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의 명상 (2)
보스톤코리아  2020-10-12, 10:48:06 
미국의 여류시인 에밀리 딬킨슨은 “내가 있음으로하여 나와 내 주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내 인생은 가치 있는 것이었다” 라고 말했다.  미국의 교육자 호레스 맨 도 “인류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인생을 마금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  하였다. 그러면 80을 바라보는 나의 인생은 어떻게  결산할 수 있을가 점검해보려고 한다. 

내 인생의 처음 20년은 세계 제 2차대전과 한국 동란, 그리고  두 차례의 혁명을 겪으며 한국에서 초등, 중고등, 그리고 대학을 마쳤다. 이후, 미국에 와서 석, 박사를 마치고 수년의 연수끝에  1979년 보스톤 의대에 미생물학 조교수로 부임하게 되었다. 당시 보스톤 의대에 재직중인 교수진과 직원 2,000명중에 동양인 교수는 오직 나 하나 뿐이었다. 한국에서는 물론 미국에서는 더 더구나 꿈도 꾸지 못할 귀한 기회였다. 이렇게  어렵게 얻은 기회에도 불구하고 재직 16년을 통하여 나는 별로 신통한 연구결과를 출산하지  못했다내가 별 성과를 내지 못한데 대하여는 여러가지의 변명이 있었다.  우선 내가 하고 있었던 단백질 화학이 어려운 학문인 것이 주된 연유였고  그 외에도 내 개인의 감정적인 상처로 인하여 나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것 같다. 내가 교수로 임명된지 얼마 않돼서 나의 동생이 말기 유방암에 걸렸을때 “ 우리 언니가 암 연구를 하고 있으니까 나를 구해 줄거야” 하던 그의 소원을 들으며 내가, 아니 우리 모든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를 절감하게 했다.  그러나 암 치료에 혁신적인 공헌을 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  내가  캘리호니아에서 연수를 마칠때  내 책상을 물려준 나의 동료 제임스 피. 앨리슨 (James P. Allison)박사는 암을 치료하는 항체를 개발하여 2018년에 노벨 의학상을 수여했다. 물론 이런 치료법이 없었을 때 암에 걸린 나의 동생은  아직  젊은  나이 (36세)에 사망했다.  그외에도 내가 아직  대학원에 있을때  나의 첫 사랑을 잃어버린 고독감까지 더하여 나는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았다.  더구나 내가 속해있던  미생물 학과는 교수진이 모두 유태인이었음으로 나는  유색인종,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차별외에도 이방인의 차별까지 감수해야했다. 피눈물나는 아픔이었다. 결과는 내가 드디어 학계를 떠나 기업에 종사하게 된것이었다. 내가 일하던 회사는 진단시약을 개발하는 회사이었는데 입사후, 나는 여러개의 암 진단 시약을 개발한후 심근경색 진단시약을 개발할 기회가 생긴것이었다. 내 일생을 암연구에 바치겠다던 내가 암연구에서는 아무런 특유한 공헌을 하지 못했는데 심장병에 대하여 공헌할수 있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역설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이 과제는 단백질 화학을 전공하고  면역학을 연수받은  나의 배경에  적격인 과제였다. 심근경색으로 인하여 괴사된 조직을 검출하는 이 시약은 미국인들에게는 의 제1의  사망 원인인 심장병을 진단하는데 획기적인 혁신을 가져왔다고 한다. 시판된지 22년이 된 이 진단시약 (c-Troponin-I test)은 지금은 전 세계에 보급되어 미국에서만도 약 $1 billion (1조원) 이 넘는 이득을 내고 있다고하며, 이로 인하여 심장병으로 인하여 사망하는 비율이  지난 50년동안에  73%나 감소했다고 한다. 물론, 미국인의 식생활과 생활방식의 변화, 그리고 그 동안에 발달된 의학의 기술이 그 바침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것을 확인 할수 있는 시약이 있었다는 것은 상당한 유익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불란서의 생물학자  루이 파스틀 이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 고 하였던 말이 확증이 된 것이었다. 이러한 나와 내 팀들의 공헌에도 불구하고 이 시약을 쓰고 있는 회사는 그 높은 수익을 조금이라도 나와 내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기는 커녕, 내 공적에 대하여 고맙다는 인사조차 없다. 이런것을 보면 개인의 능력을 착취하여 막대한 이익을 보는, 자본주의  미국  대 기업의  망덕을  잘 엿 볼수 있다. 시베리아에 유배되었다가 미국으로 망명한 쏘련의 작가 알랙산더 쏠제니첸 이  미국의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 실망하여 다시 쏘련으로 돌아갔던 일을 이해하게 된다.

다행이라고 할가, 나는 과거의 교직 생활중, 나의 남편이 된  하바드 치과 대학의 석좌교수 Dr. Gerald Shklar 박사를 만나게 되었다. 불협화음적인 내 부모님들의 불행한 결혼을 보고 자란 나는, 내 이상에 맞는 남자가 없으면  혼자서 암 연구를 하다 죽겠다고 독신 생활을  고집한지 30년만에 만난 사람이었다. 그는  오랜동안 외롭게 살아왔던 나를 잘 이해하고 모든 어려움에서 나의 편이 되어주었으며  때로는 내가 해낸 일을 부러워하기까지 하였으며 그는 내가 당신의 꿈을 이루어 주었다고 말하는 겸손한 사람이었다.었다. 그러나 그는 구강병리학의 개척자이고  또  이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었으며 50년의 학계 생활을 통하여 수천명의 치과의사와 학자를 길러낸 교육자였다. 그는 또 온유한 성격의 소유자로써 그의 50년 동안 교육생활을 통하여 한번도 음성을 높힌일이 없었다고 한다. 유달리 다양한 취미를 가졌던 나의 남편은 그의 일생을 통하여 350편의 논문과  5권의 치의학 교과서, 그리고 2권의 치의학 역사책을 출판했다.  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에는 오케스트라와  훌륱합연도 하였고 심포니까지 작곡한 음악가이기도 하였다. 내가 상상했던 그 이상의 훌륭한 인물이었고  과연 그는 하늘이 나에게 보낸 특별한 선물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날때 흘린 한 줄기의 눈물은 이제 내 속에 슬픔의 강물이 되어 흐르고 그가  주고간 금강석 반지는 오늘도 영롱한 빛으로 상한 나의 가슴을 환히 밝혀주고 있다. 그는 비록 멀리 떠나갔으나,  아직도  나를 사랑하는 나의 모교, 그리고 나의 조국이 있다는 것이  이제와서 다시 홀로 가게된 외로운 나의 여생에  많은 위로를 안겨준다. 내 남편이 남겨준  풍성한 유물로 인하여 내가 지난 5년동안 나의 모교에 가서 의학역사를 강의 할 계기도 된 것이다.  남편의 장서중 희귀도서 약 3,000 권은 이미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보관되었고 나와 내 남편의 금 메달도 모교의 역사관에 전시되어있다.  나는 대학 졸업시에 서울대 총장상을 받았고 내 남편은 2015년에 남편이 작고하기  직 전에  미국 치과학회로부터   전생에 이룬  공로상( Lifetime Achievement award) 을 수여받았다. 남편이 작고하신지 올해  5년이 지났어도  아직도 나는 그의 유산을 정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1,2년은 더 걸려야 대강 끝낼수 있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나는 내가 묻힐 산소와  나의 납골함, 그리고 유언장까지 마련했으니 이제는 죽는 일만 남아 있는 셈이다.  

나는 또 우연한 기회에 내가 다니는 미국 교회 ( Park Street Church)에서  우리 교회의 200년 역사를 기념하는 Bicentennial quilt를 제작할 기회가 있었다. 남편이 은퇴한후에는  나도 일찍이 은퇴하여 우리 교회에서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를 가르치고 있을때였다.  우리 교회는 미국에서도 유명한 역사적인 교회로써 부활절에 는 약 3,000명의 신도가 출석하고 등록된 교인만도 1500명이나 되는 꽤 큰 교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quilt를 제작하는데 솔선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이 quilt의 도안이 2년이 넘도록 목사님 방에  방치되어 있었다.  내가 이일을 할수 있다고 생각하여  나의 학생중 일본인 11명, 중국인 교수한명, 그리고 또 한명의 한국인 학생들과 더불어 10주간에 걸쳐 제작한  Park Street Church Bicentennial Quilt는 지금  우리 교회 Welcome Center 에 전시되어 우리 교회를 방문하는 수많은  방문객들에게  이  교회의 자랑스러운 200년 역사를 과시하고 있다. 앞으로 적어도 90년은 더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지난 70여년의 인생을 돌아보면 나의 인생은 정말 파란만장의 삶이었다. 그러나  어떠한 기쁨도 슬픔도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이런것을 보고 영국의 시인  빠이론경이  인생은 기쁨과  슬픔 사이를 왕복하는 시계추와 같다고 했던 모양이다. 내돈 $50을 들고 미국 생활을 시작했던 가난한 23세의 한국 소녀가 이제 80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으니 내 인생의 모든 기쁨과 슬픔을 실은 인생열차도 오잖아 종착역에 도착할 것이다.
부치는 말 : 나는 2003년에 내 일생을 그린 영어 자서전 “An American Odyssey”를 출판했고 2004년에는 한국어로 된 자서전 “무지개를 따라서”를  출판하였다. 2019년 6월에는 ‘자랑스러운 약대인’  상, 그리고 같은해 9월에는 ‘서울대 발전 공로상’을 수상한바 있다. 


오세경  
전직 보스톤 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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