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51
화랑세기花郞世紀, 10세 풍월주風月主 미생랑美生郞(4)
보스톤코리아  2018-11-12, 11:02:13 
12살에 화랑에 입문한 미생은 말에도 오르지 못하는 유약한 어린 아이였다. 그래서 아버지 미진부와 문노가 반대를 했지만 미실은 자신의 권력으로 당시 풍월주 사다함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사다함은 어쩔 수 없이 얼굴이 아름답고 춤을 잘 추니 여러 낭도들을 즐겁게 할 수 있을 거라며 문노를 설득했다. 미실은 그때 진흥왕의 총애를 받으며 새주의 위位로 이모인 사도왕후에 버금가는 권세를 부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미실의 남편인 세종이 6세 풍월주에 오르면서 미생은 전방화랑으로 승진되었다. 그래서 미생은 아마도 자신이 사다함보다도 더 어린 나이에 풍월주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 섞인 허풍을 떠벌였다. 사다함은 어린 나이에도 뭇낭도들이 존경하는 고상한 인품을 지니고 있었고 무예 또한 탁월한 경지에 입신해 있었다. 그래서 약관이 채 안된16세의 나이임에도 수 천의 낭도들을 이끌 수 있었다. 그 좋은 예가 562년 이사부가 대장군이 되어 가야를 정벌할때, 진흥왕은 어리다고 만류하였지만 출전을 간청하여 귀당비장으로 참전하여 전열의 선봉장으로 가야의 항복을 받는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리고 왕으로 부터 받은 전답은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가야인 노비들은 다 풀어주었다.

반면에 미생은 자신의 능력으로 화랑에 입문하고 승진한 것이 아니라 누이 미실의 권력으로 시작하여 미실의 뇌물로 승진되었다. 그리고 검을 좋아하지 않던 그는 무예수련에는 관심이 없었고, 춤과 노래로 여색에 빠져서 지냈다. 13세에 전방화랑이 되었을때는, 16세에 풍월주가 된 사다함보다도 더 어린 나이에 풍월주가 될 것이란 기대도 하였지만, 그는 36세가 되어서야, 그것도 누이 미실의 권세에 힘입어 겨우 그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화랑세기 필사본을 인용해 보면,

[사다함이 용서를 빌며 말하기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우입니다. 얼굴이 아름답고 춤을 잘 추어 또한 여러 사람을 위로할 수 있으니, 이에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했다. 문노가 다시 따지지 않았다. 공은 검도를 좋아하지 않았다. 속으로 문노를 꺼려하여 경의를 표하지 않았기에, 사다함이 곤란하게 되었다. 

세종공이 풍월주의 대를 잇자 공을 전방화랑으로 삼아, 그 위位를 전하여 미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 했다. 문노가 간하여 이룰 수 없었다. 미실은 이에 낭도들에게 뇌물을 주어 공의 지위를 일으키니, 이해에 밝은 자들이 많이 따르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미실이 설화랑을 총애하게 되자, 미생공에게 그를 섬기도록 했다. 그 까닭에 미생공은 부제副第가 되지 못했다.246) 

이에 이르러 곧 10세 풍월주가 되었는데, 공의 나이는 이미 36살이었다. 공이 웃으며 말했다. “사다함공이 열여섯 살에 풍월주가 되자 천하가 명예롭게 여겼는데, 내가 열세 살에 전방화랑이 되자, 천하가 더욱 명예롭게 여겨 나이 열여섯 이전에 반드시 풍월주가 된다고 했습니다. 어찌 36살에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미실이 말하기를 “내가 총애를 받을 때 네가 이와 같은데, 하물며 나에 대한 총애가 식으면 누가 하종夏宗을 위한 계책을 마련할 것인가?” 했다. 이에 하종을 부제로 삼았다.]

하종은 미실과 세종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하종은 사다함과 모습이 비슷했다. 사다함은 미실의 옛 연인이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미실이 세종에게로 입궁하기 전에, 즉 사다함과 정을 통해 임신을 했었다고 수군거렸다. 미실은 세종의 부인이 되어 입궁하였고, 사다함은 사우死友 무관랑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식음을 전폐하고 애통해 하다가 곧 죽었다. 이에 미실이 천주사天柱寺에서 사다함의 명복을 빌었다. 6세 풍월주 세종공조에 실린 내용이다. <그날 밤 과연 미실이 꿈을 꾸었는데, 사다함공이 품에 들어오며 말하기를 “나와 네가 부부가 되길 원했으니, 너의 배를 빌어 태어날 것이다” 했다. 이에 미실이 세종에게 아뢰었다. 세종 또한 이상하게 여겼다. 바로 임신이 되어 하종공을 낳았다. 하종은 모습이 사다함과 심히 비슷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는 혹 사다함과 정을 통할 때에 이미 임신을 하고서 입궁하여 낳은 아들이라 하나, 그렇지 않다.> 한편, 삼국유사(권1, 기이)의 천사옥대天賜玉帶조에는 내제석궁內帝釋宮을 천주사天柱寺라고도 하며 진평왕이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다함은 564년경에 죽었고, 진평왕은 579년에 즉위하여 632년까지 재위하였다. 신라인이 쓴 역사서에는 천주사가 6세기 중반에 이미 존재했었고(486년, 소지왕 10년, 사금갑사건, 즉 승려가 거문고갑 속에서 왕비와 간통하다가 소지왕이 쏜 화살에 맞아 죽은 사건이 일어난 절이 천주사이다), 700년이 더 지나 고려인이 쓴 신라의 역사서에는 600년 경으로 기록되어 있다.    

246) 6세 풍월주는 세종이었고 부제는 설원랑이었다. 7세 풍월주는 설원랑(설화랑) 이었고 부제는 미생랑이었다. 그런데 미생은 8세 풍월주가 되지 못했고, 그 위位는 문노에게로 넘어갔다. 당시는 진지왕 폐위사건이 있었고, 폐위의 주동 인물들인 사도왕후와 미실, 세종과 노리부는 문노와 그 일문의 힘이 필요했다. 그 거사를 성공한 후 풍월주의 위는 문노에게로 갔다. 8세 풍월주 문노의 부제는 비보랑이었다. 그리고 비보랑은 9세 풍월주가 되었고, 당시에도 부제로 있던 미생은 누이 미실의 세력에 힘입어 가까스로 서른 여섯살이 되어서야 10세 풍월주가 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www.gch.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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