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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81
화랑세기花郞世紀, 6세 풍월주風月主 세종世宗(10)
보스톤코리아  2017-06-05, 11:48:36   
세종전군의 정처正妻 융명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미실, 한편 정처의 자리를 빼앗기고 자존심이 상하여 출궁한 융명, 후일 미실이 진흥왕에 의해 전주가 되어 진흥왕을 받들면서, 진흥왕은 세종에게 융명으로 하여금 정처로 삼게 다시 명하였다. 

화랑세기에는 이렇게 융명처럼 남편(들)을 빼앗기고 방황(?)한 여인들이 더러 있다. 심지어 공주의 신분으로도…, 아들만 두었다면 반드시 이름을 '석가'로 지었을 신라의 26대 진평왕, 신라에서는 석가모니가 태어날 섭리攝理가 아니었을까? 그는 아들을 보지 못하였다. 그는 딸만 둘(셋 또는 넷) 두었다. 진평왕은 진흥왕의 손자이다. 아버지 동륜태자는 진흥왕의 후궁인 보명궁주의 치맛폭을 풀려고 담장을 넘다가 개에게 물려서 죽었다. 그래서 왕위는 삼촌인 김사륜(진지왕)에게로 갔다. 하지만 진지왕은 정사政事는 돌보지 않고 정사情事(도화녀와의 사랑이야기가 대표적이다)만 한다는 죄명으로 사도태후와 미실파에 의해 폐위당했다. 왕위는 진지왕의 아들인 김용춘207) 에게로 가지 않고 죽은 동륜태자의 아들인 김백정에게로 갔다. 이 김백정이 바로 진평왕이다. 진평왕은 딸만 둘(셋, 또는 넷) 두었다. 장녀는 덕만공주로 632년에 선덕여왕으로 즉위하였다. 차녀는 천명공주이다. 천명은 5촌 당숙인 김용춘과 결혼하여 김춘추를 낳았다(삼국사기에 따르면 덕만이 장녀이다. 삼국유사에는 그냥 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인 김대문이 쓴 화랑세기, 필사본에는 천명이  장녀로 나온다. 또한 현대인들의 작품 가운데는 쌍둥이로 그려지기도 한다. 어떻든 누가 장녀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그리고 삼국유사에는 또 한명의 딸 선화공주善花公主(또는 善化, 백제의 무왕이 된 서동과의 사랑이야기 주인공이다)가 등장한다. 이 선화공주는 삼국사기나 화랑세기 등 다른 사서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화랑세기에만 삼녀 천화공주天花公主가 등장한다. 천화공주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나오지 않는다. 다시 한 번 정리를 하면 삼국사기에는 덕만공주와 천명공주가 나온다. 삼국유사에는 딸들이 등장하는데 선화공주도 있다. 그리고 신라인 김대문이 쓴 화랑세기에는 천명공주, 덕만공주, 천화공주가 나온다. 

여기서는 신라의 일부일처제의 제도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공주, 천화공주의 인생유전을 화랑세기를 통해 따라가 본다. 천화는 처음에 진지왕의 큰아들인 김용수에게로 시집 갔다. 즉 용수는 천화의 오촌당숙이다. 그런데 아들이 없었던 진평왕은 용수를 맏딸인 선덕공주의 남편으로 삼아서 왕위를 이을 '성골'을 보려고 했다(결과는 그들 사이에서도 아들은 태어나지 않았고, 용수도 왕위를 잇지 못했으며, 선덕이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여왕이 되었다). 졸지에 천화는 남편을 선덕공주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용수는 천화를 동생인 용춘에게 혼인시켰다(생몰년이 미상인 용춘의 부인 천명공주는 이때 김춘추를 낳은 뒤 죽은 것으로 보인다). 천화의 박복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선덕과 용수 사이에 아들이 생기지 않자, 진평왕은 동생인 용춘에게 선덕을 받들게 하였다. 천화는 이번에 또 남편을 선덕에게 빼앗기게 되었다. 그리고 진평왕은 천화에게 백룡공白龍公이라는 남자에게 시집가게 하였다. 그렇다면 왜 천화는 남편을 바꾸어야만 했던가? 당시의 제도인 일부일처제의 원칙 때문으로 보인다. 첩의 신분으로 격하되기 전에는 남편을 공유할 수 없는 당시의 제도가 천화로 하여금 세번에 걸쳐 정부正夫를 가지게 하였다. 물론 많은 여인들이 첩의 신분으로 남편을 공유하였지만 공주의 신분으로 첩이 된 사례는 없다. 또한 진평왕에게는 '석가'라는 이름이 될뻔한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기에, 성골 남자는 자신만 홀로 남게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뒤를 이을 성골 남자를 절박하게 원하였지만 '슈도다나'208)  처럼 '석가모니'의 탄생을 보지 못했다. 결국 그가 신라의 마지막 성골 남자 왕이다. 그리고 자신의 딸 선덕여왕과 동생 국반의 딸 진덕여왕을 끝으로 성골은 씨가 말랐다. 다음 왕이 진골인 태종무열왕 김춘추이다. 

207) 김용수라고도 기록되고 있으며, 삼국사기에는 동일인으로, 화랑세기에는 형제로 용수가 형이다. 진흥왕의 손자이며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아버지이다. 어머니는 지도부인이다. 진평왕의 딸인 천명공주와 결혼하여 김춘추를 낳았다(602년). 김용춘은 아버지 진지왕이 폐위당할 때 성골의 신분을 유지하지 못하고 족강이 된것 같다. 진평왕의 동생인 김국반은 왕이 된적도 없지만 그의 딸 진덕은 왕이 되었다. 이 진덕여왕이 신라의 마지막 성골왕이다.
부인인 천명공주는 생몰연대가 확실하지 않다. 김용춘은 578년생이며 647년에 졸하였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천명은 아버지 진평왕의 명으로 왕위를 동생인 덕만공주에게 양보한 뒤 출궁하였고, 성골에서 진골로 족강되었다. 그래서 김춘추가 진골이며 삼국사기만으로 풀리지 않았던 '뼈대'의 의문이 풀린다. 18세 풍월주를 지낸 '춘추공편'에서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208) 당시 신라 왕실을 석가모니 가문과 동일시하여 진평왕의 이름을 석가의 아버지인 백정(슈도다나, 백정왕, 정반왕)으로, 부인은 마야부인, 동생들에게는 백반, 국반 등 석가모니 삼촌들의 이름을, 딸 덕만에게도 석가모니의 누나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부처의 노여움을 샀는지 몰라도 정작 '석가모니'가 될 왕자는 태어나지 않았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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