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한 컬럼 [3] 일본 다시보기-후쿠오카
보스톤코리아  2009-01-23, 16:55:04 
1) 조선인 포로 수용소 도진마치(唐人町).
후쿠오카에는 공항선, 하코자키선, 그리고 나나쿠마선 모두 3개의 지하철 노선이 있다. 왼만한 곳은 모두 지하철로 갈 수가 있다.

공항 노선의 시발역인 공항에서 두번째 정거장이 하카다 기차역이고 그 다음역이 원자탄과 여자 상투만 빼고는 없는 것이 없다는 Canal City다.

여덟번째 역이 도진마치(唐人町)역이 된다. 임진왜란 때 강제로 끌려 온 조선 사람들이 수용되었던 곳이다.

일본에서는 도(唐)자가 들어가있는 명칭은 한반도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면 거의 틀림없다. 중국의 당나라를 뜻하는 의미보다는 바다 건너에 있는 나라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우리 한반도는 한(韓)으로 부르지 않고 도(唐)로 부르고 있다. 그 이유는 한반도 보다는 의식적으로 중국을 상대한다는 대륙 지향적인 속셈이 있기 때문이다.

후쿠오카 서쪽에는 옛날 가야 이름을 딴 카라츠라는 무역항이 있는데 처음에는 한진(韓津)으로 부르다가 1382년에 唐津(당진)으로 바꾸었다. 우리나라에서 파견한 조선 통신사를 통해 배운 조선의 가무를 오카야마 현에서는 가라코(唐子)춤으로, 미에현에서는 도진(唐人)춤으로, 굳이 韓(한)을 쓰지 않고 당(唐)으로 쓰고 있다.

임진왜란 후에 조선인 포로들이 수용되었던 도진마치는 후쿠오카뿐 만 아니라 규슈 여러곳에 있었는데 전체 숫자는 1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대다수는 일본인의 처나 하인이 되어 떠났지만 도공, 인쇄공, 기와공, 축성기술자들은 집단으로 끌려가서 규슈와 일본의 산업발달에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또 일부는 포르투갈, 스페인 등 세계 곳곳에 노예로 팔려 가기도 했다. 그 당시에 나가사키와 히라도에는 엄청난 규모의 노예시장이 있었다고 한다.루벤스의 그림에 “피리부는 소년”의 모델로 등장하는 안토니오 꼬레아는 나가사키에서 팔려 이태리의 피렌체까지 간 것이다.

임진왜란 후에 한일국교가 재개되는 조건으로 조선 정부는 조선인 포로들을 송환하라는 것이었다. 그때 도꾸가와 막부가 보낸 국서에 따르면 “생포된 귀국의 남녀가 각지에 흩어진지 거의 20년이 흘렀다. 그들 가운데에는 일본사람과 결혼하고 아이들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돌아 갈 의사가 없다면, 각자 그들의 생각에 따라야 할것이다. 국왕(쇼군)은 돌아갈 의사가 있는 사람은 곧바로 돌아 갈 준비를 하라는 엄명을 내릴 것이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일본사람과 가정을 꾸민 사람은 물론이고 수많은 기능공들은 각 지방의 번주들이 돌려보낼 의사가 전혀 없었다. 1605년 조선 통신사로 일본에 간 사명당이 데려온 1,300명을 포함해서 조국의 땅을 다시 밟게 된 사람들은 8,000명에 그치고 있다. 이들은 도진마치 옆에 있는 오호리 공원의 호수가에 수용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 숫한 애환의 주인공들은 누구를 비난할 것인가? 전쟁을 일으킨 도요토미? 그렇지 않으면 국정을 제쳐놓고 당파 싸움에 일관했던 무능한 조선의 조정에 물을 것인가?
지금도 한국의 정치인들은 달라진게 별로 없다. 또 다른 임진왜란, 한일합방을 주문하는 작태는 이제는 끝날 때가 된것이다.

2) 윤동주 시인을 추모하며
도진마치에서 후쿠오카 타워 바로 중간 지점, 무로미(室見) 강 하구의 모모치(百道)지역에 후쿠오카 형무소가 있다. 지금은 이름이 바뀌어서 후쿠오카 구치소다. 바로 이곳이 조선을 끔찍히 사랑했던 한 젊은 대학생 윤동주가 한많은 일생을 마감한 곳이다. 죄몫은 한글로 시를 썼다는 것이 전부였다. 우리들의 귀에 익은 그의 서시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 가야 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 운다.”

유명한 윤동주의 서시다. 여기서 “별”은 삶의 고귀한 진실, 조국을 의미하고 “바람”은 시련, 일본의 억압을 함축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윤동주(1917-1945)는 해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는 자신의 지성적인 삶과 생명을 사랑하면서 오욕의 역사에 대한 소명감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연희 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도쿄의 릿쿄(立싱)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그 다음해에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학으로 편입했다. 1944년 4월에 한글로 시를 쓴것이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 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어 출감을 6개월 앞에 두고 옥사했다(1945.2.16). 매일같이 이름 모를 주사를 맞다가 사망한 것이다. 생체 실험용 주사로 추정하고 있다.

매년 2월16일이 되면 그를 애도하는 4,000여명의 일본인들이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 후쿠오카 구치소 주위에 모여 그를 추모하는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그를 죽게한 일본, 또 그를 추모하는 일본인들, 무언가 몹시 헛갈리게 한다. 북간도 용정의 윤동주 묘소를 처음으로 찾아내서 한국에 알린 사람도 한 일본인 대학 교수였다.

지금 그의 모교인 동지사 대학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인 윤동주의 시비가 서있다. 우리가 뭔가 해야할 일을 잊어 버리고 살아온 것이다.
그의 마음을 나타냈다는 “산골물”을 소개하고 다음으로 떠나자.

“산골물”
괴로운 사람아 괴로운 사람아/ 옷자락 물결 속에서도/ 가슴속 깊이 돌돌 샘물이 흘러/ 이밤을 더불어 말할이 없도다./ 거리의 소음과 노래 부를수 없도다./ 그신듯이 냇가에 앉았으니/ 사랑과 일을 거리에 맏기고/ 가만히 가만히 바다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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