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22세 풍월주風月主 양도공良圖公(1)
보스톤코리아  2021-09-06, 11:49:56 
김양도의 부모는 모종공毛宗公과 양명공주良明公主이다. 모종의 부모는 11세 풍월주 하종과 미모낭주이며 하종의 부모는 6세 풍월주 세종과 미실이다. 세종의 부모는 태종(이사부)과 지소只召태후(법흥왕의 딸, 진흥왕의 어머니)이다. 하종과 미모는 딸 유모와 영모, 아들 모종을 낳았다. 차녀 영모는 김유신의 첫째 부인으로 딸 진광, 신광, 작광, 영광 넷과 아들 삼광을 낳았다. 김유신은 나이 60에 김춘추와 문명왕후(김유신의 동생, 문희)의 딸 지소智炤를 아내로 맞았다. 

양도의 어머니 양명공주의 부모는 제26대 진평왕과 보명궁주이다. 진평왕은 진흥왕의 장손이다. 진평왕의 아버지 동륜태자는 진흥왕의 후궁 보명궁주의 치맛폭을 풀려고 월담했다가 개에게 물려서 일찍 죽으면서 왕위에 오르지도 못했다. 보명궁주의 부모는 구진과 지소只召태후인데, 구진은 지소의 침신이었다. 보명은 미실, 옥리, 월화, 금진 등과 함께 진흥왕의 후궁이었는데, 진흥왕 사망 후 진지왕을 이어 즉위한 진평왕의 (미실과 함께) 좌우후가 되어 어린 진평왕을 색도色道했다. 그 와중에 양명공주가 태어났다. 양명은 일찍이 16세 풍월주 보종공(부모는 7세 풍월주 설원랑과 미실)과 결혼하여 딸 보라와 보량을 낳았다. (보라는 김춘추의 첫째 부인으로 딸 고타소를 낳고 일찍 죽었다. 고타소가 대야성 성주 김품석의 부인으로, 642년 백제 장군 윤충에 의해 성이 함락되자 가족이 함께 자살했다고 전해진다). 

그림을 잘 그렸기에(잘 그릴 것이라고 예견했기에, 아니면 그림을 그리다가 색사를 하여 태어난 아들이기에), 이름이 良圖라고 지어진 김양도의 태몽과 출생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609년 어느날, 설보종은 연하의 조카 모종를 불러 함께 시화詩畵를 즐기다 보니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한편 부인 양명공주는 초저녁에 깜빡 잠이 들었다가 꿈에 난새鸞의 상서로움을 얻고 길조吉兆라고 여겨 남편 보종과 조카 모종이 함께 있는 방으로 들어와 귀뜸을 하고 보종의 소매를 끌어 당겼다. 이에 보종은 “길조가 어찌 홀로 나에게만 있겠는가?” 하면서 그만 누워서 잠을 청했다. 당시 그들에게는 보라와 보량 두 딸이 있었다. 하지만 보종은 색사를 즐기지 않았고 무엇보다 부인 양명이 조카 모종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잠결에 뒤척이는 척하면서 먹물이 가득 담긴 연지硯池(벼루)을 일부러 차서 먹물을 쏟았다. 그 먹물은 모종의 옷을 적셨고, 옷을 갈아 입는 과정에서 모종과 양명은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양명은 이듬해 610년에 아들을 낳았다. 아들이 태어나자 보종은 “그림은 아우님(弟公)의 아들만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하며 良圖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가 22세 풍월주 김양도이다. 

김양도에 관한 기록은 화랑세기에도 많지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도 많이 나온다. 양도는 김선품이 21세 풍월주의 위에 있을 때 그의 부제로 화랑도를 통솔하였다. 나이는 한살 밖에 어리지 않았지만 풍월주 선품을 섬기는데는 충심을 다하여 순종하였다. 그는 12세 무렵 17세 풍월주(621 ~ 626년) 김염장에 의해 화랑도에 입문하였다. 그 후 김흠순이 19세 풍월주(629 ~ 632년)를 역임할 때는 부제인 예원공에게 속하여 화랑의 지도자가 되기 위한 무예수련과 심신도야를 하고 있었다. 20세 풍월주는  김예원이 역임하였고, 21세 풍월주는 김선품이 이어 받았다. 김양도는 선품공 아래서 부제를 지내다가 637년 드디어 22세 풍월주의 위에 올랐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27,8세에 풍월주에 오른 김양도는 전횡을 많이 한다고 낭도들로 부터 상선에 이르기까지 호평보다는 비난을 더 받기도 했지만, 그는 그간 이어져온 구습과 낭정의 폐단을 많이 개혁하였다. 문무를 완벽하게 겸비한 김양도는 김유신 휘하의 장군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쳐서 삼국을 통일하는데 크나큰 공을 세웠다. 아울러 그는 문장과 외교술이 뛰어났기에 생애 여섯 번이나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사실 그는 여섯 번째 사행에서는 돌아오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그는 나당전쟁의 해명을 위해 669년 김흠순과 함께 당나라에 파견되었다가 당 고종高宗에 의해 억류되어 하옥되었다. 이듬해 당은 김흠순은 풀어주어 귀국을 하였으나 김양도는 계속 억류되었고, 그곳에서 옥사하였다(670년). 화랑세기의 기록을 중심으로 그의 풍월주 활약상을 보면,
[22세 양도공은 보종공의 아들이다. 선품공보다 한 살이 적었다. 처음 염장공을 따라 화랑이 되었다. 나이 겨우 12살에 상하의 예를 알았다. 흠순공 때에 이르러 예원공에게 속하도록 명했다. 선품공이 풍월주가 되자, 예원공의 명으로 부제가 되어 선품공을 섬겼는데 힘을 다하여 받들고 순종하였다.풍월주가 되자 전횡이 많아 당시 사람 중에 칭찬을 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공의 성품은 사람 섬기기를 잘하고 일의 추이에 밝았다. 부처를 숭상하는 것을 좋아했고 공명功名을 중히 여겼다. 문장을 잘했고 격검에 능했다. 늘 강개하여 천하를 말하니, 마치 한 세대의 영웅과 같았다. 상선들에게 몸을 굽혀 존경을 표할 때는 어린아이가 어머니에게 재롱을 떠는 것 같아서 윗사람들의 기분을 다 맞추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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