경제 정책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지 꼭 삼일. 사람들이 신기해하고 행복해한다. 정부가 일을 한다고. 루즈벨트의 첫 100일이 떠오른다. 나는 이 정부가 당연한 일을 하는 댓가로 사람들에게 칭찬받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개중에는 비판 받을 일도, 시행중에 전술을 수정해야 할 일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소통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그리고 정부가 제 기능을 하지 않는 동안 잊혀졌던 사람들을 위한 일들을 한다면 그래도 국민들에게 기쁨주고 사랑받는 정권으로 남을 것임을 믿는다. 처음처럼. 


보스톤코리아 칼럼리스트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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