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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카시의 말로 그리고 부역자들
오늘, 다시 읽는 미국사
보스톤코리아  2017-06-05, 11:44:59   
1954년 6월 2일, 당시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 (Joseph McCarthy), CIA와 핵무기 산업에 공산주의자들이 침투해 있다고 주장하다. 
매카시즘 광풍을 몰고 와 미국 전역를 적색 공포 속에 몰아 넣었던 그 위스콘신 출신 상원의원 매카시가 원래부터 정치 거물은 아니었다. 매카시가 판사로 재직하던 시절 위스콘신의 낙농업자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던 덕에 그 주에서는 적지 않은 인기를 누려 정계 진출을 권유 받아 공화당 상원의원에 올랐는데, 그의 배경이 아일랜드계 카톨릭이었던 덕에 소속 정당은 달라도 케네디 가문의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1940년대 후반의 매카시는 뇌물수수, 음주, 경력 위조, 명예 훼손 등 각종 구설수에 휘말려 위태로운 처지의 정치인이었다. 

어쨌거나 1950년 초, 매카시가 “반공”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파시즘에 대항해 싸웠던 세계 제 2차 대전의 결론이 소련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냉전으로 접어들었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했을 일이다. 물론 매카시가 반공주의의 창시자는 아니다. 가령 1938년 설립된 하원 반미 활동 조사위원회 (HUAC: 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는 1947년무렵부터 1950년까지 다수의 할리우드의 작가, 배우, 감독들의 정치적 신념 혹은 그들이 현재 혹은 과거에 속해있던 조직 등을 문제 삼아 영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영화 및 연예 사업에서의 활동을 제한했던 역사가 있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갔으나 별다른 혐의 내용을 찾지 못한 영화인들도, 그리고 부당한 조사에 거부한 인사들도 할리우드로 돌아오지 못하거나 혹은 수 년 동안 일자리를 잡지 못하는 불이익을 당하게 되었다. (물론 자발적으로든 비자발적으로든  HUAC에 협조한 영화인들도 있는데, 에덴의 동쪽의 거장 감독인 엘리아 카잔Elia Kazan, 훗날 대통령이 되는 Ronald Reagan등이다. 이들 역시 평생 배신자의 낙인이 찍혀야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카시가 들고나온 반공 이데올로기는 그 파장이 훨씬 컸다. 바로 미국 국무부에 무려 200명이 넘는 소비에트 간첩이 암약하고 있고, 매카시는 그 명단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기대문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은 매카시는 미국 정부의 여러 부서마다 곳곳에 공산주의 간첩이 침투해 있다고 주장했다. 최소한의 팩트 체크도 거치지 않은 채, 매카시의 주장을 받아쓰기하고, 연일 헤드라인으로 장식해 준 언론도 문제였다. 매카시의 정치적 회생은 그렇게 적색공포의 확산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별 영향력도 없던 매카시는 대체 그 많은 공산주의자들이 그것도 각 정부 부처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인지할 수 있었을까? 사실 매카시는 단 한 명의 공산주의자도 제대로 밝혀낸 적이 없다. 그러나 매카시는 동유럽에서의 소비에트의 세력 확산이라든가 중국의 공산화를 목도하면서,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최측근으로서 얄타 회담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을 수행했던 앨저 히스가 간첩으로 기소되는 사건을 보면서 생겨난 공산주의의 확산에 대한 대중의 히스테리를  자극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매카시 광풍은 매카시 자신의 정치적 반대자들이나 공산주의에 정서적으로 동조하는 이들을 제거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공화당의 입장에서는 매카시가 나름 유용한 무기였기에 매카시가 조장하는 적색 공포를 용인했고, 민주당 정치인들은 공산주의 낙인이 찍힐까 몸을 사리기도 했다. 

매카시즘에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은 공화당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Dwight D. Eisenhower)의 집권 당시다. 처음에는 매카시의 덕을 봤던 공화당이었지만, 매카시 방식의 마구잡이식 빨갱이 사냥이 도를 더해갈 수록 공화당의 정치적 부담도 커져갈 수 밖에 없었다. 공화당 인사들도 슬슬 매카시즘과는 거리를 두려는 기류가 조성되었다. 이 무렵 
매카시는 다시 한번 미국 일반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얻고자 하는 절박함때문이었는지, 미국 육군에도 공산주의자들이 침투해 있다는 위험한 주장을 들고 나선것이다. (I like Ike의 그 Ike로서 대중의 사랑을 받은 대통령 아이젠하워도 육군 출신이다) 

결국 1954년 6월. 매카시-육군 청문회가 근 한 달간 열렸고 미국 시민들은 그 유명한 매카시를 텔레비전 중계로 보게 되었다. 티브이를 통해 대중에게 각인된 매카시는 그저 약자를 괴롭히는, 히스테리컬한 인사였을 뿐이다. 또한 지금까지 그가 주장해왔던 공산주의 간첩 운운의 주장은 별다른 근거가 없는 폭로였을 뿐이라는 것도 만천하에 알려지고 매카시의 주장은 급속하게 설득력을 잃어갔다. 여기서 매카시는 다시 한 번 무리수를 두는데, CIA와 핵무기 제조 산업에도 소비에트 간첩이 침투해있다고 주장하고 나선것이다. 

매카시의 육군내 간첩 침투설이 자살골이었다면, 매카시의 CIA에 대한 포격은 일종의 정치적 확인 사살이었을 것이다. 마치 실체도 없는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쳤던 양치기 소년처럼, 아무도 그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다. 
결국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CIA국장 알렌 덜레스 (Allen Dulles), 그리고 국무부 장관 포스터 덜레스 (Foster Dulles)는 지금까지 매카시가 공격했던 ‘공산주의자’가 사실은 실체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매카시는 더이상 회생하지 못했다. 얼마 뒤 미국 상원은 매카시 불신임에 투표했다. 그리고 얼마 후인 1957년, 겨우 48세의 나이에 매카시는 사망했다. 
블랙리스트 혹은 좌파 낙인 찍기… 반세기 전 미국에서, 그리고 불과 얼마전의 한국에서 현실이었던 역사다. 매카시 같은 단 한사람의 광인때문에 벌어지는 일일까. 언론도, 그리고 정치적 이득을 계산하는 정치인도 사실상 부역자 아니었을까?  


보스톤코리아 칼럼리스트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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