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영어잡설 28 ] 벤츠와 용병
보스톤코리아  2018-09-10, 14:43:41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15권에 이르는 방대한 책이지만 죽기 전에 한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로마제국의 기원에서부터 흥망성쇠를 다룬 책은 영국의 에드워드 기본이 쓴 <로마제국 흥망사>가 기본이지만, 읽는 재미로는 시오노 나나미의 책이 나긋나긋하고 수월해서 더 낫다. 아무튼 그 책에 의하면 로마인들은 일찍부터 용병을 활용했다. 처음엔 로마의 시민권을 얻기 위해 정복지의 남자들이 군에 들어갔고, 나중엔 돈을 벌기 위해 남자들이 군에 들어갔으며, 결국에는 용병들의 반란으로 로마제국이 무너지게 된다. 로마의 흥망사는 용병들의 흥망사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게르마니쿠스>는 불운한 장군과 그를 따르는 용병들의 비극을 잘 보여준다. 

용병은 영어로 mercenary라 한다. 용병 즉 고용된 병사가 mercenary라 불리게 이유는 장사와 약탈의 신인 mercury와 관련이 있다. mercury는 약탈품을 의미하는 merc와 ‘관리하는 사람’이란 뜻의 -ury가 합해진 말이다. 로마 장군들인들 돈이 있었겠는가. 싸움에서 승리하면 전리품의 일부를 병사들에게 나누어주었고, 그러한 분배 문제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사람이 바로 줄리어스 씨이저이다. 그는 심지어 부인이 아니라 애인에게서 꾼 돈으로 병사들을 유지하는 수완을 보이기도 했다. 아무튼 약탈품, 전리품을 받는 병사가 바로 mercenary이다.

전리품에서 나아가 물건을 나누어주는 것은 mercy이다. 자비란 나누어주는 것이니까. 로마시대의 장사꾼들은 약탈품을 파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런 사람들을 merchant라 불렀다. 셰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에 나오는 merchant는 어원적으로 볼 때 훔치거나 빼앗은 물건을 파는 사람이었다. merchant가 약탈품을 파는 곳이 market이다. 장사와 약탈의 신 mercury에서 철자가 약간 바뀐 것이다. merchandise는 약탈품이었으나 오늘날 ‘상품, 물품’이란 뜻으로 일반화되었다.  

mercury는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인 수성을 가리키기도 한다. 지구는 한 달에 한번 태양 주위를 도는데 비해 수성은 훨씬 더 빨리 돌기 때문에 mercurial은 ‘변덕스러운’이란 뜻으로 쓰인다. mercury는 ‘수성’과 더불어 ‘수은’을 의미하기도 하다. 수은은 온도계를 만드는 데 쓰이기도 해서 The mercury fell below zero. (온도계가 영하로 떨어졌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로마신화의 Mercury는 그리스신화의 Hermes에 해당한다.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아들로서 전령의 신이자 여행, 상업, 약탈의 신이기도 하다. 서양문화에서 여행, 약탈, 장사가 서로 밀접하게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어에서는 h가 발음이 되지 않으니까 Hermes를 [에르메스]라 발음한다. 귀부인들이 좋아하는 ‘에르메스’는 영어식 발음으로는 [허미스]이다. 프랑스어 발음은 왠지 고급진 느낌인데 비해 영어식 발음은 정말 멋대가리 없다. 

독일산 고급차인 메르쎄데스-벤츠는 Mercedes-benz라 쓴다. 메르쎄데스 가문과 벤츠 가문이 결합한 회사이다. 철자를 보면 이 단어도 약탈과 장사의 신 mercury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로마인 이야기>에서도 언급되지만 Mercedes는 원래 독일이 아니라 스페인의 성씨이다. Maria de las Mercedes 즉 ‘자비로운 마리아’란 이름에서 왔다. Mercedes는 ‘자비’란 뜻을 가지는 merced의 복수형이다. 그리고 이 스페인 성씨는 당연히 라틴어 merces에서 유래한다. 어떻게 독일까지 이 성씨가 퍼지게 되었는지는 굳이 알 필요가 없겠지만 아무튼 메르쎄데스-벤츠라는 유명한 자동차 이름은 멀리 스페인 출신의 가문에서 유래한다. 

요즘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프로 스포츠 팀들에서 소위 ‘용병’들이 활약한다. 박지성은 맨유의 용병이었고, 펠레는 LA 축구팀의 용병이었으며, 메시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용병 선수이다. 이들이 용병이라 불리는 이유는 돈을 받고 고용된 외국인 선수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말에서는 ‘용병’이란 별칭으로 불리지만 이걸 영어로 mercenary라 번역할 수는 없다. 영어로는 외국인 고용 선수를 mercenary로 칭하지 않기 때문이다.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orugo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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