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견디는 방식(10)
보스톤코리아 연재소설
보스톤코리아  2018-10-01, 10:59:39 
“너네 남편은 뭐 하니?”
“집에서 살림해.”
은미가 깔깔거리며 웃는다. 웃다 웃다 눈물을 찔끔거리고 흘리기까지 한다.
“넌 어쩌면 단번에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팍 뱉니.”
“왜 내가 어째야 하나? 넌 그 운동권 남자랑 결혼했어?”
“어머 미쳤니? 결혼을 그렇게 하게.”
은미가 담배에 불을 다시 붙인다. 내가 담배 냄새 싫다고 하니 글 쓰는 것들은 다 피운다던데라고 구시렁거리면서 담뱃불을 끈다.

  비를 맞으며 은미는 남자와 한참을 그렇게 안고 있다 눈을 떴는데 제일 먼저 보인 간판이 [핀란디아]라는 모텔이었다. 누가 먼저 가자고 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그곳으로 가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던 순간이고 마음이었다. 은미는 갑갑하게 목을 조르는 듯한 그 순결이라는 것을 그날 밤 벗어던졌다. 그와 연애를 지속했지만 결혼은 할 수 없다고 처음부터 말해 두었다. 결혼은 나이가 열다섯 살이나 많은 사람과 했다. 남편은 한번 상처한 사람이었고 은미가 다니던 회사의 임원이었다. 은미의 신분을 급등 시켜 줄 수 있는 조건을 가졌다. 그때부터 은미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공부, 취직 때문이 아니라 그들만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기 위한 쟁취하듯 해 왔던 공부 같은 취미 생활 말고 그저 자신 만을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상투적인 교양과 신분에 맞는 옷차림 그리고 사교를 위한 취미 생활도 다 끊어냈다. 이미 그런 것들은 대학을 다니며 배우고 습득한 것들이다. 무엇 때문에? 바로 이런 안정적인 자기 위치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눈물로 나이 든 남편에게 호소한다.  “당신은 몰라” 이 말을 시작으로 은미는 솔직하게 모두 털어놓았다고 한다. 나는 이제 나로 살고 싶다고 도와 달라고 눈물을 뿌린다. 이런 것이 바로 베갯머리 송사라고 하는 것이다. 은미의 남편은 한 것 달아오른 마음이고 은미는 계획된 과정이다. 은미가 딱 한가지 말하지 않은 부분은 애인이 있다는 것뿐 이었다. 그 남자는 이제 은미의 애인이 되었다. 은미는 형식적인 가족 만남에서부터 회사와 관련된 모든 일에도 손을 놓았다. 하루 종일 은미의 집 지하에 꾸민 화실에서 살았다. 화실을 꾸민 후 제일 먼저 한 것은 늘 열어보지도 않던 까만 여행 가방이었는데 그 가방의 지퍼를 끝까지 열어 안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쏟았다. 작은 수첩들이 수 십 권 쏟아졌다. 한 장 한 장의 종이에는 온갖 것들을 뎃생한 그림이 있었다. 아무도 몰랐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아무도 몰랐다. 그 수첩들을 꽂을 수 있을 만한 넓이와 길이를 자로 잰 후 전화를 한다. “가로 25센티미터 세로 15센티미터 깊이는 15센티미터의 상자를 10개만 만들어 주세요.” 삼일 후 상자가 도착 한 후 은미는 상자로 책꽂이를 만들었다. 그곳에 수첩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꼽는다. “여보, 나 이제 당신과 그림만 생각하며 살 거야.”라고 구경 하려고 내려온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아내의 꿈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남자가 되었다는 만족감으로 가족들의 비난을 달게 받았다. 은미는 남편과 남편의 두 아이 그리고 그림만을 위해서 살았다. 그리고 가끔씩 숨겨진 애인이 된 남자를 찾았다.

“양심의 가책 없었어?” 내가 은미에게 묻자 은미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누구를 위한 양심의 가책?, 남편?, 애인?, 나?”
난 내 질문의 초점이 참으로 낡았다는 것을 알았다. 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대상을 남편에게만 두고 은미에게 물었고 은미는 그 대상을 애인 그리고 자신에게 까지 묻고 있었다.  
“모두에게 말이야”라고 말했지만 은미는 피식 웃으면서 “고루한 년, 그래서야 어디 현대적 드라마 대본이 나오겠니? 너 곧 아침 드라마나 해야겠다.

내 양심의 가책은 사실 나만을 위해 작동시키기로 했지. 아무렇지도 않았어. 괜찮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사소한 감정의 문제로 난 그 사람과 헤어졌어. 내가 남편 딸과 사과 농장에 놀러 갔어. 그 사람이 사과 농장 관리인으로 숨어 있었거든. 그런데 이 쪼다 같은 새끼가 남편 딸이랑 동요를 부르면서 엄청 잘 놀아 주는 거야.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가 늘 풍요로운 삶에 목이 말라서 다 패대기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것에 대한 분노도 없나? 분노가 아니라 연민이나 씁쓸함 뭐 그런 거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다음 호에 계속)


유희주 작가
유희주 작가는 1963년에 태어나 2000년『시인정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07년 미주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을 수상했다. 
2015년 『인간과 문학』에 소설 『박하사탕』을 발표하며 소설 작품 활동도 시작했다. 시집으로 『떨어져나간 것들이 나를 살핀다』 『엄마의 연애』, 산문집으로 『기억이 풍기는 봄밤 (푸른사상)』이 있다. 
유희주 작가는 매사추세츠 한인 도서관 관장, 민간 한국 문화원장, 레몬스터 한국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코리안릿닷컴(koreanlit.com)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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凉 (량) 20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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