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횡설수설 8 ] 까마귀네 빵집
보스톤코리아  2020-03-09, 10:54:59 
“빵을 하나만 사려는 손님은 여기, 두 개 사려는 손님은 여기, 세 개 사려는 손님은 여기에 줄을 서주세요. 세 개 이상은 살 수 없습니다.” 아들 까마귀는 구름처럼 몰려든 까마귀들을 안내하느라 정신이 없다. 까마귀들이 푸드덕 거리며 각자의 나뭇가지로 날아간다. “그리고 구경만 할 손님은 이쪽에 서 주세요.” 

까마귀네 빵집이 큰 성공을 거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연이은 사업 실패로 까마귀 가족은 빵을 살 수 없어서 매일 매일 빵을 만들어 먹었다. 우연히 빵을 맛본 아들 친구들이 점심을 바꿔먹자고 졸랐고,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빠 까마귀는 가족회의를 열어 빵집을 내기로 한 것이다. 입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고 빵집은 삽시간에 문전성시를 이루게 된다.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텔레비전에서는 까마귀네 빵집에 관한 특별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왔으며, 학자들은 까마귀네 빵의 영양학적 특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딸 까마귀는 몰려드는 예능프로 섭외로 정신이 없었고, 엄마 까마귀도 인기를 얻어 까악, 까악 구성진 음성으로 아침방송의 고정 패널이 되었다. 대학도서관에는 까마귀네 빵집 빵에 관한 연구서를 비치한 특별 열람실이 마련되었다. 가코 사토시의 <까마귀네 빵집>을 살짝 왜곡해본 것이다. 

우리는 왜 이런 까마귀에게 매료되는 걸까? 성공했기 때문에? 아니다. 성공 이전에 수많은 실패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난한 시절 먹던 부스러기 빵, 말라비틀어진 빵, 눈물 젖은 빵, 겨우내 모아둔 빵 부스러기들을 치즈에 퐁당 담가 만든 퐁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온갖 종류의 사연 있는 빵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구매자의 감성 저격과 판매자의 스토리텔링이 결합될 때 히트상품이 탄생한다. 아빠 까마귀가 수천 종이 넘는 다양한 빵을 만들어내는 제품 다양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응축된 과거의 실패들에서 얻어진 결실인 것이다.  

실패를 겪지 않고 성공한 사업가를 보면 어떤 느낌일까? 잘 났어 정말, 이런 기분 아닐까. 빌 게이츠보다 스티브 잡스에게 내가 더 끌리는 이유는 자명하다.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고 다시 돌아와 1달러짜리 연봉 사장이 되어 재기에 성공한 스티브 잡스의 인생 파노라마에 더 끌리기 때문이다.  

사업만이 아니다. 모든 성공에는 실패라는 전철이 있게 마련이다. 시대를 뛰어넘는 불멸의 화가 고흐는 대학 입학에도 실패하고, 목사 시험에도 떨어지고, 되는 일 하나 없어 동생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비참한 처지였다. 화상이었던 동생에게 떠넘긴 그림은 팔리지 않고, 룸메이트 고갱과는 불화에  시달리고, 우울증을 앓던 그는 살아생전 성공이란 단어와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었다. 반면 피카소는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90살이 되도록 살기도 오래 살면서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그의 천재성은 인정하지만 그에게서는 어떠한 인간적 매력이나 공감을 느끼기 쉽지 않다. 기억에 남는 말을 몇 가지 남기긴 했다. 이를테면, 자신은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섬광처럼 떠오르는 모습을 화폭에 옮겼을 뿐”이라나. 역시 천재의 오만함이 느껴진다. 이런 말 들으면 마치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라는 과시욕을 보는 듯해 씁쓸하다.   

까마귀 아빠들은 지금이나 과거나 쉽게 만날 수 있다. 발명왕 에디슨도 19세기 판 까마귀 아빠이다. 전구를 만드는 데 끝없이 실패하자 친구가 이제 그만하라고 핀잔을 주었다. “이보게, 난 전구를 만들 때 해서는 안 될 천 가지 방법을 알게 되었다네.” 천 번의 실패 끝에 그는 마침내 전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해서는 안 될 방법들을 안다는 것은 큰 진전이다. 사업 경영은 물론 모든 일에서 리스크 관리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가 초래할 위험 요소를 미리 알기는 쉽지 않다. 수많은 벤처 기업들이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사라지는 걸 보라.   

나는 오늘도 실패하기 위해 시도한다. 아하, 이런 색의 조합은 탁한 느낌을 주는군, 이런 색의 조합은 우울한 푸른색을 만들어내는군, 디테일을 무시하지 않으면 절대로 조지아 오키프처럼 도회적이고 시원한 느낌을 줄 수 없군. 고흐처럼 밝고 강렬한 색이 나오지 않는 수많은 방법들을 나는 경험을 통해서 안다. 그렇다고 내가 아마추어 습작기를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orugo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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