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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한 컬럼 [2] 일본 다시보기
보스톤코리아  2009-01-18, 18:28:40   
왜(倭)열도는 고조선 시대인 BC8세기부터 삼도(三島)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왔다.

한반도의 기원전 4세기의 유물로 추정되는 세형동검(細形銅劒) 이나 새끼줄 무늬를 새긴 질그릇등이 구주(九州)를 비롯한 일본에서 출토된다는 사실은 기원전 4세기 이전에도 일본에는 한반도로 부터의 도래인이 있었다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이때의 일본문화를 죠몽(일본말로 새끼줄 무늬라는 뜻)문화라고 부른다.

기원전 3세기경에는 고조선의 와해로 유망민들이 남쪽으로 내려와 한반도 남쪽에 진한, 변한과 같은 부족국가들을 건국한다.

또 일부는 북구주(北九州)까지 내려가서 논 농사를 처음으로 시작하고 또 일본에서 철기문화를 시작하게 된다. 이들의 문화가 구주(九州)를 시작으로 일본 열도에 전파되는데, 이들이 이룩한 문화를 그들의 유물이 처음 발견된 지명 동경도 미생정(東京都 彌生町)의 이름을 따서 야요이(彌生)문화라고 한다.

이처럼 구주는 한반도 문화를 받아드리는 창구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창구의 중심지가 하카다 (博多)였다.

중국의 진서(晉書)나, 삼국지(三國志)의 기록으로는 야오이 문명기의 왜국(倭國)은 100여개의 부족국가가 북구주를 중심으로 분립(分立)해 있었다고 한다.

그 후에 백제, 신라, 고구려, 가야 사람들이 진출하게되자, 부족국가들은 더 큰 규모의 국가로 통합되면서 백제, 신라, 고구려, 가야라는 명칭을 지명이나 마을, 현, 동리, 정(町), 다리, 산, 신사, 절, 저수지, 강의 이름에 사용하게 된다.

마치 영국사람들이 북미대륙으로 이주하면서 신천지의 이름을 영국의 지명으로 명명한것과 같은 것이다. 규슈의 하카다시는 "밝다"로, 그 서쪽에 있는 도시는 "가라츠"라고 불렀는데 가라츠는 "가야"의 일본식 발음이다.

신라는 시라기, 고구려는 고마로 불러서 시라기군(新羅郡), 고마군(高麗郡)이 되었다.
근초고왕을 비롯한 백제의 왕들은 일본에 백제의 문화와 문물을 전하는데 매우 우호적이었다. 학자 아직기(阿直岐)는 일본에 건너가 일본 태자의 스승이 되었고 왕인(王仁)박사는 논어(論語)와 천자문을 전수하고 그외에도 화공, 도공, 와공(기와공), 철공등의 기술자는 물론 장을 담는 것까지 전수하게 된다. 일본의 정신문화와 물질문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된것이다.
일본에서 보면 백제로부터의 모든 것이 새롭고 귀한 것이었다. 그래서 백제를 뜻하는 "구다라"는 백제라는 국가의 이름이지만 최상, 최고를 의미하는 뜻이 되게 되었다. 왜왕(倭王)이 거쳐하는 궁전을 구다라큐(百濟宮), 왜왕의 시체를 안치하는 곳을 구다라오오모가리(百濟大殯)라고 부르는것을 보면 왕궁의 주인이 백제사람이거나 백제와 아주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옛날에 영국 사람들이 Massachusetts에 도착해서 지명(地名)을 구태여 England를 넣어서 New England로 불렀는데, 백제계 이주자들도 고국 백제를 "큰나라"로 불렀다. "큰나라"가 "구나라"로 변하고 세월이 지나면서 "구다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백화점에서 "구다라이" 하면 최상품이라는 뜻이다. 그 반대말인 "구다라 나이"는 "백제가 아니다, 즉 최상급품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좋은 것에는 "구다라"라는 이름을 부쳤는데 지금도 일본에는 백제사(구다라지)라는 큰 절이 5개나 된다.

쇼도쿠태자(성덕태자)때 백제에서 수입한 금속주물, 기와 등 고급품을 하쿠라이(hakurai=舶來=박래), 즉 바다를 건너온 물건이라고 불렀는데 지금도 좋은 물건을 하쿠라이라고 한다.
그 당시의 백제의 위상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전라도와 충청남도에 그치는 왜소한 나라가 아니었다. 중국의 역사책에도 아주 큰 나라로 기록되어 있는데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왜 작은 나라로 축소해버렸는지 모를 일이다.

중국의 구당서(舊唐書) 백제전에 이르기를 "백제의 영역이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 월주(越州)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바다를 건너 왜국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바다를 건너 고구려에 이르렀다"고 쓰여있다. 구당서뿐만 아니라, 사마광의 자치통감 통전(通典), 송서(宋書), 양서(梁書), 북사(北史) 백제전, 남제서(南齊書)에기록되어 있는데, 남제서에는 "북위가 수십만의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 왔다가 백제군에게 패하여 시채가 들에 깔리고 피가 땅을 붉게 물들였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우리의 삼국사기에는 백제 동성왕(東成王)때 북위와 싸웠다는 말로 끝내버렸다. 그 당시의 백제의 국력은 왜국을 석권하고도 남았던 것이다.

그 당시에 규슈는 아홉개의 나라가 있었다. 치쿠첸(筑前=지금의 후쿠오카 현), 치쿠코(筑後=후쿠오카), 부젠(豊前=후쿠오카, 오이타), 분고(豊後=오이타), 히젠(肥前=사가현, 나가사키 현), 히고(肥後=구마모토 현), 휴가(日向=미야자키 현), 오오스미(大隅=가고시마 현), 사쓰마(가고시마 현)의 아홉나라였다. 그래서 규슈(九州)라고 부르게 된것이다. 이중에서 히고(肥後)가 일본서기에 기록되어있다.

히고왕 아시기타의 왕자 일라(日羅)가 백제에서 달솔의 관직에 있는데 부인이 백제 여자였고 백제말을 쓰는데 백제왕의 명을 받아 왜왕의 자문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히고왕은 백제 왕실의 지배를 받는 담로(Tamro=擔魯, 淡路)왕이었던 것이다. 나머지 여덟나라도 백제왕의 지시를 받는 식민왕국으로 짐작할 수 있다 (최재석의 일본 고대사의 진실).

일본서기는 건국신화 "대팔주기원론(大八州 起源論)"에서 음신과 양신이 교접하여 처음으로 태어난 자손이 담로였다고 밝히고 있다. 담로가 백제식 발음이라 그들은 그것을 피해 아와지(awaji=淡路州)라고도 불렀다. 건국 신화의 주인공이 백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후일에 신공(神功)황후가 규슈를 통일한 다음에 도읍지를 밝다(博多)로 정했는데 왜 굳이 한반도의 이름으로 불렀겠는가? 그녀 역시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이었을 것이다.

규슈는 일본의 어느곳 보다도 많은 것이 한반도와 유사한 곳이다. 1975년 일본 후생성에서 발표한 Hb항원 분포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Hb항원은 adw형과 adr형이 있는데 한국인과 대마도 사람들은 거의 100%가 adr형이고, 규슈의 후쿠오카 현은 92%, 사가 현은 94%가 adr형이다.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도쿄와 아이누족들은 67%만 adr형이다. 이는 한반도와 제일 가까운 규슈로 한민족의 이주가 많았다는 얘기가 된다.

특히 두번에 걸쳐 백제 사람들의 이주가 많았는데, 첫번째는 광개토 대왕이 백제를 침공했을때 였고, 두번째는 백제가 멸망했을때 수많은 백제 유민들이 규슈와 나라쪽으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일본사람들은 축제때 "왔소, 왔소"라는 구호를 외치는데 이것은 먼저 이주해 온 백제 사람들이 새로 도착하는 백제 사람들을 반겨서 "왔소, 왔소"했던 외침이 지금까지 전해오는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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