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94
화랑세기花郞世紀, 7세 풍월주風月主 설화랑薛花郞(1)
보스톤코리아  2017-09-11, 11:38:36 
화랑세기(필사본)가 출현되기 전까지는 모든 화랑의 낭도들이 왕이나 귀족 등 최상류층 자제들로만 구성된 것으로 알았다(삼국사기 등 기존사서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으니까…,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4, 진흥왕37년, 에 보면 화랑의 설치 배경이 기록되어 있는데, 일부를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당나라 영호징令狐澄이 ‘신라국기新羅國記’에서 말하기를 <귀인貴人의 자제 중에서 아름다운 자를 뽑아 분을 바르고 곱게 꾸며 이르기를 화랑이라 하였는데 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를 받들어 섬겼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위키백과에도 화랑은 “왕과 귀족의 자제로 이루어졌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화랑세기에는 한미한 출신의 젊은이들도 화랑이 되었으며 심지어 화랑의 수장인 풍월주가 되기도 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미시랑未尸郞과 설화랑薛花郞이다. 미시랑은 천애고아였으며 집이 없어 노숙자로 거리를 방황하기도 했지만, 그는 화랑의 수장인 국선에 까지 올랐다. 즉 인격과 덕망 그리고 용의勇義와 용의容儀가 있으면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국어사전에 없는 단어를 ‘용맹성과 정의감’을 용의勇義로, ‘준수한 외모’를 용의容儀로 표현했다). 그리고 설화랑은 원래의 이름이 설원랑이다. 그의 아버지는 설성이며 어머니는 금진낭주이다. 설성은 미천한 출신으로 구리지의 용양신이었다. 용양신의 언급은 화랑세기에 몇 차례 등장하는데, 2세 풍월주 미진부전에 박영실이 법흥왕의 용양군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5세 풍월주 사다함편에 설성이 구리지의 용양신으로 나오고, 7세 설화랑편에 다시 한번 구리지와 설성의 관계가 묘사되어있다. 그 외에도 남색을 연상케하는 기록이 출현하지만 용양군/용양신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춘추전국시대의 7웅 중의 하나인 위나라의 안리왕과 그의 총신 용양군의 고사를 보면 용양군/용양신은 남색으로 주인이나 상관을 받드는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후로 부터는 그 어휘의 의미는 그러한 관계를 묘사할 때만 사용하였다(화랑도와 성 그리고 태권도 154편 참조).

구리지는 아버지가 비량공이며 어머니는 벽화부인이다. 벽화는 당시 신라에서 가장 뛰어난 미인이었으며 제21대 소지왕(비처왕)이 그 미모에 반해 경주에서 영주까지 몇 차례 잠행을 하면서까지 찾아갔다가 결국 왕궁으로 데려와서 후궁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 벽화의 미모에 빠진 사람은 비록 왕 뿐만이 아니었고 비량공 또한 그 중의 한명이었다. 그래서 주야로 벽화를 만날 궁리만 하다가 그녀가 가는 뒷간을 택했고 그들은 거기서 통정하였다. 지속되는 그들의 상통을 소지왕도 알고 있었지만 허락하였다. 그리고 곧 그들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그가 구리지이다. 뒤간에서 상통하여 태어난 아이라서 이름이 ‘구리지’ 이다 (화랑세기 1세 풍월주 위화랑편). 그리고 구리지는 5년간이나 연모하고 발원기도까지 했던 금진이 드디어 출궁되어 밖에서 살게되자 단숨에 달려가서 사랑을 고백하고 함께 살았다. 거기서 태어난 자식들이 토함, 사다함, 새달이다. 새달은 딸이다. 그 후 구리지는 독산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그러자 금진은 구리지의 용양신 설성과 사통하였다. 그 때 태어난 아이가 설원랑이다. 금진은 아버지가 1세 풍월주인 위화랑이고 어머니는 오도부인이다. 그리고 언니 옥진과 함께 법흥왕의 후궁이 되었다가 출궁당했다. 

아버지가 미천한 출신임에도 설화랑이 풍월주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의 실권자 미실의 영향력이 있었다. 그 내용을 화랑세기에서 보면(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 이종욱 역주해),

[7세 설화랑은 처음 이름이 설원랑이다. 금진낭주의 사자私子이다. 그 아버지인 설성은 낭도로서 모습이 아름답고 교태를 잘 부려 구리지의 용양신이 되었다. 인하여 낭주와 통通 설원랑을 낳았다. 풍채가 아름답고 옥적玉笛을 잘 불었으나 출신이 한미하여 낭도들이 받들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미실이 임금의 총애로서 호령하여 낭도들을 예속시켰다. 낭도들은 감히 여러 말을 못했다. 미실은 늘 진귀한 하사품을 보내주며 설원에게 말하기를 “너의 낭도를 잘 타일러 보겠다” 했다. 설원은 이에 몇몇을 얻어 심복으로 삼았다. 7세 풍월주가 됨에 이르러 미생을 부제로 삼고, 아랫사람들에게 몸을 굽히고 제물을 풀어주어 사람을 위로하니 낭도들이 모두 복종했는데, 오히려 미흡함이 있었다. 미실은 이에 설원랑에게 권하여 모랑공의 과처寡妻인 준화낭주를 아내로 맞도록 했다. 낭주는 그 때 나이가 38살이었고 과부로 산지 18년이었다. 다시 화랑을 얻어 지아비로 삼아 마침내 아들인 설웅薛雄을 낳았다. 이에 여러 낭도들이 축하하여 말하기를 “위화랑공의 손자이다” 했다. 다시 불복하는 사람이 없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www.gch.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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