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화로
보스톤코리아  2019-01-07, 11:02:32 
보스톤에 이사오고, 놀란게 있다. 집집마다 천정이 높았다. 요사이 지어진 집들이다. 한편 오래전에 지은 집은 비교적 천정이 낮다. 거의 허리를 굽히고 들어서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집이건 헌집이건 집집마다 한쪽벽엔 당연한듯 fire place가 있다. 요샌 그저 폼이고, 아무 쓸모가 없은 듯 싶다. 우리집도 천정이 낮고, 벽난로가 붙어 있다.

노변정담爐邊情談이라 했다. Fireside chat라한다. 벽난로 앞에 앉아 정치담화를 발표하는 모습이다. 루스벨트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어려운 국내외 문제를 이야기 하듯 풀어 낸거다. 미국민을 설득하고자 하는 취지였을터. 벽난로가 없었다면 운치가 훨씬 떨어졌을 거다. 

불은 난방용이다. 한편 취사炊事용으로도 겸한다. 그럴테네니 불이 매우 귀하게 취급되었다. 이런 연유인가 보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나, 심지어 인도에서도 화로를 집안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편 불관리는 엄격했다고 들었다. 

한국인에게는 질화로가 있었다. 양주동 선생의 글 중 한 대목이다. 

‘안방의 질화로는 비록 방 한구석에 있으나, 그 위에 놓인 찌개 그릇은 혹은 '에미네'가 '남정'을 기다리는 사랑, 혹은 '오마니'가 '서당아이'를 고대하는 정성과 함께 언제나 따뜻했다. 토장에 무우를 썰어서 버무린 찌개나마 거기에는 정이 있고, 말없는 이야기가 있고, 글로 표현하지 못할, 그윽하고 아름답고 정다운 세계가 있었다.’ (양주동, 질화로 중에서)

‘사랑은 겨울에 할 것이다. 겨울에도 눈오는 밤에. 눈 오는 밤이거든 모름지기 사랑하는 이와 노변爐邊에 속삭이는 행복된 시간을 가지라.’ (양주동, 사랑은 눈 오는 밤에)

내게도 어린 시절 화로火爐 기억이 있다. 화롯가 모습이든지 화로정담火爐情談일 수도 있겠다. 깊은 겨울밤이면 십상이다. 눈이 소복히 쌓여가는 밤이라면 오히려 포근하다. 새빨갛게 불좋은 화로속에서 고구마라도 구워질라 치면 더 정겨운 거다. 참, 군고구마엔 동치미가 있어야 한다. 덕분에 방안은 먼지가 그득 날렸을 거다. 아침이면 콧구멍이 새까매졌을 텐데. 

몇년후 우리집에도 연탄 아궁이가 들어 앉았다. 하지만, 연탄불이 꺼질수도 있었다. 갈아야 하는 시간을 놓쳤기 때문이다. 이건 저녁을 준비해야 하는 주부에게는 난감한 일이었다. 궁하면 통한다 했던가? 옆집에서 잘 타고 있는 연탄을 빌려와야 한다. 아니면 숯을 넣고 불씨를 되살리는것도 다른 방법이다. 하지만 빌려오는게 더 효과적이다. 연탄 가는 건 고역이었다. 내 아버지의 일이었다. 

한국 대통령은 요새 고민에 빠진 모양이다. 좀처럼 풀리지 않는 남북문제일 수도 있다. 활활 타오르는 듯 하더니 슬금슬금 꺼져가는 듯 싶어 하는 말이다.  이러다가 혹시 재만 남는 건 아닐까? 불씨만은 꺼뜨리지 않고 남겨야 한다. 꺼진 불을 다시 살리려면 성가시다. 불을 빌릴곳도 마땅치 않다.

새해엔 부디 불씨 꺼뜨리지 않기를 빈다. 아니 경제문제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를 빈다. 복많이 받으시라. 

황금돼지 해인데, 근하신년. 

그 앞에는 불 피운 화로가  있더라 (에레미야 36:21)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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