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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한 컬럼 [1] 일본 다시보기
보스톤코리아  2009-01-09, 02:45:14   
일본(日本)의 행정구역은 일도(一道), 일도(一都), 이부(二府), 43 현으로 나뉘어져 있다. 홋카이도, 동경도에 오사카부, 교토부와 43현이 있다.

이번에 여행하는 규슈는 오키나와현까지 합쳐서 8개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경상도, 전라도에 충청도를 합친 면적에 인구는 1,500만명정도가 된다.
규슈의 후쿠오카는 일본의 도시로는 한국에서 제일 가까운 도시다.

한국 인천공항을 오전 10시에 출발한 KAL기는 정확하게 10시 55분에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하였다.

요새는 배편을 많이 이용하는데 부산항에서 JET포일로 후쿠오카까지 200Km, 3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값도 비행기보다 싸고, 규슈 기차 여행권(JR Pass)를 함께 구매하면 많은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KAL의 미주 노선은 적자운행인데, 일본 노선은 황금알을 낳는 황금노선이라고 한다. 거리도 짧은데다 항상 승객이 만원이고, 매년 한국과 일본관광객들이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란다. 비행시간이 1시간도 못되는데 아침 식사까지 제공해준다. 미국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파격적인 서비스이다. 비행기도 빈자리가 전혀 없다.

후쿠오카는 인구(人口) 145만의 규슈에서 제일 큰 도시로 규슈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된다. 후쿠오카가 규슈 전체 매출액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원래 후쿠오카는 시내를 남북으로 흐르는 나카가와 강을 경계로 사무라이들이 사는 서쪽의 행정도시 후쿠오카와 동쪽의 상업도시 하카다 (博多)의 두도시를 합쳐서 만든 도시다.

명치유신때 폐번치현 (봉건 영주시대의 번을 폐지하고 현대의 행정체재인 현으로 바꾼 개혁)으로 두도시를 합치면서 도시 이름을 둘러싸고 열띤 논쟁이 있었다.

하카다와 후쿠오카 중 하나를 선택하기위해 시의회가 열렸는데 공교롭게도 찬반동수가 되었다. 결국 의장의 결정에 맡겨졌는데 의장이 후쿠오카 출신이라서 후쿠오카로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공항은 후쿠오카 공항으로 부르지만 기차역과 항구는 하카다역, 하카다항구로 부르며, 지역 특산품도 모두 하카다의 '무엇'으로 부르고 있다.

이 지역의 음식으로는 라면이 유명한데 하카다 라면으로 부르고 있다.
라면은 원래가 중국의 국수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지금과 같은 라면은 일본에서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일본에는 3가지 라면이 있는데, 첫째 도쿄지역의 쇼유(간장)라면, 둘째 삿포로의 미소(된장)라면, 셋째 하카다 라면이 있다.

하카다 라면은 돼지뼈를 푹 고은 뿌연 국물과 면발이 가는 국수가 특징인데 한국 사람들은 맛이 좋다는 사람과 느끼해서 좋아하지않는 사람이 반반이라고 한다. 필자는느끼함을 개운하게 가셔주는 고추가루를 가미했었기 때문인지 한 그릇을 더 주문했을 정도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시내의 중심에는 운하가 뚤려 있는데 바로 운하를 안에두고 거대한 건물들이 줄을 이어 서있다. 건물 내부는 모두 옆 건물과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다른 건물로 가기 위해 건물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다. 이 건물들을 통털어 Canal City로 칭한다. 이 건물안에서 오수를 정화처리해 운하를 통해 밖으로 내보낸다고 한다. 그래서 친환경 도시를 뜻하는 Echo City라고도 부른다. 건물 맨 아래층에서 30분마다 하는 분수쇼도 빼놀수 없는 볼거리다.

신숙주가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온 후에 쓴 "해동 제국기"에 일본사람으로 조선과 교역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카다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듯이 하카다는 고대로부터 한반도와의 교류 창구였으며 두나라 사이의 많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일본에 벼농사를 가르쳐준 야요이(彌生)문화가 처음 전래된 곳이고, 삼국시대때는 규슈의 많은 부족국가들중 상당수가 한반도 도래인들이 세운 국가였다고 한다.
일본서기 기록으로는 신라의 왕자 아메노히보코의 후손으로 알려진 신공 황후와, 그후에 오진 천왕이 박다 (하카다)를 수도로 정했다고 한다. 오진 천황은 하카다 (博多)를 발판으로 후일에는 나라에 도읍을 정하게 된다.

신라 눌지왕 때의 충신 박제상의 묘도 하카다에 있고, 백제가 규슈를 통솔한 다자이후 세이초(太宰府 政廳)는 하카다에서 30분 거리에 있고, 여기서 5분거리에는 왕인 박사의 후손인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학문의 신으로 받들고 있는 다자이후 탠만쿠우(太宰府 千滿宮)가 있다.

백제가 멸망한 다음에는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이 백제 부흥운동을 일으킨 곳이 이곳이고, 일본의 태자 중대형 (후일의 천지천황天智天皇)도 하카다 근처의 나노스에 와서 돕기도 하였다.
백제 부흥운동이 실패한 다음에는 수많은 유민들이 규슈와 나라로 몰려 들었고 삼국 통일 후에는 신라의 장보고가 태재부를 통하여 신라와 당, 왜국의 3국무역을 관장하던 곳도 이곳이다.
고려때는 여몽 연합군이 태풍때문에 일본 침공에 실패하고 가미가제의 신화를 남긴 곳도 이곳이다. 임진왜란때 왜군들이 집결해서 출발한 곳이 근처에 있는 나고야 항구다.

일제 말기에 한국의 애국시인 윤동주가 해방을 6개월 남겨놓고 옥사 한곳이 후쿠오카 형무소였다.한반도의 역사가 하카다라는 도시 하나에 이렇게 많이 얽혀 있는 것이다.
규슈 전체를 보면 더욱더 많은 도래인들의 역사를 접할 수 있게 된다.

아키히토 일본 천황은 "간무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 일본기」에 쓰여 있는데 대해 한국과의 연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한국과의 교류를 잊어서는 안된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바로 그 무령왕이 규슈 사가현의 조그만 섬에서 태어났고 젊은 시절을 일본 왕실에서 성장하였다. 후일에 백제왕이 되었을때 그는 일본의 왜왕(倭王)에게 구리로 만든 동경을 보낸다.

한국과 일본은 과거에 이렇게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본사람들은 백제를 비롯한 한반도와의 교류를 얘기하는 것을 피할 뿐만아니라 왜곡하려 하고 있다.

규슈 가고시마 현에는 임진왜란때 전라도 남원에서 잡혀온 도자기공 심당길씨의 13대손 심수관씨가 있다. 그는 "규슈 문명은 다다미만 빼고 모두 한반도에서 온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본은 개국이래로 도읍지가 네곳이 있다. 규슈의 하카다 (博多), 나라, 교토, 그리고 이제는 도쿄(東京)가 수도가 되었다. 처음 두개 도읍지는 이름이 "밝다"와 "나라"라는 한국말로 되어있는 것은 무엇을 시사하는 것인가?

비록 짧은 여행이지만 우리조상들의 발자취를 찾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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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한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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