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영어잡설 46 ] 빨치산은 빨간색?
보스톤코리아  2019-01-21, 11:11:40 
‘보랏빛 향기’란 말도 있지만, 보라색은 고귀한 색이다. 보라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정신적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정신과의사도 있기는 하지만, 보라색은 로마제국 시절 원로원 중에서도 고위급 원로원이나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지중해 연안의 조개에서 채취한 수입산 색료를 썼기 때문에 값도 무척이나 비쌌다고 한다. 온 시야를 보랏빛으로 물들이는 라벤더 농장을 보라. 프로방스나 아비뇽의 라벤더 농장은 향기를 전해주기 전에 벌써 우리의 눈을 호강시킨다. violet이 고급진 색깔인 만큼 유럽 사람들은 Violetta처럼 이름으로도 자주 사용한다.

빨간색은 어떤가? 빨간색도 많은 사람들이 선호한다. 중국인들의 빨강 사랑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그들은 국기에도, 카펫에도, 결혼 예복에도 빨간색을 쓴다. 오죽하면 국기의 이름이 오성홍기(五星紅旗)일까.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그리고 남북관계가 냉탕과 온탕을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하면서 냉각기로 이동한 기간에 한국에서는 붉은색이 정치적 함의를 띌 수밖에 없었다. 붉은색은 곧 공산주의자이고 종북이고 친북으로 간주되었다. 정적을 공격하는 데는 약방의 감초처럼 ‘붉은 물이 들었다’고 딱지를 붙였다. 최근에 레드벨벳이 북한으로 역사적인 예술공연단의 일원으로 간다고 하자 기자가 ‘레드’인데 괜찮겠느냐고 질문을 했다고 한다. 우리 마음속에 아직도 ‘레드콤플렉스’가 똬리를 틀고 있음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심지어는 ‘빨치산’이란 게릴라들도 ‘빨간 물’이 든 사람과 등치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필자는 왜 공산주의와 붉은색이 연관관계가 있는가 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다만, 역시, 언어학자로서 언어학적인 측면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빨치산’이 ‘빨갛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고 견강부회이다.

‘빨치산’은 영어 partisan의 러시아어식 발음이다. 러시아어에서 구개음화가 되어 북한을 통해 남한에까지 전파된 것이다. partisan은 한마디로 party의 구성원 즉 당원이다. 공산당원뿐만이 아니라 모든 당원이 partisan인 것이다. 민주당원도 partisan, 공화당원도 partisan, 공산당원도 partisan이다. 양당이 무언가를 함께 할 때 bipartisan이라 한다. 

‘빨치산’ 하면 지리산의 무장 공비가 생각난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잘 그려진 것처럼, 지리산에 남아있던 저항군 일부는 북조선 노동당의 당원이었기 때문에 partisan 즉 빨치산이라고 불렀던 셈이다. 그러나 partisan이란 말은 이미 15세기 프랑스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한 정당이나 집단의 구성원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part-는 부분이다. 무언가로부터 떨어져나가는 것은 depart이고, 여러 방으로 나누어진 집은 apartment이며, 여러 개로 나누어진 작은 방은 compartment이다. 같은 사상과 정책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집단은 political party이고, 일부의 사람들이 함께 저녁을 먹으면 dinner party이다. 어떤 행사에 참여하여 한 부분이나 역할을 차지하는 것은 take part in 또는 participate in이다. 

‘나누다’는 라틴어로 partir이고 그리스어로는 -tomos이다. 그리스철학에서 한 개인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것으로 보는데 이를 atom이라 한다. 물리학에서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물질이란 의미에서 부정어 a-와 tom(나누다)를 합해서 atom이라 한다. atom을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 부정접두사 in-과 나누다(divide)를 결합한 individual이다. individual을 ‘개인(個人)’ 즉 ‘낱낱의 사람’이라 한 것은 딱 맞는 번역은 아니다. 말이 나온 김에 anatomy는 ana-(위로)와 -tomos(자르다)가 결합한 것이니까 ‘해부’를 의미한다. 이걸 또 라틴어로 옮기면 dissection 쯤이 되겠다.    

party와 같은 말이 portion이다. 비율이란 뜻의 proportion은 portion(부분)에 따라 바뀌는 것 즉 ‘비율’이다. 배가 떠나는(part-) 곳이 항구니까 항구는 port라 한다. 여기서 파생된 수많은 단어들 transport, import, export, portable 등은 모두 무언가를 떼어내 이동시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report는 다시 나른다는 의미에서 ‘보도하다, 보고하다’란 의미가 되었다.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orugo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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