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머릿말 메들리
보스톤코리아  2017-10-09, 15:22:13 
  한국엔 추석 연휴기간이다. 그런데 들려오는 한국 소식에 마음 한켠이 무겁다. 추석인데, 송편은 드셨는가?

  머릿말은 서문序文이라고도 한다. 책을 펴고보면, 머릿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요새 읽었던 책중 머릿말이다. ‘… 상허 이태준 선생의 고전적 노작에 내가 해제를 얹는 것은 실로 외람된 노릇이다. ….이 책에 대한 나의 사적인 부채를 이토록 거친 말로 갚게 되어 부끄러울 따름이다.’ (임형택, 문장강화 (이태준) 해제본의 머릿말).  상허尙虛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생생히 전해진다.

  한국에서 제법 읽혔다는 책 호모 사피엔스 서문序文도 인상적이다. ‘한국이 가르쳐 주는 것이 하나 더 있다. …. 지난 1945년 한반도 남쪽과 북쪽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던 기술은 정확히 똑같았다. 하지만 오늘날 남북한의 기술 격차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동일한 언어와 역사와 전통을 지닌 민족의 사람들이 거의 비슷한 기술을 사용해서 완전히 다른 사회를 건설한 것이다.’ (유발 하라리, 호모 사피엔스, 한글판, 서문 중에서). 

  칠십여년 후 오늘날, 남과 북간 차이는 분명 엄청날 것이다. 그런데, 한쪽이 다른쪽을 향해 겁박하고 있다.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다는 말이다. 눈길이 자주 한국신문과 미국뉴스에 간다. 무슨 일이나 없기를 간절히 빈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의 서문序文이 떠올랐다. 

…. 옛터가 먼 병자년의 겨울을 흔들어 깨워, 나는 세계악에 짓밟힌 내 약소한 조국의 운명 앞에 무참하였다. 그 갇힌 성 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 말로써 정의를 다툴 수 없고, 글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으며, 살아 있는 동안의 몸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다 받아내지 못할진대, 땅 위로 뻗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으리. …… 슬픔이 나를 옥죄는 동안, 서둘러 작은 이야기를 지어서 내 조국의 성城에 바친다. (김훈, 남한산성 서문 중에서)

  삼전도비三田渡碑가 떠오른다. 고두삼배叩頭三拜란 말도 있다.  인조仁祖는 청나라 칸汗에게 술잔을 바치고, 무릎꿇었다 했다. 세번 절하고, 아홉번을 차가운 땅바닥에 찧었다고도 했다. 삼전도 치욕이라 말한다. 말 나온김에 한마디 더 해야겠다. 사족蛇足이다. 청나라는 만주족이 한족漢族 명나라를 꺾고 세웠다. 그러니 중국은 만주족 식민지였다. 오죽했으면 한족은 관직에 오를 꿈도 접었다고 했던가. 그런데, 어느틈에 식민지 역사는 슬그머니 중국 본本역사에 편입되었다. 몽골족 식민지였던 원나라처럼 말이다. 

  한국 국방장관과 외교특보사이에 일었던 논쟁기사를 읽었다. 얼핏 김상현과 최명길을 떠올렸다. 작가 김훈 말을 그대로 옮긴다.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言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들었다. 영화에서도 말言이 창궐할 것인가. 영화도 소설처럼 슬픔으로 옥죄일 것인가. 영화를 보는 관객은 조국의 운명앞에서 무참 할 것인가. 아마도 그럴것이다. 수백년이 지난 오늘도 그해 병자년 춥던 겨울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 안쓰러운 심정을 이처럼 거친말로 몇자 적었다. 딱할 뿐이다.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사도행전 4:11)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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