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93
화랑세기花郞世紀, 12세 풍월주風月主 보리공菩利公(11)
보스톤코리아  2019-11-04, 10:19:14 
보리는 신해년(591년)에 화랑의 수장인 풍월주가 되었다. 그리고 3년간 위位에 있다가 당시 부제로 있던 김용춘에게 물려주었다. 그런데 13세 풍월주 용춘공조에는 김용춘이 병진년에 풍월주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龍春 戊戌生 丙辰郎主 용춘 무술생 병진낭주). 병진년은 596년이다. 12세 보리공조의 기록과 13세 용춘공조의 기록을 비교해보면 약 2,3년간 풍월주의 자리가 공석이었을 가능성이 있다(화랑세기의 기록이 정확하다면…). 

보리가 573년에 태어났으니 그는 이미 20대 초반에 풍월주의 임무를 마치고 상선上仙의 위位로 있었다. 하지만 그는 형인 원광법사를 돕기 위해 불가에 입문하였다. 부인인 만룡공주와 첩 후단도 모두 남편을 따라 수계를 받았다. 화랑세기(필사본)의 출현으로 보리의 화랑도 경력은 비교적 자세하게 알 수 있는데, 그의 풍월주 퇴임 이후의 삶은 거의 알 수 없다. 다만 만년의 일은 고승전高僧傳에 나온다고 화랑세기에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아쉽게도 고승전은 현존하지 않는다. 고승전 역시 김대문이 저술하였다. 김대문은 신라 최대의 역사가로 평가 받고 있지만 그에 관한 구체적인 사료는 매우 빈약하다. 그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46권(열전 6)의 설총전薛聰傳의 뒷부분에 조금 딸려 있는 것이 전부다. 인용해 보면, <김대문은 본디 신라 귀족의 자제로, 성덕왕 3년에 한산주의 도독이 되었고, 전기傳記 약간 권을 지었으며, 그의 고승전高僧傳 화랑세기花郞世紀 악본樂本 한산기漢山記는 아직 남아 있다.> 이것이 직접적인 언급의 전부다. 성덕왕3년은 704년이다. 그리고 1145년(고려 인종23년)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완성했는데, 당시까지도 김대문의 저서가 많이 남아 있었음이 증명되고 있다. 위의 기록 외에도 삼국사기(신라본기 법흥왕15년조)에 나오는 이차돈의 순교에 관한 사건을 김대문의 ‘계림잡전鷄林雜傳’에 의거 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김대문이 쓴 책이 5권 이상이며 12세기 중반까지도 존재하고 있었다. 이에 더하여 삼국사기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김대문이 말하기를’ 등으로 뜻 풀이를 한 대목도 등장한다(왕의 칭호였던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등, 이 대목은 삼국유사에서도 그대로 재인용되었다). 그리고 가장 유명한 김대문의 미사여구, ‘현좌충신 양장용졸’181)  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37년조에 인용되었고, 김부식은 이 미사여구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열전의 김흠운전에서도 한 번 더 인용하고 있다. 

김대문의 가문이 귀족이란 것은 화랑세기를 통해서 확인되었다. 그의 부친 김오기는 28세 풍월주를 역임하였고, 오기의 부인은 운명으로 자의왕후(문무왕비)의 동생이다. 할아버지 김예원은 20세 풍월주를 역임했으며, 진평왕의 딸인 우야공주를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증조부 보리공은 12세 풍월주를 역임하였고, 만룡낭주(어머니 만호태후는 진평왕의 생모이기도 하다)가 부인이었다. 고조부 이화랑은 4세 풍월주을 역임하였고, 진흥왕의 이부동복 자매인 숙명공주가 아내였다. 그리고 6대조 위화랑은 초대 풍월주였다. 부인은 법흥왕의 후궁이었던 준실과 오도였다. 당시에는 ‘마복자’ 제도가 있었기에 왕의 후궁을 부인으로 맞이하는 것은 더 없는 광영이었다. 

한산주는 현재의 서울 일대이고 신라의 5소경제도가 확립되었을 때 가장 북쪽에 위치한 소경이었다. 도독은 급찬(9급)에서 이찬(2급)까지 해당되는 계급의 중앙관원을 파견하였다. 당시 김대문의 관등은 대아찬(5급) 이상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렇듯 화랑세기를 보면 왜 김오기가 화랑세보花郞世譜를 저술하였고, 완성하지 못하고 돌아간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김대문이 가문의 세보世譜를 마무리하였는지 수긍이 간다. 6대조 위화랑의 초대 풍월주를 비롯하여 김대문의 직계 선조는 모두 풍월주를 지냈다. 즉 화랑세기는 김오기가 작성한 세보(족보)에 김대문이 “낭정郎政의 큰 줄기大者와 그 여러 갈래의 옳고 그름” 을 더하여 세보를 뛰어넘어 세기世紀로 편찬한 것으로 보인다. 보리공의 만년晩年의 일은 ‘고승전’에 나온다는 기록이 화랑세기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공은 3년간 풍월주의 위位에 있다가, 부제인 용춘공에게 전하여 주었다. 위位는 비록 상선上仙이었으나 몸은 불문佛門에 바쳐 백씨伯氏를 도왔다. 만룡과 후단 모두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되어 공의 뜻을 받들었다. 만룡은 늘 같은 날 성불할 것을 기도했는데, 과연 그 말과 같이 되었다. 공의 만년의 일은 ‘고승전高僧傳’에 나온다. 
찬하여 말한다: 보리사문은 위화랑공의 손이고 덕은 만룡과 화합하고 은혜는 바다나 산과 같고 공功은 불문에 높고 만세에 오직 우러러본다.] 

180) 화랑세기에는 ‘예원공은 문무왕13년(673년) 집사부執事部의 대등大等으로 있으며 관아에서 죽었다. 나이가 67살이었다. 제帝가 슬퍼하여 상대등의 예로 장사를 지내 주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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